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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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0년 11월 22일 수요일 오후 10시 15분 17초
제 목(Title): Re: [parsec]님의 글에 대한 구름님의 답변



:  서른개의 살을 살통에 모아서 만드는 것은 수레가 아니라 바퀴입니다. 때문에 수
:레의 쓰임이 나오는 빔은 바로 바퀴의 빔입니다. 찰흙을 이개는 것은 '연치'이지만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은 그릇이 아니라 바로 '이개진 찰흙 즉 선식'입니다. 그 흙에
:빔이 생길 때 그릇이라는 용이 나온다는 문장입니다. 문을 뚫으면 만들어지는 것
:은 문이지 방이 아닙니다. 그러나 문을 뚫어야만이 방이란 것의 빔이 생기고 그것
:에서 방의 쓰임이 나온다는 문장이지요. 이 세 문장은 그 구조와 의미가 모두 동일
:합니다. 하는 일은 '바퀴를 만드는 일'과 '흙을 이개는 일'과 '문을 뚫는 일'이고
:만들어지는 것은 '바퀴'와 '이개 놓은 흙'과 '문'입니다. '삼십복공일곡'해서 만드
:는건 바퀴지 수레가 아니고, '연치'를 해서 만드는 것은 선식(찰흙)이지 그릇이 아
:니고 '착호'로 만드는 것은 문이지 방이 아닙니다. 문장의 구조와 의미를 치밀하게
:보지 않고 대충 설렁설렁 봐서 넘기기 때문에 고전의 번역이 엉터리가 되는 겁니다.

구름님의 이부분 마지막 말씀을 읽고 납득하는 바가 있어 원문을 다시 한번
들여다 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잘못 해석한 곳이
많이 눈에 띄는군요.
첫째 車라는 글자를 우리는 그냥 보통 '수레'종류를 의미하는 걸로 생각하지만
'수차'나 '풍차'같은 쓰임에서 알 수 있듯이 車에는 '바퀴'의 의미도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위에 언급하신 세 문장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첫번째 문장은
다소 다른 구조로 돼 있다는 것입니다. 2, 3째 문장이 "A 해서 B를 만드는데
`그' 빈것에 B의 쓰임이 있다"는 구조인데 비해 첫번째 문장은 A가 B에 모이는데
`그' 빈것에 C의 쓰임이 있다"라는 구조인 것입니다. 2, 3번째 문장에서 其가 앞의
B를 받건 뒤의 B를 받건 의미상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데 비해서 첫번째 문장에서는
其가 뒤의 車를 받는다고 해석하면[1] `문장의 의미만을 놓고 볼 때[2]' 구름님과 
같은 해석이 나올 수 있습니다만, 앞의 문장중의 어떤 명사를 받는다고 하면 '그 빈 
것' 이란 輻이나 곡(hub)의 빈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3]. --일단 문장 구조상 
말이죠. 
[3]의 경우를 먼저 생각해 보면, 여기서 현실 속의 데이타를 가지고 위의 가능한 
의미들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요, 스포크에는 이렇다할 빈 곳이 보이지 않는데 
비해 허브에는 축을 끼우기 위한 구멍이 나있으니 '그 빈것'이란 일단 곡(허브)의
축 끼우는 구멍이라는 해석이 선택됩니다.
[1]의 경우처럼 其가 문장 뒷부분의 車를 받는다고 할 때는 앞서의 글에서의 
제 해석처럼 앞에서 바퀴 구조를 얘기하면서 수레의 쓰임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전혀 동떨어진 해석이라고 치고, 이것은 바퀴의 쓰임을 얘기한 것이라고 하면
구름님의 해석쪽이 좀 더 핀트가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즉 바퀴가 바퀴로서 쓰이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건을 얘기한다고 보는 거죠. 사실 수레는 제가 앞서 글에서
상정한 것처럼 상자모양이 아니라 그냥 판자떼기 하나만 얹어 놓아도 짐을 실을
수는 있으니 수레의 요건으로서 상자같은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별로
맞는 얘기가 아닌듯합니다.
그렇다면 바퀴가 바퀴로서 사용되기 위해 필요한 건 뭘까요? 구름님께서
수고롭게도 바퀴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를 해주셨습니다만 바퀴둘레와 살대와
바퀴통으로 이루어진 바퀴가 출현하기 이전에 디스크로 만든 엉성한 바퀴가
있었습니다. 그건 구름님 얘기처럼 공학적으로 최적화되지 못한 원시적인
바퀴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굴러갔습니다. 수명은 길지 못할지라도
어쨌든 바퀴구실은 한 겁니다. 구름님이 예로 드신 사이클 경주에 사용되는
디스크 바퀴나 열차의 바퀴등도 한정된 조건에서라고는 하지만 바퀴로서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물론 옛날 그대로의 디스크 바퀴는 아니지만 살대가 없는 통짜 바퀴라는 점에서
원시적인 디스크 바퀴와 친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살대와 바퀴통만이 바퀴의 진보의 끝이 아닙니다. 바퀴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타이어의 발명이죠. 공기가 채워진 고무호스에서 출발한
타이어의 발명이 아니었다면 시속 100km로 쌩쌩 달리면서도 뇌가 출렁거리지
않는 오늘날의 자동차문명은 나타나기 힘들었겠죠?
하지만 그걸 두고서 "타이어 내부의 빔이 비로소 바퀴(또는 자동차)의 쓰임을 
가능케 했다"고는 하지 않죠. 타이어가 없더라도 바퀴는 굴러갑니다.
마찬가지로 살대구조가 아니라 꽉막힌 디스크 바퀴라도 굴러가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바퀴의 효율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시키고 쾌적한 승차감을 얻기 위해
바퀴는 진보해 왔지만 그런 진보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점은 바퀴는
축을 중심으로 회전할 수 있어야 바퀴구실을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특히 노자의 해설은 애초부터 일본 학자들의 해석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 것이
:우리나라 학계에 주류입니다. 이것들을 다 바로 잡아야지요.

라고 하셨지만 하상공이라는 뙤나라 할배도 이 부분은 곡(hub)에 있는, 축을
끼우기 위한 빈 공간이라고 주석을 달아놓고 있습니다. 굳이 일본까지 갈 것도
없이 구름님 충고대로 문장 구조를 충실히 따라가면 간단히 나오는 답입니다.
더구나 전 일본인이 쓴 주석은 일부러 교보문고를 뒤졌지만 구경도 못했습니다. 

아, 하상공 할배 글도 제가 해석을 잘못한 것일 수 있으니 참고로 올려놓지요:
대만에서 나온 "노자석의"라는 책에 인용된 것입니다.
河上公曰, "古者車三十輻, 法月數也. 共一곡者, 곡中有孔, 故衆輻共湊之." 又曰,
"無, 謂空虛. 곡中空虛, 車得去行; 輿中空虛, 人能載其上也."
하상공 가라사대 "옛날의 바퀴는 30개의 살대가 있었는데 한 달의 날수를 따른
것이다. 하나의 곡을 같이 한다는 것은 곡에 구멍이 있어 여러 살대가 함께
모인다는 것이다" 또 가라사대 "무란 빔을 말한다. 곡에 빈 곳이 있어 바퀴가
(굴러)다닐 수 있다; 차체의 빈곳에는 사람이 그 위에 (물건을) 실을 수 있다."

(다 인용하고 보니 하상공 할배도 차체의 빈곳이 있어 그곳에 짐을 실을 수 있다는
말을 해놨군요. 이부분도 스터디할 때 열심히 안본 부분인데... 흠.. 결국 그 할배 
손바닥에서 못벗어났나...? 아니면 이부분을 읽었는데 기억은 못해도 그 해석이
뇌리에 자리를 잡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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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구름님의 이번 장 해석은 너무 도올틱
해서 참견을 한 것인데 다른 부분은 참신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한 것이
맘에 들어서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물론 도올 까는 것엔 별 관심 없습니다.
노자 해석이 맘에 들어서 읽고 있는 것이죠.
parse: /'pa:rs/ vt., vi. parsed, 'par·sing
[ < L pars (orationis), part (of speech) ] to break (a sentence)
down, giving the form and function of each part
parsec: not yet par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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