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5년12월01일(금) 10시47분17초 KST 제 목(Title): [기사] 인혁당 사건 20주년 NowNuri ─────────────────────────────────── NEWS본문검색-전체1/3 ────────────────────────────────────── 뉴스제공시각 : 04/03 20:22 제목 : [금주의 작은역사] 인혁당 8명 사형집행 20주기 ----------------------------------------------------------------------------- - 오는 9일은 민청학련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인혁당 관련자 8명의 사 형집행이 이루어진 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75년 4월8일 오후 3시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은 지 20시간도 지나지 않은 9일 새벽 여덟 사람을 차례로 처형했다. 반유신 투쟁의 고조로 위기를 느끼던 박정희 정권이 국면 전환 용으로 인혁당계 인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정권 안보의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이수병 서도원 도예종 하재완 김용원 우홍선 송상진 여정남씨 등 희생 자들은 74년 5월27일 비상군법회의 검찰부에 의해 내란예비음모, 내란선 동 등의 혐의로 기소된 뒤, 6월15일부터 10개월 동안 요식행위에 불과한 재판을 받았다. 심지어 재판에서 판단의 결정적 근거가 될 공판조서까지 조작되고 전기고문·물고문을 비롯해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온갖 고문에 시달린 이들은 사형 집행이 이루어진 날까지 1년 동안 가족의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이수병씨의 주검은 얼마나 혹독하게 전기고 문을 당했는지, 손톱·발톱은 물론 등허리까지 새까맸다. 이철 유인태씨 등 당시 민청학련 관련자들은 배후실체로서 인혁당을 지 금도 부정하고 있고, 또 공소과정에서 민청학련과 인혁당의 관련이 객관 적 자료나 문건에 의해 입증되지도 않았다. “내가 죽는 이유는 민족민주 운동을 한 죄뿐이다”라고 쓰인 이수병씨의 유언장를 통해 이 사건의 실 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제네바에 본부를 둔 국제법학자협 회는 인혁당 사건의 최종판결이 난 75년 4월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 이라고 선포했다.강성만 기자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