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Tao ( 烏有先生) 날 짜 (Date): 2000년 11월 30일 목요일 오후 04시 49분 59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79) [주 제] 노자를 웃긴 남자(79) ─────────────────────────────────────── 이 장의 해설에서 주인공 가라사대, 『是以로(그러하므로) 성인은 배(腹)가 될지언정, 눈(目)이 되질 않는다. 이것은 또 뭔 말인가? 이미 우리는 3장의 "虛其心,實其腹"에서 心(유위)과 腹(무위)의 의 미를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또다시 腹(배)이 目(눈)과 콘트라스트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내가 제2장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말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시각 중심의 인식 구조의 허망함을 지적한 바 있다.』<노자와 21세기> 하권 120쪽 하단-129쪽 상단 도올이 야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를 디기도 어렵게 풀어.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는 말을 '배가 될지언정 눈이 되지 않는다'라 항께네 암만 생각해도 쪼께 지능지수에 문제가 있는거 같애. 배가 되고 눈이 되다니? 사람이 우찌 밥통하 고 눈까리로 둔갑을 하노? 성인이 무신 기문둔갑술 하나? 그걸 해도 그렇지, 용이 나 호랑이로 둔갑해서 싸우는건 봤어도 지 밥통하고 눈으로 둔갑하는 넘은 본 적이 엄따. 할아방이 뭔 말을 못해. 밥통이나 소중히 여기고 눈에 보이는 쾌락같은건 잊 어부리라꼬 말한 걸 갖꼬 아조 심오불가식한 인식론을 끌고 나온께 기가 멕히제. 곽제 마음(心)이 유위로, 배(腹)가 무위로 둔갑을 하고 나오자나. 할아방이 여기 서 말하는 눈(目)은 시각 작용이나 인식론 따위가 아니라 '감각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나 노력'을 대표하는 상징어이고, 배(腹)는 '생존의 조건을 충족시키는 '소박 한 의식주' 또는 '노동'을 의미하는 말이야. 그런데 도올은 이 장에서 할아방이 말 하려고 하는 것은 몽땅 갖다버리고 뒷부분의 한 글자일 뿐인 눈(目)에만 매달려 난 데없이 '시각 작용의 모호성'을 시비하는 인식론으로 날라 버린다. 정말 구제불능 이제. 그리고 저런 황당한 소리 다음에 불교에 대해서 뭘 안다는 건지 "제1식"까지 들 먹이고 나온다. 도올이 여기서 말하는 "제1식"이란 불교의 유식설에 나오는 팔식( 八識)의 첫 번째인 안식(眼識)이다. 이 팔식과 그것을 설명하는 유식설에 대해서는 내가 <마음의 여행>이란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해 놓은 바 있으니 여기서는 생략하 기로 하지마는 제1식인 안식(眼識)을 이런 경우에 끌어다 붙이는 것은 그야말로 무 지에서 나온 만용이고 망발이야. 도올이 불교에 대해서 떠드는 것을 보마 할아방 갖꼬 개그쑈하는 것보다 더 웃기. 한번 볼래? 『여기서 腹과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目이란 불교의 용어로 말하자면 "제1식"(the first Consciousness)에 해당되는 것이다. 제1식은 인간의 8식 중에서 가장 원초적 이고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또렷하고 가장 즉각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러하 기에 가장 에러의 가능성이 높고, 가장 이 세계를 왜곡되게 구성할 수 있는 것이 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왜곡을 幻(maya)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幻有요, 幻化요, 幻 作이요, 幻術이요, 幻影이요, 虛幻이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로서 인식하 는 대표적인 行爲다. 지나가다 놓여있는 새끼줄이 뱀으로 꿈틀거리기도 하고, 세워 놓은 때묻은 빗자루가 도깨비로 변하여 나와 씨름을 벌이기도 하는 것이다. 이 모 든 것이 제1식의 천박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노자와 21세기> 하권 129쪽 중단 어떻노? 지 혼자서 잘 놀제? 뱀하고 도깨비가 여게서 와 나오노? 불교의 유식설이 이 장하고 무슨 연관이 있다 말이고? 여기서의 눈(目)은 앞서 말한 '오미,오색,오음 '의 대표로 나온 것이야. '감각적인 향락과 쾌락'을 상징하는 말이지 원효의 '일체 유심조'적인 인식론이 나올 장합이 아니라 말다. 영어로 '퍼스트 컨셔스니스'라고 나발을 불면 뭐 유식설씩이나 잘 아는 사람으로 보이나? 글고 유식설이 '시각 작용 의 착각'이나 '시각 중심의 인식의 오류'를 따지는 학설이가? 그리고 'maya'라는 것이 유식설에서 언급되는 개념이가? 유식설은 정밀한 정신분석학이며 마음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이며 영혼의 실체에 대한 고찰로서 윤회설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시각과 인식'의 문제는 유식설의 주제가 아니며 그것은 실상론(實相論)에서 다 루는 것이다. '幻(maya)'의 원인은 '제1식(眼識)의 천박함'이 아니라 '마음(心)의 총체적인 모호성'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유식설을 가지고 도올과 논쟁을 할 가치 도 이유도 없겠지. 제1식이 어쩌고, maya가 어쩌고, 콘트라스트가 다 나오고 하는 것은 몽땅 도올의 선천성 구제불능성 고질병인 '유식 과시증'의 발작이야. 할아방은 '인간의 쾌락을 쫓는 욕망의 전체'를 가지고 말하고 있는데 도올은 눈 하나에 매달려 '시각 인식론'을 장황하게 주절거리고 있으니 얼척이 없을 뿐이야. 이 장에서의 '눈(目)'을 얼굴에 두개 달린 진짜 눈알로 보고, '배(腹)'라는 것도 진짜 밥통으로 받아들이고 있어. 여기서의 배(腹)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충족' 을 의미하는 것이지 밥통이 아니야. 밥통은 도올이 밥통이지. 밥통이 계속해서 무 슨 밥통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함 봐바. 기도 안 멕히. 『그러한 눈의 인식에 비한다면 배의 인식은 보다 근원적이요, 보다 막대하며, 보다 무차별적인 것이며, 보다 지속적인 것이다.' ┌───────────┬─────────────┐ │ │ │ │ 目(visual feeling) │ 腹(visceral feeling) │ │ │ │ ├───────────┼─────────────┤ │ 幻 │ 常 │ │ 차별적 │ 무차별적 │ │ │ │ └───────────┴─────────────┘ <노자와 21세기> 하권 129쪽 하단 천만 다행스럽게도 밥통에 대한 이야기가 길지는 않다. 그런데 함 봐바. 위의 저 박스까지 둘러놓고 해논 소리가 말이나 되는 소린지. 밥통은 소화기관이다. 이것을 인식기관이고 감각기관이라고 우기는 소리다. 내 살다가 살다가 밥통을 감각기관이 라 하고 밥통으로 인식한다고 우기는 얼간이는 첨 본다. 아무리 할아방이 무지무욕 하게 살아라 했어도 그렇지. 우찌 사람이 밥통으로 인식을 하고 사노 말이다. 위대 한 학자가 되고 나면 약간씩 또라이가 되는 모양이제. 지 딴에는 별거 아닌 소리를 억시기 심오한 뜻이 있는 철학적인 통찰일거라고 여기나 본 데 경천동지할만한 희 한찬란한 소리라야 위대한 사상이 되능기 아니야. 위대한 사상이나 철학 종교는 모 두 단순명료하고 극히 상식적인 말씀들 위에 서 있는 것이야. 이것으로 끝인 것 같제? 하지만 이 장의 개그는 이게 다가 아이다. 크라이막스가 또 있어. 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