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77.tnt6.re> 날 짜 (Date): 2000년 11월 11일 토요일 오후 02시 39분 18초 제 목(Title): 도올논어 8강 방금 8강까지 봤습니다 6강에 이어 인상깊었습니다. 다루는 주제가 그만큼 재미있었는데, 오늘 강의는 논어 제 2장과 3장에 접어들면서, 후대 한제국의 국가이데올 로기로 접어든 후의 유교의 변질된 모습을 질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효개념의 국가주의적 '충'개념으로의 승화는 공자의 언어와 무관되이 후대에 첨삭된 것이라는). 김용옥의 하버드 대학 박사논문이 아마 왕부지에 관한 논문으로 기억하고 있고,왕부지는 청 고증학의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김용옥의 유교사상적 기반은 이러한 중국의 왕부지로 대변되는 청대 고증학과 일본의 오규이 소라이로 대변되는 자유로운 번역중심의 국학운동(고카쿠)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불교라는 테제를 극복하기 위한 주희의 안티테제적 반발, 성리학의 발현을 두고 조선조는 그 성리학을 국가지도이념으로 받들고 5백년을 지속시킨 것에 대한 자성과 반성을 기저로 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막연히 일부 유림계층이나 보수계층들이 환영했을런지도 모르는 구습의 의연한 반복이 결코 아닙니다. 어떤 권위, 통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과감한 부정과 배격이지요. 사족이지만, 이런 측면에서 노동두 정신과의사에 대한 김용옥의 행동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네요. 다시 말해, 그의 저서(동양학..)에서 자신이 일찌감치 밝혀온 것이지만, 김용옥은 '공자님' '주자님'하는 국가주의적인 효제(강의 보시면 나옵니다) 멘탈리티를 까부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오님께서 역사보드에 적어주신 정약용의 논어 고금주에 대해서 간략히 언급을 하셨었는데, 이번 강의에서 김용옥의 정약욕에 대한 주된 비판 내용은 정약용이 그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그외 부분은 상당히 입에 침을 튀겨가며 정약용의 열악한 시대상황에서의 업적을 치켜세우더군요.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 강의가 특정 종교 선전을 한다고 비판을 하던데,, 잘 들어보면 그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스스로들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8강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