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7년04월23일(수) 08시49분55초 KST 제 목(Title): 언론의 '대통령 만들기' [시사저널] 이회창씨가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선임된 다음날, 유력 일간지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사뭇 다른 논조의 기사로 대비를 이루었다. ‘YS 승부 카드…사실상 후계 지명’‘새 국면 맞은 여(與) 경선/민주계, 이회창 지원 불가피’. <중앙일보> 정치면의 이 기사 제목만 본다면 대세는 이회창 편인 듯했다. 해설 기사에서도 이 신문은 ‘이런 경선 환경에서 그의 승리는 기약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썼다. 이에 반해 <동아일보> 정치면은 ‘이회창 대표 왜 발탁했나’라는 제목 아래 ‘높은 여론 지지도 감안한 듯’‘대선 주자 반발 등 역풍 (逆風) 예상’이라는 부제 2개를 같은 활자 크기로 달았다. 이대표 선임이 위기 국면 돌파용 카드라는 데 더 비중을 둔 듯한 모습이었다. 이어 15일에는 1면 머리 기사에 ‘이회창 체제 후유증 심각’이라는 제목이 올랐다. 부제는 ‘이한동씨 권력 집중 비판, 민주계 중진들 당직 거부’였다. 이회창 대표 체제가 출범한 데 따른 당내 갈등이 심각하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두 일간지의 이같은 보도 행태를 놓고 언론계 안팎에서는 말이 많았다. ‘<중앙일보>가 제일 먼저 뛰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달리기의 목표점은 두말할 나위 없이 대선 고지이다. 특히 전임 편집국장 고흥길씨와 삼성경제연구소 이사로 있던 구종서씨(전 <중앙일보> 논설위원)가 이회창 캠프에 전격 합류한 뒤인 만큼 이 신문이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나섰다는 분석은 더욱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동아일보>의 경우는 장기적인 포석에서라기보다는 사주의 인척 관계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이 제기되었다(김병관 회장과 이한동 의원은 사돈지간이다). 한국 언론사에 ‘대통령 만들기’라는 단어가 본격 등장한 것은 92년이다. 같은 편집국 내부에서조차 ‘YS파’‘DJ파’로 갈려 우왕좌왕했던 87년 대선 정국과는 달랐다. <조선일보>의 ‘YS 대통령 만들기’는 이미 언론학 강좌에 단골로 등장하는 고유 명사가 되었다.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권 후보의 언론 플레이가 9단이었다면 <조선일보>의 플레이도 이에 못지 않았다. YS대세론을 방패삼아 민자당내 소수 계파인 민주계 수장을 대통령 자리까지 끌어올린 일등 공신은 <조선일보>였다. 기자협회가 95년 8월 전국 신문·방송·통신사의 차장 이하 평기자 6백6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언론 자유를 가장 많이 위축시킨 사건’가운데 13위로 <조선일보>의 YS 대통령 만들기’가 들어 있다. 그러나 대선 이후 YS와 <조선일보>가 ‘밀월’을 누린 세월은 짧았다. 오히려 <조선일보>는 문민 정부에 가장 먼저 반기를 든 언론이다. 박태균씨(서울대 강사·국사학)는 <월간조선> 93년 11월호에 조갑제 부장이 쓴 기사 ‘박정희와 김영삼의 화해’를 그 기점으로 보고 있다. 박씨에 따르면 이 기사는 ‘(김영삼 정부가 꾀했던) 김영삼 정권과 역대 정권과의 차별성을 정면 부정하려는 시도’였다. 95년 화제를 모았던 <조선일보>의 연재물 ‘거대한 생애, 이승만 90년’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체계화해‘수구 세력을 역사적으로 복권시키려는’움직임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김영삼 정부가 당시 추진하던 ‘역사 바로세우기’에 쐐기를 박는 작업이기도 했다. 특히 한보 사태를 전후해 <조선일보>가 민주계 중진 의원들의 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한 특종을 잇달아 터뜨리면서 <조선일보>와 김대통령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얼마 전 <미디어 오늘>은 92년 대선 당시 김영삼 대통령 후보 진영이 작성한 언론인 성향 분류 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언론사 주요 간부와 정치부 기자를 ‘친(親)YS·반(反)YS·중간’ 세 집단으로 분류해 놓은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조선일보>에서 친YS계로 분류된 언론인은 4명에 지나지 않는다. 오인환 공보처장관(당시 주필)을 포함해 친YS계 언론인이 6명 있다고 분류된 <한국일보>에 비해 적은 숫자이다. 반YS계로 분류된 <조선일보> 사람은 3명이다. 언론·정치인 ‘헤쳐 모여’ 시도 기자·간부 들의 성향과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 사이에 큰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그래서 가능하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에 따르면 김영삼 정부가 언론의 협력과 지지를 절대 필요로 했던 만큼, 언론 또한 옛 체제를 청산하려는 신정부의 ‘개혁 면제 영역’ 즉 성역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곧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는 언론사 살아남기 전략과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기반을 호남에 두고 있는 한 유력 일간지가 오직 ‘역대 정권 아래서 살아남기 위해’ 편집국 주요 간부진을 TK 또는 PK로 충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90년대에 들면 사정이 또 다르다. 98년 신문·잡지 시장 개방, 2000년 뉴스 통신 서비스 시장 개방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 살아남으려면 언론과 정치인은 또 다른 이해 관계로 ‘헤쳐 모여’를 시도해야 한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는 이미 편집국 조직 개편을 끝낸 상태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앞서의 92년 YS 진영 보고서에 ‘반YS계 인사’로 분류되었던 한 인사가 편집국 요직을 새로 맡아 눈길을 끌고 있다. 언론이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 있게끔 선거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올해는 92년보다 훨씬 교묘하고 지능적인 형태의 ‘대통령 만들기’가 선을 보일 전망이다. 난무하는 언론 플레이와 정치 플레이에 휩쓸리고 싶지 않은 독자라면 행간을 읽는 ‘묘(妙)’를 익힐 수밖에 없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