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kisto (석) 날 짜 (Date): 1996년01월31일(수) 15시06분30초 KST 제 목(Title): 개혁이라고요? 개혁?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한 개혁이다. 개혁이라 함은 고쳐서 바꾼다는 의미일테고.. 김영삼의 개혁은 그럼 무엇에서 무엇으로의 개혁일까? 박정희로부터 전두환에 이르는 시기, 한국 자본주의는 성장을 거듭했고 가진 자들은 더욱 살쪄갔다. 가진자들에게 군사 독재 정권은 더할 나위없는 최상의 지배형태였다. 저항은 폭력으로 짓밟혔고, 오직 그들과 그들의 이익만이 존재했다. 가진자들의 기름진 성장의 전면에는 군사 독재가 있었고, 그 이면에는 못가진자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이 모두가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못가진자의 고통은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가진자의 살진 배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외쳐졌다. 군사 정권의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가진자들의 배는 점점 살쪄 갔지만 못가진자 역시 단련되었고 강력한 저항을 조직한다. 폭압적인 군사 독재는 영원할 수 없었고, 저항은 위력적이었다. 전태일로부터 80년 광주, 87년 6월항쟁, 7,8,9노동자 대투쟁 에 이르는... 파쇼 통치에 대한 위협이었고 가진자들에 대한 분노였다. 이제 군부 독재는 약효를 다했고, 가진자들은 통치방식의 변화를 모색한다. 그 시작은 직선에 의한 노정권의 성립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합리적(?) 지배 체제는 완성되지 않았고 공은 김영삼 정권에 넘겨진다. 김영삼 정권은 그들의 개혁을 추진하는 과도 정부 2기이다. 이 개혁의 목표는 합리적 부르조아 지배 체제의 확립이며 절차적 민주주의의 완성과 자유 시장 경제의 확립을 그 양 날개로 한다. 물론 이러한 개혁조차도 그들의 능동적 선택이 아니다. 계급간의 갈등이 존재하는 사회 구조 내에서 지배 계급이 보이는 모든 개혁적 조치는, 그것이 아무리 한 점 개량에 불과할 지라도, 결코 그들의 아량이나 그 알량한 도덕성의 발로가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의한 것이며, 계급간의 역관계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피지배 계급의 투쟁이 거셀수록 지배자들의 용단의 횟수는 잦아지며, 그들은 목하 개혁을 추진 중인 것이다. 물론 지배의 본질적인 면을 위협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지배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한 문제되는 것은 그 지배 체제가 얼마나 세련된 외양을 갖추는가 이다. 518 특별법과 전,노 구속의 와중에서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가 죽었고, 해고 노동자 조수원 씨가 죽었다. 한전 노조의 김시자 씨가 분신했다. 민주 노총은 거부당했고, 한국 통신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이 되었다. 김영삼 정권은 개혁을 추진 중인 것이다. 소위 역사 바로잡기라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바로 잡힌 역사란, 바로 세워진 역사란 자신들의 통치 체제의 합리적 재편을 통한 지배의 공고화 이상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개혁이란, 정말 바로 잡힌 역사란 무엇일까? 노동의 땀방울이 제대로 대접받는 세상을 향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주인되는 세상을 향하여, 인간 해방과 사회 진보로 물결치는.. 참된 개혁은 여기서 시작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