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아이디) 날 짜 (Date): 1996년01월28일(일) 09시09분32초 KST 제 목(Title): 김대중에 대하여 김대중만큼 자주 이 보드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람도 드물다.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혐오의 대상이다. 도대체 이 사람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선 이 사람의 장점 또는 공을 살펴보자. 우선 그는 엄청 똑똑한 사람이다. 달변이고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었다. 그의 지적 축적이나 능력은 그의 비판자들도 인정한다. 이점은 눌변에 무식한 (한)김영삼과 대조적이다. 나는 그가 C-SPAN에서 미국 기자들과 기자 회견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발음은 좋지 않았지만 그의 영어는 대체로 훌륭했다. 읽고 쓰는 것은 몰라도 말하는 것은 그처럼 나이 들어 spoken English를 배운 사람에게는 힘든 일인데..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지식의 양이나 깊이 뿐아니라 그 내용도 대체로 옳은 경우가 많다. 경제문제나 국제문제등에도 대체로 구조적이고 합리적인 식견을 갖고 있다. 미국의 민주당 정도의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지고 경제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해 책을 쓴 적도 있다. 그 책은 하버드대에서 출판되기도 했다. 대통령이나 정치인이 모든 분야에 전문 지식을 가질 필요는 없으나 경제나 사회 문제에 구조적이고 적확한 인식을 가질 필요는 있다. 그런 인식이 없는 사람들은 보좌관이 불러 주는 대로 또는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좌충우돌하거나 수구 또는 현상유지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내가 흔히 보수 정치인이라는 사람들을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이것이다. 그들은 그저 부정부패사범 몇 명 잡아들이고 사회가 안정(?)되고 좌익을 경계 하면 세상은 잘 굴러갈 거라고 믿는다. 구조적 문제의 원인을 모르므로 구조적 처방을 내릴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은 장점이 있다. 그 사람이 대권에 근접한 명망가층 정치인 중에서는 가장 진보적이다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건 상대적 평가일 뿐이다. 넓은 시각에선 그는 보수 정치인 범주에 들어간다. 김대중은 일관되게 반군사독재 투쟁을 벌여 온 사람이다. 이점도 평가할 만 하다. 그가 보궐 선거로 국회위원에 당선되자마자 곧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는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국회에 혼자 등원을 시도했다. 이 사건은 그후의 그의 역정을 볼 때 참 상징적이다. 70년 대선에서는 사실상 승리하고도 부정 선거 때문에 박정희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했다. 10월 유신이 일어나자 어정쩡한 참여하의 투쟁보다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이철승은 아예 박정희의 부하가 되었고 김영삼도 70년대 중반까지는 숨을 죽이고 지냈었다. 이후 납치되어 국내로 돌아온 후엔 연금과 투옥(내 기억이 맞다면 선거법 위반과 명동 시국 선언 등으로 투옥된 적이 있었다) 상태로 지내면서도 재야와 동교동계 의원 등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반독재 투쟁을 했다. 박정희 체제 붕괴를 재촉한 신민당의 강경투쟁도 김대중이 김영삼을 신민당 총재로 밀지 않았으면 힘들었다. 80년 봄의 쿠데타 후엔 내란죄로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기까지 했다. 이후 레이건과 전두환의 흥정에 의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나중에 군사독재 세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귀국해 김영삼과 함께 5공 타도에 앞장섰다. 김대중의 독재 투쟁에는 물론 자신의 권력 의지가 일정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고도 군사독재 세력과 맞서 싸운 정치인도 있다. 하지만 70년대 이후 그만큼 큰 비중을 갖고 강경하게 군사독재 세력과 맞서 싸운 사람은 없다. 있다면 김영삼 정도인데 그는 감옥 한번 간 적 없다. 고작해야 연금 정도였다. 이해 반해 김대중은 납치 및 살해 위협, 연금, 투옥, 사형 선고, 망명 등 보통사람이 견디기 힘든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냥 권력욕만으로 그의 투쟁을 평가할 수는 없다. 권력을 원한다 하더라도 확률과 기대값을 계산해 볼 때 적당한 선에서 군사독재 세력과 타협하는 게 더 실익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6공이 던져 준 정당통합의 타협책도 그는 거부했다. 김영삼은 덥석 그 제의를 받아들였지만.. 그가 김영삼 보다는 더 원칙/명분에 충실했음은 사실이다. 그가 군사독재 세력이 조작해 낸 용공시비와 지역감정 공세의 피해자인 점도 부분적으로 나를 그에 대해 동정적 으로 만들었다. 이런 점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에 대한 나의 신뢰는 점점 약해졌다. 그의 잘못을 살펴보자. 그의 첫번째, 두번째 잘못은 80과 87년 김영삼과의 분열이다. 망각한 적이 있을 때는 함께 싸우다 적의 힘이 약해지면 대권을 위해 적전 분열을 거듭했다. 두 사람이 분열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대한민국은 일찍 군사독재를 벗어났을 것이다. 군사독재가 제 때 청산되지 못하고 온존함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구조악이 고착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는 한편 기회주의자들이 양지에 서게 되고 가치관의 전도현상이 발생했다. 몇 년도 아니고 수십년간 군사독재 가 지속되는 바람에 권력의 편에 섰던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국민들을 합리화/세뇌시키려고 들었고 이런 궤변이 먹혀들기도해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을 떨어뜨렸다. 군사독재의 나팔수 였던 자들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뻔뻔스럽게 전노를 매도하고 한편에서는 위기의식 때문인지 알량한 지적 자존심 때문인지 조갑제 같은 자들은 전노를 옹호하기도 한다. 두사람의 분열상을 보면 자신의 대권욕이 군사독재의 확실한 청산이라는 대의 보다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형식 논리에 따르면 양김의 책임은 정확히 반반이다. 하지만 선거라는 합법적 정권교체의 가능성이 존재했던 사실, 기득권 세력의 권력상실 가능성에 따른 두려움등을 고려했을 때 좀더 유화적으로 비친 김영삼 에게 김대중이 양보하는 게 옳지 않았나 싶다. 더구나 김영삼이 어릴 때부터 대통령의 야심을 불태워 온 사람이고 이성적 이라기 보다는 감성적이고 ego가 강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감안하면 김영삼의 양보 가능성은 애당초 없었다. 그는 집권을 위해 자신이 타도 대상으로 삼은 집단과 정략적 동거를 감행한 사람아닌가.. 김대중에게서 양보를 기대했는데 이런 기대를 져 버렸다. 더구나 87년의 경우 김영삼으로 단일화되었으면 지역감정 보다는 민주 반민주 구도가 선명하게 부각되었을텐데 아쉬운 대목이다. 나는 김대중이 대통령으로서 더 적임자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당선 가능성등을 고려할 때 김영삼이 야권 후보로서는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 한편 군사독재 연장을 막지 못한 두사람의 책임은 군사 쿠데타 주동자의 그것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양김은 그 과정에서 반국가적 불법적 행위를 한 적이 없다. 선거를 통한 권력 추구는 정치인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들은 그냥 당위적으로 했어야 좋은 일을 안한 것이다. 윤리적 비판이 따른다. 하지만 전노는 국가 기본 질서를 파괴한 놈들이다. 하면 절대 안되는 일을 한 것이다. 감옥이나 교수대가 그들이 가야 할 곳이다. 강도를 막지 못한 청원경찰과 살인 강도를 같은 차원에서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월간 조선의 조갑제는 강도는 탓하지 않고 청원경찰을 더 비난한다. 강도를 보고도 못본척한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의 또 다른 잘못은 그의 정계복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의 정계 복귀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었다. 그를 믿었다기 보다는 식언에 따른 부담을 갖고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하튼 그는 복귀했고 이는 몇 가지 문제점을 던져 준다. 우선 식언에 따른 정치불신, 냉소주의의 확대가 문제이다. 아무리 정치판이 개판이더라도 국민들이 비판의식을 가지고 악화를 걸러 내면 되는데 비중 있는 정치인이 국민과 한 약속을 번복하면 정치 불신이 커진다. 이는 잘못하면 정치적 무관심이나 냉소주의, 정책/노선 보다는 감성에 기초한 투표행태를 확대시킨다. 옳고 그름보다는, 내 고향 출신이니까.. 상대가 미우니까..등의 정서적 판단이 우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의 정계 복귀는 우리 정치의 병폐인 지역구도를 강화시켰다. 정계복귀 이전 까지는 그는 지역감정의 피해자였다. 지지의 강도가 높다 하더라고 소수의 지지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정통성이 없던 역대 군사독재 정권은 이성에 기초한 정책 대결 또는 민주 반민주 구도로 선거에 임하게 되면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점을 흐리기 위해 김대중 = 빨갱이 = 전라도 한풀이 대통령 후보의 이미지를 조작해 냈다. 반공 콤플렉스와 호남에 대한 타지역의 편견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김대중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는 없었다. 3당통합은 반호남 연합전선의 성립이나 마찬가지였다. 민자당은 냉전체제가 붕괴한 이후의 92년 선거에서도 용공시비를 벌였다. 약효가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의 폐해를 잘 알고 있을 김대중이 반호남 연합구도가 분열되자 지역등권주의를 들먹이며 정계에 복귀했다. 욕은 얻어먹겠지만 내각제 정도로는 승산이 있다고 보았던 모양이다. 이어 전개된 지자제 선거 국면에선 내각제 검토, 지역등권주의 등을 거론하면서 지역 분할구도를 부추긴 측면이있다. 김대중의 정계복귀가 김종필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 시켰다고 볼 수도 있다. 김대중은 지자제 선거에서 예상외로 선전하자 대통령제 고수를 주장하고 나섰다. 자신이 생긴 것이다. 정계복귀와 지자제 선거를 전후해 주장하던 지역등권주의와 내각제 검토 발언은 쑥들어갔다. 내각제든 지역등권주의든 장단점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지제 선거를 전후한 그의 발언의 변화 과정을 볼 때 그의 발언은 그의 충심이라기 보다는 정략적인 것이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사실 그때 그의 지역등권주의 운운은 충청도 사람은 김종필이 찍고 전라도 사람은 밉더라도 나를 찍어라라는 암시였다. 지역감정의 피해자였던 사람이 이를 이용하려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씁쓸 했다. 그의 정계복귀는 야당분열도 가져왔다. 야당이 쪼개지고 개인정당, 지역 정당의 구도가 강화되면 야당에 의한 수평적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자신의 권력욕이 대의를 앞서지 않고서는 할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가 정계에 복귀하지 않았다면 다음 대선 구도가 여야, 수구 개혁의 두 축으로 전개되고 누구든지 정통 야당 단일 후보로 부각되면 승산이 있으리라고 보았다. 국민의 선택도 쉬웠을 것이다. 김대중의 복귀는 이런 구도를 흩으러 놓았다. 여야가 서로 동시에 안정 세력임을, 서로 개혁 세력임을 주장하고 나서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고 다시 한번 지역감정이 대선 에서 중요한 인자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의 복귀는 야당에서 약해져 가던 오야붕-꼬붕 관계의 전근대적 정당 문화를 다시 강화시켰다. 더구나 야당 정치인에게 괴로운 선택을 강요한 책임도 있다. (야당) 정치인의 경우 명분과 자신의 입지가 중요한 요소이다. 여야의 노선이 분명해 보이고 야당으로서의 정권교체가 역사적 당위라는 신념이 있다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와 명분/대의는 갈등 관계에 놓이지 않게 된다. 야당분열을 통한 김대중의 정계복귀는 양자를 부분적으로나마 대립 관계로 돌려놓는 측면이 있었다. 국회의원 자리에만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아무 갈등을 느끼지 않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중의 상당수는 갈등 끝에 타협의 길을 택했다. 왜 타인에게까지 찝찝한 선택을 하게 하는가? 원칙의 포기가 무서운 것은 그것이 자기 합리화를 가져오고 다음에 유사한 또는 더 심각한 선택에 직면했을 때 쉽게 타협하거나 변절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호남 사람들은 아마 다음에도 김대중을 찍을 것이다. 그들이 전에 김대중을 지지했던 이유는 맹목적 지역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김종필을 지지하는 거나 대구 경북 사람들이 전/노에게 표를 던진 것과는 다른 행위였다. 객관적으로 보아 타당한 정치적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다음 선거에선 그를 지지하더리도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을 느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최근의 김대중의 행보를 보면 과거에 보였던 전향적이거나 진보적 목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보수층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서이겠지만 그가 막상 집권했을 경우 과감한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인지 의심이 간다. 왜 기득권 계층의 반발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구조적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해서 지지를 확보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김대중의 정계복귀의 긍정적(?) 측면을 하나 지적하고 싶다. 김대중의 복귀가 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김영삼을 자극해 그가 전/노를 재판에 회부하는 한 계기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전/노의 처단은 거시적으로는 왜곡된 역사를 그냥 내버려둘 수 없다는 국민적 여론,압력의 결과이고 미시적으로는 비자금 사건, 대선 자금 문제, 헌재선고 예정, 김영삼의 인기하락등이 작용한 것이지만 김대중의 집권을 저지하려는 김영삼의 의지도 한몫을 했다고 보야야 할 것이다. 김대중의 복귀가 김영삼의 수구/보수화 움직임에 제동을 건 측면이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건 김대중의 의지가 작용한 것은 아니므로 그의 공이라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이제 김대중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과거의 진보적 정치인, 투사의 이미지보다는 노회한 정객이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에 대한 단정적 평가는 주저한다. 그가 과거의 김대중이 아닌 것처럼 내눈에 보이듯이 앞으로 어떻게 또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누가 김영삼이 전노를 감옥에 보내리라고 짐작했겠는가. 전노나 김종필 처럼 이미 과거의 죄과만으로 단정적 평가가 가능한 사람이 있는 방면에 김영삼이나 김대중 처럼 공과와 양면성을 같이 갖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 보드엔 김영삼과 김대중의 지지/반대자들이 많다. 나는 그들이 가능한 한 호불호의 감정을 배제하고 양김을 바라보길 권한다. 물론 그런 감정을 아주 배제할 수는 없다. 냉철한 분석에 따라 나쁜 놈으로 판단이 되면 싫어하는 감정을 피할 수도 없고 구태여 피할 필요도 없다. 나도 전노를 옹호하는 조갑제 따위의 글을 읽으면 어이 없기도하고 열이 받기도한다 (그는 전노가 서울올림픽을 유치하고 치뤄내 동서화합의 계기를 마련하고 냉전 체제가 붕괴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냉전체제의 몰락이 올림픽 때문이라는 이 희한한 논리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정신착란인가?) 하지만 그 감정이 다시 분석의 전제가 되면 합리적 선택이 불가능해진다. 이런 태도 (감정을 분석 평가의 전제로 삼지 않는 것)를 견지하면 이 보드에서 자신과 다른 의견을 접하더라도 불쾌하진 않을 것이고 익명의 가면을 쓴 체 "XXX가 잘한 것 있으면 하나만 대봐"라는 식의 유치한 글은 쓰지 않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