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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11월  7일 화요일 오후 08시 55분 45초
제 목(Title): 노자를 웃긴 남자(47)


* 퍼온이주: 중간에 구름님의 정치적 사회적인 성향의 견해가 나오지만,  
            제가 여기에 퍼오는 이유는 구름님의 노자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
            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논의가 노자에 맞춰졌으면 합니다.
            싫음 말구요... 퍼오는 거도 좀 신경 쓰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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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번  호 : 66/67                 ▶ 등록자 : 구름                  │
│  ▶ 등록일 : 00/11/07                                                │
│  ▶ 제  목 : 노자를 웃긴 남자(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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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은 상선 이하 주욱 나열된 차선들을 보고 이기 도대체 뭔 소린지 알수가 없

었나봐. 상선약수에 처중인지소오는 우찌 겐또에 통빡을 섞어서 황당하게나마 풀었

는데 곽제 거선(居善),심선(心善),여선(與善),언선(言善) 하고 나옹께로 이기 뭔가?

한참 고민을 했겠지. 상선(上善)에 대한 차하선들(次下善)들이라는 것을 눈치도 못

채고 얼마나 속으로 꿍꿍 가슴앓이를 했는지 이래논거 있제.



     『"居善地"로부터 시작하는 일곱구절은, 帛書本에도 거의 비슷한 형태로 

       실려 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방식은 너무도 다양한 가

       능성이 있을 수 있다. 같은 글자에 대해서도 동사ㆍ형용사ㆍ목적어의 

       다양한 변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자와 21세기> 48쪽 하단
  
  

  이래 놓고는 구름이 했던 것처럼 객관식 사지선다를 해보자고 판을 벌려 논기야.

  그런데 웃기는 것은 문제를 출제한 사람이 내놓은 사지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야.

  도올이 거선지(居善地)를 샘플로 삼아 내놓은 객관식의 답안을 한번 보까?
  

      ① 거할 때는 땅을 좋은 것으로 삼고
      ② 거할 때는 낮은데 처하기를 잘하고
      ③ 좋은 땅에 거하고
      ④ 거할 때는 땅을 좋게 하고
  

  나는 있제 도올이 고대에서 쫓겨난기 천만다행이라꼬 본다. 아직까지 동양학 교

수였어봐. 학생들이 얼매나 불쌍하노? 예문에 정답이 없는 객관식 문제를 교수가 

시험에 턱하니 내면서 풀라카면 이기 환장할 일 아이가? 이런 문제를 내놓고 또 머

라카능가 보면 더 걸작이야. 
  

  『이 밖에도 다른 번역의 가능성이 있겠지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번역해도

    어느 것이 더 정답이라는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같은 책 49쪽>


  불가능한거 좋아하네. 마 모리면 모른다 캐. 그라면 가르쳐 주기나 하제.

  '거선(居善)'이란 머무를 때의 지혜를 말하는거자나. 이것은 비단 어디서 살 것

이냐 하는 거주지를 뜻할 뿐만 아니라 직장, 벼슬 등, 살아가는데 있어서 처하게 

되는 모든 상황을 두루 아우르는 말이다. '머무름에 있어서의 선(善)은 그 땅을 살

피는데 있다'라는 뜻이제. 땅은 꼭 대지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상황 전체

를 말한다. 주변 상황을 잘 살피고 파악해서 거하라는 처세의 방편을 일러주고 있

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발 뻗을 자리를 보고 앉아라'카능

기다. 거선지를 모르면 사람이 우찌 되는 주 아나? 도올이맹쿠로 사지(死地)에 빠

지분다. 지가 지금 테레비 강의로 한번 뜨갖꼬 천지분간도 못함서 논의 강의까지

하고 자빠지는데 지금 지가 서있는 테레비 녹화 장소가 바로 '죽을 자리'라는 것

도 모르능기야. 내가 앞에서 그랬자나 높이 나는 놈일 수록 대가리 박은 확실히 깨

진다고. 멍청하게 호랑이 아가리 앞에 자리를 깔고 드러눕으면 우짜자는 것이야?

  그런 황당한 강의 나발을 구르미가 보고있는 테레비전에 나와가 불어제끼면 살자

는 것이야 죽자는 것이야? 대한민국에 사람이 없는 주 아나? 이 나라가 그리 만만

한 나라가 아이다. 잘나고 똑똑한 넘들이 곳곳에 쌔고 쌨다. 

  도올은 이 '거선지(居善地)' 이하의 나열을 물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고 있는 것

으로 착각해서 끝도 없이 헛다리짚고 자빠지능기야. 그러다 보니 사지선다가 아니

라 십지선다를 해도 정답이 없을 수밖에. 물의 선(善)에 대한 이야기는 '고기어도

(故幾於道)'에서 이미 끝났는데 도올은 지 혼자 물을 붙들고 기를 쓰고 있능기야.

  어떤 스님 둘이 내를 건느는데 물이 불어서 한 처자가 발을 동동 구르게 있응께

로 한 스님이 냉큼 업어서 건네줬어. 그리고는 한참 길을 가는데 다른 스님 하나가

물었어. '출가한 몸으로 처자를 등에 업어도 되능교?' 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그 처자를 아까 등에서 내렸는데 자네는 아직도 업고 있구만.'

  할아방은 물 이야기를 벌써 끝냈는데 도올은 아직도 그 물에 빠져서 허우적거리

고 있어. 그러다 보니 말하는 지도 곤혹스러운게야. 생각을 함 해봐바. 도대체 물

의 성질하고 거(居),심(心),여(與),언(言),정(正),사(事),동(動)이 우찌 연결이 되

끼고? 도올은 절벽만 만나면 걍 대가리를 박는다.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해서 못 봐

주겄어. 야는 또 지가 막히면 나오는 버릇이 있제. 멀쩡하게 보이능기 곽제 횡설수

설을 막 하능기야. 강의 주제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나발을 신나게 불어제끼

갖꼬 사람들 혼을 약간 빼논 다음에 사람들이 눈치못챌 때 얼른 다음으로 도망가 

부는 약은 꾀를 부리능기야.

  여기서도 마찬가지야. 상선약수를 하다가 곽제 지나간 군사 정권 시절을 곱씹으

면서 애꿎은 '새마을 운동'까지 도매금으로 매도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당시에 수

경사에 끌려가서 존나게 맞은 기억이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당시에 구름이 수경사

군바리였으면 도올은 얼반 죽었을 거다. 지금도 철딱서니없는 소리들 해 쌓는데 학

생 시절이야 오죽했겄어. 당시에 수경사에 달려 들어간 이유가 됐던 글의 제목이 '

새마을 운동은 문화박멸운동일 뿐이다'라는 것이었단다. 맞아도 싸제. 도올이 새마

을 운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덕수궁 돌담길이 바뀌었다는 것뿐이지 아마. 

  박통이 새마을 운동을 제창할 당시의 이 나라 농촌의 실상을 도올은 모르능기야.

  늘 지가 자랑해쌓는 잘나가는 집안에 태어나 대학을 다닐 때까지 고생이라고는 

안 해본 브루조아지 출신이라서 여학생 손목 잡고 데이트하던 돌담길 허물어진 것

에 대한 적개심이 새마을 운동 전체를 보는 시각으로 고정되어 버린게야.

  '덕수궁 돌담길이 밥 먹여 주나?'

  지금 이런 소리하면 돌이 날아올지 모르겠지만도 그러나 온 나라 국민이 배를 쫄

쫄 굶고 어린아이들이 아사하는 지경일 때는 고궁 돌담이 문제가 아인기야. 오백 년

가보로 내려온 족보도 자식새끼 둘만 굶겨 죽이고 나면 고물 장사치한테 종이 값으

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훗날 살림이 펴지고 나면 그때 엿장수한테 팔아먹은 족보 책

이 생각나고 아깝기가 잠이 안 올 지경이겠지만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

었제.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한다는 명제는 그 무엇에도 우선한다. 문화재의 보존

같은 소리는 배부른 다음이라야 나오는 소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가장 반문화적 폭거로 손꼽히는 사건으로 '몬테카시노 폭

격'을 들 수 있다. '몬테'란 '마운틴'의 이태리 말이니까 '몬테카시노'는 카시노 

산이란 뜻이다. 이태리 중부의 고갯길에 우뚝 솟은 이 카시노 산 위에는 수백 년 

내려오는 수도원 건물이 있었다. 물론 그 수도원에는 이태리의 값진 고서와 그림 

등의 문화재가 있었고 수도원 건물 자체가 국보급 문화재요 인류의 유산이라 할만

한 것이었다. 이 산이 굽어보는 평야 지대를 진격하면서 연합군 장병들 수만 명이

죽었다. 그러고도 카시노 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발이 묶인 미군은 카시노 산 정상

의 수도원에 독일군의 지휘부와 관측반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폭격기를 동원해서

하룻밤 사이에 그 귀중한 문화 유적을 돌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이 카시노 수도원

폭격은 두고두고 지탄의 대상이 됐고, 폭격을 결정했던 미군 지휘부는 반인류, 반

문화 범죄자로 조사를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미군 지휘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만 명의 부하장병들이 죽어나가는 판에 수도원이 문제가 아닌 것이

다. 수도원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당장 눈앞의 들판을 지나가야만 하는 수만명 

인간의 생명보다 소중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도원을 폭격해서 만 명의 병사를 죽

음에서 구할 수 있다면 고민이 안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수도원 폭격이 전술적으

로 어떤 잇점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논외로 치자.
 
  육이오 동란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설악산 일대에 북괴군 잔당들이 남아서 

유격전을 해대는 통에 국군의 피해가 컸다. 그런데 이 괴뢰군 유격대들이 겨울에 

얼어죽지 않고 잘도 돌아댕기는 이유를 알아보니까 산 속 곳곳에 있는 오래된 사찰

들이 은신처요 추위를 막아주는 숙영지가 되 주는 때문이더라 하는 것이었다. 국군

지휘부는 설악산 대관령 일대의 모든 사찰을 불태우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그 때문에 왜란 호란에도 보존되었던 유서 깊은 명찰들이 모조리 불타버렸다. 지

금에 와 생각해 보면 실로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나 당시로서는 당시의 절박한 상

황이 있다. 국군의 지휘부를 무조건 문화 파괴범으로 매도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리산에서도 마찬가지였어. 지금 우리가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도 한순간 재가 될뻔 했어. 지리산 빨갱이들이 해인

사 주위에 있다는 보고를 받고 출격한 공군 편대가 천만다행스럽게도 한국공군이었

어. 싣고간 폭판에 로켓탄을 퍼부으라는 명령을 편대장이 묵살하고 기총소사만 하

고 돌아갔어. 그래서 팔만대장경이 살아남은기다. 그때 편대장이 박영희소령인가

그럴끼야.   

  새마을 운동도 마찬가지다. 당시에 우리 나라 사정이 어떠했노? 도시에서 5리만

밖에 나가도 시골 마을마다 얼라들이 부황뜬 얼굴로 똥 찍어먹고 놀았다. 여름만 

되면 콜레라로 떼죽음을 당했다. 겨울만 되면 동사자들이 길에 나뒹굴었고 집안에 

자는 사람도 언제 죽을지 몰랐다. 연탄 가스 중독으로 일가족이 몰사했다는 신문기

사가 매일 같이 나던 시절이다. 시골로 갈수록 현실은 참담하고 혹독했다. 새마을

운동의 본령은 길 닦고 집 고치고 덕수궁 돌담 바꾸는 따위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정신 개조에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에 유래가 없는 성공을 거둔 운동이다. 당

시 시골이 왜 가난했느냐? 다른 이유도 많았지만 가장 커다란 원인은 농사 짓는 사

람들이 모두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다는데 있다. 왜정의 수탈과 전쟁, 그리고 자유

당 정권의 무능 세월을 거치는 동안 농촌 인구는 대부분 알거지로 변해 있었다. 빚

이 없는 농가가 없고 빚을 갚을 희망도 전망도 깜깜한 절벽 같은 세월이었다. 그 

세월을 촌사람이 뭐하며 지냈냐?  하나같이 노름에 빠져 있었다. 노름 빛으로 땅문

서 넘기고 꺼러지된 넘들이 한둘이 아니고 심지어 마누라 딸자식 팔아 넘기는 일도

비일비재했어. 이런 농촌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는 의욕과 자신감을 

주기 위해 박통이 노래 가사까지 지어가면서 몰두했던 사업이다. 덕수궁 돌담길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야. 우리 나라 농촌이 이나마 살아나 주식의 자급자족이 이루

어진 것을 생각하면 덕수궁을 통 채로 갈아엎었다 해도 용서받을 이유가 충분하다. 

  당시의 경제 우선 건설 독재에 대해 비판의 소리들은 '옛날에 팔아먹은 족보책 

생각'이야. 그때 굶어죽은 아새끼들은 살만해징께 잊어불고 족보책 아까븐 생각만 

나능기야.

  나중에 전경환이가 해먹은 것은 옥의 티다. 머리가 나쁜데다가 심성까지 비뚤어

져서 왜넘들은 필로소피가 있어 보이고, 지나라 정부가 해볼려고 애쓴 짓은 그래 

반문화적 폭거로 밖에 안 보인다 소리제. 수경사 군바리들 진짜로 사람 좋았다.
 
  물론 상대를 해주느라 이런 소리도 하는 거지만 도대체 노자 할아방 이야기에 왜 

케케묵은 쌍팔년도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 자기도 군사 정권 시절에 한

운동했다는 걸 자랑하고 싶은 걸까? 현실을 방관하던 무기력한 인텔리가 아니라 행

동할 줄 알았던 식자였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유덕화 나오는 깡패 영화의 주

인공처럼 희생정신을 발휘하며 살았음을 알아달라는 것일까? 그래서 노자 할아방의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했다고? 세상에나. 도올은 할아방이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 

하면서 살았다는 점에서 할아방을 팔아먹을 자격이 없다.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군사 정권이 들어서건, 문민정부가 헛소리를 하건, 국

민의 정부가 지랄육갑을 하건 그런 건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다. 나는 대통령 이름

도 모르고 산다. 박통, 전통, 노통, 김김통 밖에 모른다. 지금은 2차 김통 시대라

는 게 내가 아는 전부다. 그래서 나는 여지껏 이 한 몸 잘 보존하고 사는데 지장이

없었다. 왜, 떫어? 그러면 안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노자를 배운다는 인간은 헤깝

은 짓 하다가 수경사 달려간 일을 자랑하면 안 되는 거다. 그거부터 아는 것이 도

를 배우는 첫걸음이다.

  노자 사상에 대한 불세출의 명 해설서 <노자와 21세기>는 이 장에 대해 꽤나 길

게 중언부언 잡다한 소리들을 늘어놓고 있다. 노자 할아방이 이 장에서 물에 대해

언급 한 것은 단 네 줄에 지나지 않고,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싫어

하는 물의 성질로서 도를 비유했을 따름이고 그와 같이 은둔함이 좋지 않겠는가 하

고 은근슬쩍 권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도올은 이 장 전체가 물에 대한 기술이라

고 보고 노자가 '물'이라는 것에 대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단단히 

착각한 나머지 노자 해설서를 '물에 대한 보고서'로 바꿔 놓았다. '상징화(symboli

zation)'니, '상징적 표상(symbolic representa-tion)'이니, '보편적 적응의 원리(

a principle of universal applicability)'니, 하면서 그 전매특허 같은 유식이 철

철 넘치는 소리를 잔뜩 한 다음에  약방의 감초같이 왕필의 주가 나온 끝에 '물은

유(有)로서 관념의 세계고, 도는 무(無)로서 사실의 세계다'라고 강아지 풀뜯어먹

는 소리를 또 하고 자빠진다. 이 강아지 풀 뜯어먹는 소리가 단순히 강아지 풀 뜯

어먹는 소리가 아니고 사실은 언어의 제약과 상징 체계를 벗어나는 심오한 철학적

꽈배기 언어의 산출물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런 다음에 곽점죽간본이라는 근자에 

발견된 <도덕경>의 또다른 사본의 내용인 '태일생수(太一生水)'의 원문을 옮겨 놓

고서 장황스레 연구 결과를 과시하고 있는데, 이것도 매우 웃긴다. 곽점죽간본의 

태일생수편 내용에는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도덕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개념과

말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다. 태극(太極)과 음양(陰陽)을 비롯해서 사시(四時)

라든지, 차고 덥고 습하고 건조한 것 등 훗날 오행(五行)에 대입되는 개념들이 나

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학의 대가씩이 못 되는 올챙이 아마추어 동양학자가 봐도

공노(孔老) 시대의 사상이 아님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훗날 전국시대 말기에 동북

(東北) 변방의  제(濟)나라에서 융성한 황노학(黃老學)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양오행의 철학 체계는 빨라도 전국시대 말에서 한대(漢代)에 걸쳐 발생한

것이다. 할아방 살았던 시대에는 음양 사상이 태동하기도 전이었다. 곽점죽간본의

태일생수편은 후대의 황노학이라고 보면 틀리지 않는다. 할아방은 물이라는 것에 

대해 도올이 착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도덕경> 전

체에 물이 나오는 것은 이 장의 단 네 줄로 처음이고 끝이다. 책을 똑바로 보지 못

하다보니 뭐가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를 알지를 못하고서 그저 고추 먹고 맴맴

오리야 기리야 하능기다.

  하긴 할아방도 시원한 물은 좋아했다. 그러나 음양오행설을  동원해서 노자를 설

명하는 것은 상대성 이론을 동원해서 뉴튼을 설명하는 꼴이고 달마선으로 부처를 

말하는 것이고 아우구스티누스로 예수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노자와

21세기>에서 장황하게 늘어놓은 태극도설이니 음양 사상이니 하는 것들은 할아방과

는 거리가 먼 소리들이다. 할아방은 태극이라는 말도 몰랐던 사람이다. 그래서 '곡

신불사(谷神不死)'니, '현빈(玄牝)'이니 해서 할아방이 손수 이름을 지어가며 설명

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노자의 사상이라 말해서는 안 되능기다.
 
  도교를 이루고 있는 주역과 음양오행과 황제의 의술을 포괄하는 사상 전반에 대

해서 한번은 설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마는 그것은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겠다. 이렇게 산천경계 구경 다하면서 가다가는 노자를 웃긴 남자 노망들 때까지

계속되겄다. 벌써 들었다꼬? 에이 설마.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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