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haos (수리샛별) 날 짜 (Date): 1995년07월30일(일) 04시18분14초 KDT 제 목(Title): [kds] 언론을 개혁해야 김영삼도 산다 글 쓴 이(By): guest (kds) 날 짜 (Date): 1995년07월30일(일) 02시02분23초 KDT 제 목(Title): 언론을 개혁해야 김영삼도 산다 ............................................................................... ............................................................................... ... 이 글을 읽기전에 제가 올린 '김대중 죽이기' 를 먼저 읽어주시길.. 이 글은 계속 이어지는 글이기 때문에 바로 읽으시면 반발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갑자기 중간에 이런 글이 나오면 누구나 이해하기 힘들죠. 언론을 개혁해야 김영삼도 산다. 언론의 문제는 비단 김대중에게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사실 오늘날 김 영삼 정부의 개혁이 큰 어려움을 격고 있는 이유도 부분적으론 수구적인 언 론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잘못된 과거를 청산하 는 일에서 언론이 '열외'인 이유는 무엇인가? 도대체 누가 언론에게 그런 특권을 주었는가.? 이물음에 답하지 않고선 , 김대중의 왜곡된 이미지를 바 로 잡는 건 물론 김영삼정부의 개혁도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언론에게 그런 어처구니없는 특권을 배푼 건 다름아닌 역대 정권들의 언론 관이다. 정치권력은 언론을 통치의 도구로 간주해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김영삼정부도 예외는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 초기에 제일 먼저 언론계의 과거 청산부터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김영삼정부는 사람을 죽인 칼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좋은 일에 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건지는 모르 겠다. 그러나 언론은 무생물인 칼과는 다르다. 김대중을 빨갱일 모는 데에 앞장 섰던 사람들이 세상이 달라ÐФ다고 해서 개혁의 당위성에 얼마나 공감하겠 는가. 지난 94년 이른바 '공안정국'을 주도 했던 게 언론이었음을 모르는 가? 많은 사람들이 꽤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바람'근성 을 예로, 한번 이 문제를 들여다 보자. 그말은 한편으로 우리사회가 그 어떤 바람에 휩쓸리기를 좋아한다는 것 아 닌가. 즉, 우리 국민이 바람에 약하다는 얘기다. 예컨데, 책의 탤레비전 광고가 우리나라처렴 성행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엇이 유명하다 하면 우우 몰려가기를 좋아 한다는 것이다. 영하도 뭐가 잘됐다 하면 관객이 우우 몰린다. 무슨 음식점 이 유명하다 하면 거기에도 우우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자학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분 명 그런 특성이 있다. 그것이 민족성인지 아니면 사회적 구조와 제도의 부산물인지 그건 확실치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대통령에서부터 말단 공무 원에 이르기까지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이 사회적 분위기에 대단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말 그대로라면, '공안정국'이란 모든 국민이 국가안보에 대해 튼 위 협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어느 정도의 국민이 정말 로 국가안보에 대해 걱정을 하는지 그건 알길이 없다. 다만 남들이 그렇 게 생각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뿐이다.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쉽 게 편승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집 단주의 의식이 강한데, 그 특성이 여기에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 이다. 공안정국이 아닌 상황에선 '훈방' 정도로 풀려날 수 있는 범법자가 공안 정국 하에선 몇년 징역을 살 수도 있다. 공안정국이 아닌 상황에선 그저 좀 급진적인 학문의 입장이라고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책이 공안정국 하 에선 갑자기 '이적 출판물'이 되어 온 사회를 떠들석하게 만들 수 있다. 요컨데, 공안정국은 마법의 지팡이와도 같은 것이다. 그런 비 이성적이고 병리적인 사회적 상황을 가장 강력히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은 지식인 그릅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언로엔 지식인 그룹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언론에 종속돼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 니. 우리 사회에서 말깨나 하고 글깨나 쓰는 대학교수들은 모두 언론매체를 통해 '등단'하기 때문에 언론매체의 취향에 따르지 않는 한 자신의 의견을 말할 통로를 얻지 못한다는 거다. 공안 정국을 부추긴 주범 중에 일부 지 식인들이 가세하고 있음은 바로 그런 까닭에서인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또 왜 공안정국을 원했을까? 여기서 언론은 두가지로 분류된다. "조선일보"처럼 극우적인 이념을 갖 고있으면서 장삿속도 차리는 언론이 있는가 하면, 그저 장삿속에 눈이 어 두워 어떤 기류에 무임숭차하기를 좋아하는 언론이 있다. 이 후자의 언론 은 전자의 언론의 뒤를 쫓아가게 되어 있다. 왜? 한국의 언론시장엔 '이 념의 그레샴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우적 이념과 극좌적 이념은 시장에서 결코 동등한 무게를 갖지 않는다. 주사파를 극좌로 본다고 할 경우, 그게 과연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시장성 을 가질 수 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반면 "조선일보"식의 극우적 이념 은 높은 시장성을 자랑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중의 공포감과 이기심을 자극하는 '극우'는, 중도적 입장이나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입장마저도 붉은색으로 슬쩍 덧칠시켜 시장에서 내쫓아 버리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지금 "조선일보"가 하는 짓이 바로 그것이다. 이건희회장의 특명을 받고 '신문혁명'을 선언하면서 "조선일보"를 따라잡 겠다고 나선 "중앙일보"가 "조선일보"를 흉내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들 자신과 그들이 지지하는 수구기득권 세력의 입지를 강화 하면서 돈도 버니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 아닌가. 사실 자유민주주의란 무었인가? 좌파가 자유민주주의를 싫어하는 건 그 다 원주의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사상과 발언에 똑같은 무게를 인정해주는 다원주의 체제하에선 좌파의 이상이 실현되기 어렵다. 그래서 좌파는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런데 기절초풍할 일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공안정국'이 회오리 치던 당시 우리사회의 어느 구석에 '모든 종류의 사상과 발언에 똑같은 무게를 인정해주는 자유민주주의'가 존재 했었느냐 이 말이다.기회 있을 때마다 입에 게거품응 품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떠들어대던 "조선일보"는 오히려 자유민주주의를 짓밟는 데에만 광분했으니. 도대체 이게 어찌된 일이냐 이 말이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할수 있다는 건 듣도 보도 못한 애기다. 일국의 국회의원이 김일성 사망과 관련, 조문단 파견을 거론했다고 해서 유권자들이 다음 선거에서 그런 국회의원들을 떨러 뜨려야 된다고 주장을 했던 신문이 바로 "조선일보"아니더냐. 그게 무슨 자 유민주주의 란 말인가? 참으로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굳이 따져볼 것도 없이 , 언론이 공안정국 조성을 통해 얻고자 하는건 개 혁의 중단이다. 김영삼정부가 집권초기에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느니 어쨌 느니 하지만 , 바로 그런 공안정국이 김영삼 정권 출범 전보다 우리 사회 를 더 후퇴시켰다. 언론은 조작된 여론을 김영삼정부에게 들이밀며 여론 을 따르라고 압력을 가했다. 이렇게 말이다. '개혁이다 뭐다 까불지 말고 국가안보나 잘 해!'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빈부격차를 해소하느니 어쩌느니 떠들지 말고 주사파나 척결해!' 언론이 주사파의 존재를 터무니없이 부풀렸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정 말 주사파를 척결할 생각이라면 , 그 개념 정의부터 엄격히 해야 한다. 그 래야 가혹하게 응징하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을 터인데. 언론이 하는 짓은 오히려 정반대 였다. 사회운동 경력만 좀 있으면 무조건 주사파 로 몰렸다. 주사파를 잡아낼 생각은 않고 주사파가 엄청나게 많다는 분위기 만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대학 총장은 언론의 그런 음모도 모른 채 자기가 잘나서 대서특필해 주눈 줄 알고 계속 횡설수설 하면서 언론 장단에 놀아 났으니 참으로 안 타깝기 그지없다. 새삼스레 놀랄 건 없다, 겉으로는 개혁을 지지하는 시 늉을 내면서 속으로는 개혁에 딴죽을 걸고 있는 게 일부 언론의 작태가 아닌가. 결론은 분명하다. 언론이 바로 서지 않고선 김대중은 역사적 평 가에 있어서도 제 자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언론개혁이야말로 이 나라 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출발점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