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dorosolo) 날 짜 (Date): 2002년 1월 23일 수요일 오전 09시 07분 53초 제 목(Title): Re: 서양 철학...? 이건 imnot님(aizoa님도 포함해서)에 대한 답글... >따라서 계속 같은 얘기가 반복되는 거 같다는 거죠.... >이걸 어쩌죠? 이거야 생각이 자기 자리에서 맴돌기 때문이지요... 암튼... 글쎄요... 먼저 비유 문제는... 듣는 사람이 비유를 살려내지 못하거나 않는다면 비유란 의미가 없게 되지요. 사실 비유하고 딱 들어 맞는 상황이란 거의 없기 때문에... 예를 들어, 여우와 신 포도 비유를 했더니, 그걸 듣던 사람이 "난 여우 아닌데? 저게 신 포도야?" 이런다면 뭐 더 할 말이 있겠 습니까? ^^ 철학이 개별학문의 발전으로 영역이 축소되지만, 아직도 자기 영역은 충분히 있어 보인다는 것이 제 비유의 포인트인데, 인식론 같은 중요한 분야를 자연과학에 빼앗겨버리면 철학은 알맹이 없는 찐빵이다 이런 답변이네요... 정리하면, 지금 의견차이는 두가지 부분에서 나오고 있지요? 첫번째는 신경과학 같은 자연과학에 의한 철학의 인식론영역 해체가 굉장히 큰 철학의 위기이다/아니다... 두번째는, 어째 거나(인식론이 철학 존폐에 큰 영향을 주건 안주건) 앞으로 철학이 할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그래도 있을 것이다... 비유 말고 예를 들어 봅시다. 100여년전 맑스와 그를 추종 하는 몇몇 철학자들은, 철학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등등의 분야에서 탁월한(사회 주류에 대한 도전이라는 면에서 종종 외면 당하기도 했지만) 업적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그 철학자들이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그런 일들, 인문사회과학의 제분야를 넘나들며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 일들을 잘 할 수 있을까요? 못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지요. 이미 오늘날에는 인문사회과학의 제분야들이 세분화되어 발전을 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 이라도 한 개인이 영역을 넘나들며 큰 기여를 하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이런 예를 든 것은... 지금 이야기에서 자연과학에 의해 철학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데, 사실 철학의 영역은 자연과학 뿐 아니라, 인문사회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새삼 주의를 돌려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시간 반대 방향의 가정을 생각하면, 맑스 류의 철학자들이 고대 그리이스(자연과학이 아직 전문적으로 분화되지 못한 시대의 예)에서라면, 자연과학 쪽에서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을지도 모르지요. 철학의 관점에서 19세기만 해도 이미 자연과학은 충분히 전문적으로 분화가 되었고, 20세기를 넘어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인문사회 과학쪽으로도 전문화/세분화 경향이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예를 든 두번째 이유는... 철학의 분야 중 왜 자꾸 인식론 에만 집착하는가 의문스러워서 입니다. 위 예에서 들어졌던 100여년전 철학자들이 나름의 인식론 기초에서 자기 철학 체계를 풀어갔던 것은 분명합니다만, 그들의 인식론이 신경 과학에 의해서 해체되었을 때 그들의 업적에 대한 평가, 오늘날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의미 등이 달라지게 되나요? imnot님은, 저로서는 이유를 짐작하지 못하겠지만, 신경과학 발전에 의해 인식론이 해체되는 것이 철학영역 축소를 넘어 존폐에 대한 중요한 도전이다라고 하시고... 저는 철학 영역 축소는 자연과학 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 등 과학 제분야가 전문화/세분화되어 발전하면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왔으며, 그 영역 축소가 의미하듯이 철학이 기여하고 활동한 범위는 인간의 인식론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철학의 위기는 제분과학문이 전문/세분화되어 발전하는데 있는 것이지, 특별히 거기서 신경과학의 발전이 철학에 더 큰 위기를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인식론이 신경 과학에 의해 해체된다는 것이, 종종 자연과학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의문이 제기되는 심리학이라는 인문과학이 철학에서 분리되어 벌써 충분히 전문화되어 발전한 것 이상으로 철학에게 위협을 준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앞 비유에서 누가 술의 70%를 먹어버렸는지는 서로 알고 있다는 말을 했는지는, 설명이 되었을까요?) 그래서... 어째거나, 인문/사회/자연과학의 제학문의 발전에 의해 철학 영역의 축소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두 동의할 것 같고... 저는 그래도 철학이 할 일은 있다는 주장이고, imnot님이나 aizoa님은 이제는 별로 할 일이 없을 것이다라는 뜻이신 것 같은데... 여기서 일단 aizoa님 글을 볼까요? >철학사를 가지고 공부하는 것. > >그리고 생각을 끝까지 진행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다른 분과학문의 틈에 >존재하는 것(예를들어 생명과학의 윤리문제)을 연구하는 일. 제학문의 발전에 따른 철학 영역의 축소에 따라, 프로 철학 자들에게 이런 일이 전보다 많이 의미있어지리라고 저도 생각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하는 프로 철학자들을 폄하한다면, 최소한 인문학에서도 같이 이유로 폄하당할 분야가 많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폄하의 사유은 안되겠지요. 철학의 할 일이 남아있다는 제 주장을 위해,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앞의 제 글에 훌륭한 물리학자가 훌륭한 철학자로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지요. 좀 더 직접적인 예를 들어 볼까요? 인식론을 해체한 훌륭한 신경생리학자가 훌륭한 철학자가 될까요? 이것도 와 닿지 않는다면, 윤리 문제에 탁월할 것 같은 법학자는 어떨까요? 훌륭한 법학자는 훌륭한 철학자일까요? imnot님이 영화나 봉사활동 이야기를 하시던데, 심오하고 알듯 모를듯한 영화를 만들어 내는 영화감독은 철학자일까요? 사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 훌륭한 철학자가 됩니까? 왜 이런 사람들이 철학자라는 생각이 안들지요? 그들은 정식 철학교육을 받지 못했고, 철학자들 계보를 잘 모르고 철학 텍스트 해석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일까요? 물론, 이것도 부분적으로는 이유가 되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앞글에서 제가 나름대로는 통찰이라는 말에 의미를 둔다고 했는데, 표현이 부족했던 것 같네요. 이렇게 '통찰'이라고 표기해 보겠습 니다. 과학(인문/사회/자연 과학을 포괄한)의 제분야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어 발전했지만, 자기 분야에서 상당한 전문가인 의학자, (자연)과학자, 공학자라도 진화론에 대해 닭소리를 하는 것에서, 또 엉터리 사회 의식을 가지고 침 튀기며 닭소리를 하는 것에서 현대사회의 세분화된 사회 각분야에서 전문가라는 것이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힌 시각을 가진 인간이라는 의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으며, 대부분의 우리는 저런 결여된 인간보다는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인간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사회를 사는 우리가 균형 잡힌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서는, 세분화된 자기 분야에서 전문가인 것만큼이나, 자기 분야가 아닌 분야의 결과들을 취합해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전체적으로 돌아 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아보는 시각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나는 '균형 잡힌 인간'? 이런 거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한다면, 더 이상 이야기가 필요 없을 것이고요.) 저는 철학이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통찰하면서, 우리가 인간의 삶을 해석하고 우리가 사는 인간사회와 더 넓은 세계을 이해하는 기본 방향을 제시하는... 이것은 과거에도 철학의 중요한 일이었으며, 미래에도 여전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 세분화된 자기 분야에서 결여된 시각을 가지기 쉬운 현대인에게는 어쩌면... 제학문 분야의 성과를 취합해서 균형된 시각을 제시하는 일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전문 철학자만이 할 수 있을까요? 전문 철학자가 더 잘 할 수 있는 토양에서 역량을 키워왔으며 더 잘할 역량을 갖췄 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에도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반드시 전문 철학자만이 그런 일을 잘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요. 하다못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포장마차 아저씨에게서 삶을 통찰하는 지혜를 한토막 듣게 된다면, 그 아저씨의 개똥'철학'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처럼요. 하지만, 전문 철학자가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여전히 그것을 (개똥)'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여전히 그것은 철학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앞 글에서 과도한 환원론의 문제를 지적했고, 부분의 오류인지 전체의 오류인지 암튼, 개별의 성질을 근거로 전체에서 새로 발생 하는 성질을 무시하는 오류인지를 거론했습니다만... 이런 거론의 이유가, 철학을 개개학문의 단순 집합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전체를 통찰하고 균형 잡힌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 역시 철학의 중요한 일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글이 길어지니까 마무리를 잘 못하겠는데, 이제 좀 앞글들을 한두개 인용하면서 포인트들을 되집어볼까 합니다. 다시 한 번 aizoa님의 글을 인용하면... >그리고 생각을 끝까지 진행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다른 분과학문의 틈에 >존재하는 것(예를들어 생명과학의 윤리문제)을 연구하는 일. 재밌게도 이 문장에서의 예가 제학문 분야의 결과를 취합해 우리 에게 삶의 기본이 되는 이정표를 제시하는 예입니다. 이건 imnot님 글인데... >>인간이 소립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서, 인간 사회를 소립자 >물리학으로 보려는 환원론적 태도가 잘못된 것임을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듯이, 자연과학이 기본 문제를 풀어준다고 해서 >대상이 다른 인간과 그 인간사회에 대한 학문(네... 저는 인문학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이 가지는 의미와 할 일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 우선 저는 환원론적 태도가 왜 잘못된 건지 '새삼 거론할 필요 >가 없을 정도'인지에 대해 동의하기 힘들고요. 이제는 동의가 좀 되시는지... >대상과 다른 인간과 그 인간사회에 대한 학문이 꼭 인문학에만 국한 >시킨다는 설정 또한 동의하기 힘듭니다. "(입자물리학이 다루는 소립자와)대상이 다른 인간과 그 인간사회에 대한 학문"이 꼭 인문학에만 국한시킨다는 설정은 제 이야기가 아니고요. 제 이야기는 인문학이 주로 이런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국문학도 그런 인문학의 예가 될 수 있겠고요. 사회과학은 인간과 그 인간사회를 다루는 다른 형태의 과학 혹은 학문이겠지요. ********************************************************* * 키즈 = 하나두 안사아칸 라임의 즐거운 놀이터...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