|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5월07일(수) 09시21분46초 KST 제 목(Title): 박정희 신드롬 <뉴스메이커> 우리가 오랫동안 고통받은 군사독 재의 원조, 박정희, 그가 18년이라는 세월의 이끼를 두르고 ‘저벅저벅’ 그리움이라는 단어로 다가오고 있다. 어지러운 세상에 나타나는 현실도 피적 민심인가.폄하된 인물의 재평가 작업인가.그가 우리 곁에 있었던 18 년은 지긋지긋했다. 고난과 질곡으로 얼룩진 암울한 시대의 끝도 그의 퇴 장과 함께 비로소 열리기 시작됐다. 그리고 꼭 그가 집권한 기간만큼인 18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18년의 풍상과 사후 18 년의 침묵을 넘어 이제 그리움의 대 상으로 다가오는 인물, 그가 우리 앞 에 부활하고 있다. 민족의 미래를 책임질 줄 알았던 선각자,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지도자, 좌절과 혼란의 시대를 경륜 한 난세의 영웅, 나라를 가난에서 구 제해준 성군의 옷을 입고서…. 끝없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 박정희의 모습은 어느덧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자 가장 존경하는 역사의 위 인으로 탈바꿈했다. 최근 한 여론조 사는 그를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았다. 그것도 다른 역대 대통령과는 비교 도 안되는 수치였다(박정희 75.5%, 전두환 6.6%, 김영삼 3.7%, 이승만1. 9%, 윤보선·최규하·노태우 1% 이하 ). 지난 연말 공보처가 발표한 ‘역사 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설문조사 에도 그는 세종대왕(18.8%), 이순신 장군(14.1%), 김구 선생(10%)을 제치 고 1위(23.4%)에 올랐다. 지난해 10월 정호선 의원(국민회의 )이 정부출연 연구기관 연구원과 이 공계 교수, 정보통신업계 간부 등을 대상으로 ‘역대 대통령 중 과학기술 정책을 가장 잘 이끈 대통령’을 뽑은 설문조사에서도 그는 단연 1위를 차 지했다(박정희 85.1%, 전두환 2.5%, 김영삼 2.1%, 노태우 0.1%). 작금의 경제난과 안보위기, 온나라 를 대혼란에 빠뜨린 리더십의 공황사 태가 무덤에서 잠자는 그의 영혼을 부르고 있다. ‘다시 군화발을 저벅 거리며 돌아 오소서. 이제야 말로 당 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 우리 백 성 더 결딴나기 전에…’ 한 네티즌의 글이다.이러한 바람은 최근 유행하는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 조사에 도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3 월말 <고대신문>이 고려대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는 김구 선생, 테레사 수녀에 이어 복제 희망 인물 3위에 뽑혔다. 주부를 대상으로 한 ‘사랑의 전화 ’(대표 심철호)의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국내 여론이 외신 에도 소개돼 아시아·아프리카 등 개 도국의 ‘박정희 붐’에 가세하고 있 다. ‘박정희 부활 신드롬’이라고 할 만한 징조와 현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경북 구미시 상모 동 생가에는 내방객 수가 전례없이 늘고 있다. 하루 평균 300명선에 이 른다. 지난 1년간 국립묘지 묘소 참 배객도 6만여명에 이른다. 구미시와 민족중흥회(회장 백남억) 를 중심으로 기념관 건립 움직임 등 추모 및 기념사업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지난 2월에는 인터넷 공식 웹사 이트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이 등장했다.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정보를 담은 이 멀티미디어 기념관은 개설된 지 두 달만에 1만명에 가까운 네티즌이 다녀가는 인기 사이트로 자 리잡았다. 인터넷 웹사이트뿐 아니라 천리안 ·하이텔·나우누리·유니텔 등 국내 PC통신서비스의 게시판이나 토론실 에도 그를 재평가하는 의견과 토론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지금 무너져가고 있는 우리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진정 쿠데타뿐이라고.’ 신세대의 마당인 토론실에는 기성 세대를 뺨치는 ‘반동적인’ 의견도 서슴없이 개진된다.문단과 출판계에 서도 ‘박정희 붐’이 조성되고 있다. 그를 모델로 한 소설 <인간의 길>이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작가 이인화씨는 3부작 전10권으로 계획한 이 작품에 자신의 문학인생을 걸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나온 것은 그 가운데 1부 2권이다.<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도 4·19에서 90년대에 이르는 현대사를 무대로 한 대하소설 <횃불>(가제)을 집필중이다. 조씨는 작품을 통해 70년대 이후 한국사회를 조명하면서 “박정희 대 통령에 대해 경제적 측면에서 긍정할 것은 긍정해야 한다”며 기존의 운동 권적 시각에서 탈피했음을 선언했다. 패션가에 불고 있는 복고풍도 박정희 신드롬의 한 편린이다. 지난해 가을부터 복고풍 패션이 유 행하면서 ‘새마을 패션’으로 발전 됐다. 정장 재킷의 각진 칼라 위에 뾰족한 셔츠 칼라를 밖으로 내 입는 올봄 최신유행 재킷 코디법은 70년대 공무원과 농촌 지도자의 ‘새마을복’ 을 연상시킨다. 난국에 나타나는 현실도피 내지 과 거에 대한 향수인가, 이에 편승해 과 거로 회귀하려는 반동의 음모인가, 그도 아니면 실제로 폄하된 현대사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시작된 조짐인가. ‘박정희 신드롬‘은 이런 의문에 명쾌한 답을 해주지 못한 채 소리없이 확산되고 있다.최근의 현상은 이전의 과거회귀적 재평가나 개발독재 논쟁 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보수 정치권 의 박정희시대 미화나 학계의 박정희 시대 평가작업과는 달리 이를 주도하 는 실체도 없고 의도하는 목적도 없 는 게 특징이다. 기성세대가 아니라 오히려 신세대 가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정치권 의 박정희시대 미화는 주로 보수층을 겨냥한 구여권 인사의 정치상품 가운 데 하나로 사용돼왔다. 지난해 4·11 총선 때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과 김 윤환 신한국당 고문 등이 대구·경북 지역과 보수층 공략을 위해 ‘박정희 카드’를 이용한 정도다. 최근 경제난과 리더십 부재의 분위 기에 편승해 일부 대권예비주자 진영 에서 은근히 ‘박정희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새로운 현상에 해당한다.박정희시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김영삼 정부 초기에 일단 정 리됐다고 봐야 한다. 김 대통령이 5·16과 12·12를 쿠 데타로 규정하고 자신을 3·1운동, 임시정부, 4·19혁명, 5·18광주민주 화투쟁, 6월민주항쟁의 연장선상에 놓자 일부 보수 학계와 언론, 정치권 에서 반론을 펴기 시작했다. 대한민 국의 정통성은 독립운동, 반공에 기 초한 국가건설과 보위(이승만), 경제 발전(박정희·전두환), 민주화(노태 우·김영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게 반대편의 주장이었다. 박정희시대 옹호론자들은 기존의 경제논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오 늘날의 민주화도 반독재 투쟁의 결과 물이 아니라 경제발전으로 인한 시민 사회의 성숙에서 비롯됐다’는 논리 를 펴기 시작했다. 학계에서는 당시 의 부정적 요소를 합리화하기 위해 ‘필요악’이니 ‘방법론적 유보’라 는 용어가 자주 사용됐다. 경제발전의 동인이 무엇이었느냐도 학계의 주된 논제 가운데 하나였다. 산업화 성공이 박정희의 탁월한 지도 력 때문이냐(리더십론), 이미 갖춰져 있던 조건에 편승한 것이냐(편승론), 복합적인 요인 때문이냐(절충론) 등 이 그것이다. 학계의 논쟁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명분을 얻으면서 소장파 를 중심으로 한 비판론이 대세를 이 뤘다. 옹호론는 곧 반(反)개혁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당시의 망령(亡靈) 을 불러내는 것은 그야말로 망령(妄 靈)에 지나지 않는다”며 옹호론을 비판했다. 학계의 이러한 인식은 지금에 와서 도 크게 변화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박정희 붐’은 학계의 인식변화나 재평가에 기인했다기보다 오히려 최 근의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김 대통령을 비롯 한 정치권의 지도력 부재, 정국 혼란 과 정치불신, 심각한 경제난, 북한의 붕괴 국면과 안보불안, 세계적인 보 수화 조류 등 안팎의 조건이 ‘박정 희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강만길 고려대 교수(현대사)는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경제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인식은 잘못 ”이라며 “지도자 개인이나 영웅의 역할에 의해 사회가 바뀌어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군사문화를 뿌리내 린 정치적 측면은 물론이고 가장 평 가받는 경제적 측면만 보더라도 분배 문제라든가 오늘날의 재벌중심 경제 를 만들어놓은 장본인이라는 게 그의 인식이다. 지금도 그 후유증에 시달 리고 있는데 그에 대한 향수에 젖는 것은 역사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박정희 옹호론자인 김정강씨(사회 평론가)는 “박정희 신드롬은 복고주 의나 과거에 대한 향수, 지금의 국가 리더십 부재에 대한 단순한 반사현상 은 아닐 것”이라며 “그보다 박정희 가 만들어갔던 역사가 옳은 길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에 관한 한 비 판적인 현 정권과 학계, 언론계의 장 막을 뚫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80%대 의 지지를 받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옳았다는 최고의 예지라고 봐야 한다” 고 분석했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 두 차례 투옥 된 전력을 갖고 있는 김씨는 10·26 이후 80년대 들어서야 좌파노선을 청 산한 4·19, 6·3세대의 이론가였다. 그는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천재가 한 일은 그 시대에 인정받지 못한다”며 “세월이 지나서 일반 국 민의 수준이 높아졌을 때 제대로 평 가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