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purunsan (-겨울철쭉-) 날 짜 (Date): 1996년02월10일(토) 21시21분21초 KST 제 목(Title): 명분과 현실...그리고 냉소...도니님께... 우선 평소 제가 갖고 있던 도니님에 대한 기대에 걸맞는 훌륭한 글로 진지한 답을 해주신 데 대해 감사드립니다. 벌떼같이 달려들어 한마디씩 하고 가는 게스트들의 글만을 보다가 도니님의 글처럼 진지한 글을 대하게 되니 우선 고마움이 앞서는군요.. :) 저의 단점이라 할 수 있는 장황함을 피하기 위하여 우선 제가 말하려는 것을 요약해 보도록 하겠읍니다. (두괄식 구성이겠죠? :) ) 1. 명분과 현실에 대한 입장차이 2. 이회창 개인에 대한 평가에서의 다른 시각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김대중씨와의 비교부분에서 감정에 치우친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시는 도니님의 모습에서 겸허함을 배워야겠다는 것을 새삼 느꼈읍니다. (여기서 위 요약의 순서를 바꾸려 합니다. 1은 일반론적인 성격이므로 뒤로 미루고 우선 2에 대해서 말하겠읍니다.) 도니님이 제 글의 결론으로 말씀하신 부분 중에 약간은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저는 개인으로서의 이회창씨의 도덕석을 폄하할 생각은 없읍니다. (물론 그의 신한국당 입당이 명분없다라고 제가 주장한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회창씨의 도덕성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 인물의 행위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그의 도덕성을 폄하했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제 글의 결론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의 도덕성에 대해서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있는 그대로만 평가되었으면 한다는 것이 제 글의 요지라고 할 수 있읍니다. 쉽게 끓어올랐다가 쉽게 가라 앉는 냄비같은 여론 몰이 말고 냉정한 평가가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냄비같은 여론 몰이는 '스타'만들기 뿐 아니라 '파렴치범'만들기에도 적용되는데 그것은 위의 베르너님이 쓰신 불구속수사의 원칙이라는 글에서 잘 드러나 있읍니다 ) 요즘 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모 게스트같은 사람 말고 ( :p ) 도니님은 잘 아실 것입니다. 암울했던 시절, 정의와 보다 숭고한 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까지 볼 여력도 없이.. 당장 눈앞의 불합리와 폭력앞에 몸으로만 대항해야 했던 들꽃같은 영혼들을... 우리의 현실은 항상 그자리라지만 저는 그런 영혼들이 있어서 여기까지나마 올 수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어느 한 개인의 영혼을 두고 누가 더 아름다웠는가를 평가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소리겠지만, 저는 이회창씨만한 소신과 용기를 가진 이름 없는 분들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이름있는 분들도 있고 능력있는 분들도 있읍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서 개혁의 시늉이나마 하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 어쩌고 하시는 분들, 아홉시 뉴스 그만 좀 따라하십시오) 물론 도니님도 이회창을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들어 저에게 설명해 주셨읍니다. 저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부인한들, 이미 사실인 것이 사실 아닌 게 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한 사실을 부인한 적도 없읍니다. 단지 내일 당장 온갖 신문과 방송이, 가령 전 연세대부총장을 지낸 김찬국씨를 또올리고 그분이 겪으신 어려움을 크게 보도만 한다면 저는 모든 사실만을 기초로 하여 '온국민의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런 말을 꺼내기가 이리도 힘드는군요.. 제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그 지옥같은 시기를 지나면서 이 회창씨만한 어려움을 겪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읍니까.. 수도 없이 많았고 그 중에는 남다른 능력을 가진 분들도 많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읍니다. 하지만 제가 그말을 그리도 꺼려했던 것은, 그 말을 꺼내고 난 후 저에게 날아올 돌을 두려워했기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말을 꺼낼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이란 걸 알기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마음을 바꾸었읍니다. 그 말을 하기로.. 그리고 그 돌도 맞기로.. 이미 김남주의 이름을 입에 올릴 자격도 없는 놈이 숱하게... 입만 열면 남주 어쩌고 하는 뻔뻔함을 보인 마당에 무슨 돌이 더 날아올 것이라고 피하겠읍니까. 물론 이회창씨의 소신과 양심은 저같은 범부가 감히 접근할 수 없을만큼 가치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닫아 놓고 살지 않았다면, 인간이기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았다면, 당시의 지식인이나 혹은 책임있는 위치에서 그만한 고통을 겪지 않았던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었겠읍니까. 다시한번 제가 그의 도덕성을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그러나...제가 아는 많은 고통을 당하신 분들과는 달리... 그는 간간히 약자를 위해 입을 빌려줄 수는 있었지만, 능력을 빌려줄 수는 있었지만...단 한번도 직접 약자가 되어 본 일은 없읍니다. 지식인들이 쉽게 지조를 버리거나 좌절하게 되는 것이 바로 직접 약자가 되지 못하고 약자를 위한다고 말만을 되풀이한 데에도 많은 부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때 약자의 입장이 되었다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강자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아는 한 이회창씨는 '잠시나마라도' 직접 약자가 되었던 적은 없읍니다. 단지 옷을 벗고 물러나 있었던 적은 있었겠지요. 이것은 그의 도덕성을 깍아 내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지식인들의 나약한 속성을 많이 보아온 저의 우려일 뿐입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크게 다가옵니다. 철의 규율 속에서 지옥같은 상황에서도 견뎌온 사람들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변해가는 마당에 과연 '의지' 하나만으로... 이 회창..그도 한 지식인일 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를 평가하는데 좀 더 냉정하고 차분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무 길어졌읍니다. 역시 제 버릇은 어쩔 수가 없군요... :) 이제 명분이라는 것에 대해서 간략하게 제 생각을 말해보겠읍니다. 도니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현 정치상황에 명분이 있는가'라고 반문하셨는데.. 저는 다시 이렇게 되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 정치에 명분이 있었던 적이 있었읍니까?" 도니님은 어느 원로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셨읍니다. '이 시대엔 인물이 없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강력한 지도자, 영웅을 기다려야만 하는 현실이 역설적으로 더 안타깝게만 다가옵니다. "영웅이 없는 불행한 시대"가 아니라 "영웅을 기다려야만 하는 불행한 시대여..." 저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의식을 지배해버린 전제통치의 잔재를 봅니다. 언제까지나 우리는 보스를 기다려야만 합니까. 보스정치 계보정치의 문제에 대해 우리가 말하면서도 그 토양을 우리 스스로 제공하는 것은 아닌지요. '난쟁이 정치'는 멀기만 한 것인지요. 군사독재가 우리의 의식속에 드리워 놓은 어두운 그늘은 아닌지요. '민주주의 토착화', '강력한 지도력'이라는 말을 들을 때의 혐의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도니님..6공까지는 있었던 명분이 어떻게 지금 사라질 수 있읍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합니다. 정치는 썩었다고. 하지만 저는 그 썩은 시궁창에서 오히려 희망을 봅니다. 명분은 하루아침에 없어지고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썩었지만 수천년이래 썩었지만...그래도 명분을 쫓는 시늉이라도 내야한다는 점에서 저는 희망을 봅니다. 명분은 사라질 수 없읍니다. 구체적으로 오늘의 현실에서 명분을 물으신다면 군사독재에 협력하지 않은 것. 군사독재에 투항하지 않은 것. 지역구도에 기반하지 않은 것 을 들겠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시되어야 할 명분을 우리시대는 가지고 있읍니다. "정권교체의 가능성" 제 4공화국이라는 드라마에서 김영삼씨가 박정희에 대항해 그토록 단호하게 외쳤던 "정권교체" 그는 그것을 못 이루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배신 했읍니다. 그의 명분에 대한 배신때문에 오늘날의 혼돈이 있읍니다. 위의 어떤 게스트는 쌀문제때문에 민자당이 패했다고 분석(?)했는데 그 명료함과는 달리 그리설득력있는 분석은 아니군요. 아무튼 민자당은 이번 총선에도 패배가 예상되었고,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했읍니다. 바로 영입노력입니다. 남의 당의원을 빼내어 무력화시키려는 방법까지 써가면서 말입니다. 속 뜻이야 어찌되었건 이회창씨는 그런 집권당의 의도대로 움직여주었고 결과적으로 그를 도왔읍니다. 저는 김대중이 명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개인도... 그가 비록 영웅이라해도 명분이 될 수는 없읍니다. 혼란스러운 상황일 수록 명분에 대한 선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바로 지식인의 사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가 판단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지금으로선 이 회창. 그는 역사적 과제이며 절대명분인 '정권교체'를 어렵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정도를 걷는 다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가 봅니다. 그가 택한 길은 어느모로 보나 변칙입니다. 마지막으로 도니님의 약속 조금의 의심도 없이 믿겠읍니다. 하지만 도니님이 도니님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에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인물의 종말'에 대해 슬퍼하게 될 상황이 온다고 해도 저는 인물이 아닌 역사에 대한 희망을 또 읽을 것입니다. 도니님께서도 그러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이철의원의 말도 아닌, 이회창씨의 답변도 아닌 제 말로 맺겠읍니다. "그가 분재가 되지 않도록 매서운 눈보라가 오히려 필요합니다. 소나무는 눈보라 속에서 더 푸른 법입니다..." 냉정함은 지식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한곳으로 몰아주기가 아니라 여러소나무를 같이 만드는 그런 현실이 되기를... 그런 냉정함을 기다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