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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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orori (포로리)
날 짜 (Date): 2000년 5월  4일 목요일 오전 10시 02분 42초
제 목(Title): Re: [R] 하버마스 책


 >제가 다소 열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포로리님이 씁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데리다의 대변인이 아니 듯, 포로리님도 하버마스의 대변인은 아닐겁니다.
>제가 화난 것은 번역자와 하버마스의 애매한 글이지 포로리님은 아닙니다.
>말만 어렵고 번지지르르게 하지 도무지 논점이 불분명하고 자기 합리화에
>급급한 듯한 혐의가 가는 이러한 지식인들에 대한 것입니다.


 요는 이해가 잘 안가고 어려운 것이 반드시 번역자나 저자만의 
문제겠느냐는 거죠. 

 96년도엔가 김보현씨가 데리다의 주요 논문들을 처음 번역하여 
책으로 냈고, 당시 저는 얼른 사다 봤지요. 

 '차연', '백색신화' 등등, 말로만 들었던 글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좋긴 했는데,  제대로 읽어내기는 상당히 힘들더군요. 
영문학을 전공한 김보현씨가 영역본을 번역해버린, 말그대로 
심각한 '반역'을 저지른 탓도 있긴 했지요. 
(읽다가 각주에서 그런 언급을 발견하고나니 좀 열받더군요.)

 어쨌거나 당시 데리다가 인용 및 분석하고 있는 인물들에 관한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자료를 많이 찾아보고, 
참고문헌도 읽고 나니까 대충 감 정도는 잡을 수 있었습니다. 
 소쉬르에 대해서도 그때 처음 듣고 찾아봤던 기억이 있군요.
 ('언어학과 문자학..'인가에 처음 나오더군요.)

 사실 현학적이고 난해한 걸로 치면 프랑스 철학이 훨씬 더 고약하지요.
혹시 소칼이 모아놓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글들을 읽어 보셨습니까. 
 본심이야 어떻든 소칼 조차도 출판된 책에서는 자신이 전공한  
물리학과 수학에 관련된 부분만 한정하여 언급할려고 노력합니다. 
 어렵거나 이해가 안간다고 해서 전반적인 평가 절하를 해버리는 건 
설득력이 없다는 걸 소칼 본인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하버마스의 책에 등장하는 인용들이 납득이 잘 안된다면 
먼저 해당 참고 문헌을 직접 뒤적여보고 혹시 오용하고 있진 
않은지, 또 문맥상의 실수/악용(!)을 하고 있진 않은지등을 검토하는게 
기본적인 순서가 아닐까요. 물론 Hyena님이 정말 제대로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가정하에 얘기지요. 

 제 생각엔  "제대로된 논증이 없다"란 결론은 하버마스 글에 대한 
나름대로의 완벽한 이해를 전제로 했을 때나 나올 수 있는 얘기지요. 

 그런데 이해가 불가능해서 고문 당하느라 고생하셨다면서 "논점은 
알겠는데 논증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식의 결론을 말씀하시니, 
안타까울 수 밖에요.


>그 문제의 사기 운운하는 부분은 222페이지 아래 부분에 있습니다.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인용해보자면,
> "하이데거는 세속화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서 방향을 상실한 계몽의 힘을
>보존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신성한 곳에서 사라져 버린 신비적 분위기,
>즉 아우라를 사용한다. 깨우침은 존재 신비적으로 다시 마법적인 인것을 형성한다.
>새로운 이교도적 신비주의에서는 비일상적인 것의 탈경계적 카리스마로부터
>예술적인 것에서 처럼, 해방의 힘도 발생하지 않고, 종교적인 것에서 처럼,
>혁신적인 힘도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현혹과 사기의 자극만 나올 뿐이다.
>그런데 데리다는 이와 같은 자극으로부터 유일신론의 전통으로 돌아가는
>존재신비주의를 정화시키는 것이다.                                 
>편가르기의 원흉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저도 앞글에서 이미 지적을 한 바 있습니다.
하버마스에 대한 코멘트에서 '유대교'와의 연관 관계 언급이 
"지나치다"라는 얘길 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윗글이 정말 데리다의 사상 전반이 사기를 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윗글에서 사기의 주체는,  바로 정통 유대교에서 비껴간(이교도적) 
신비주의 전통과의 관계에서 발현되는 그 자극의 일반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지 데리다의 기본적인 의도 자체를 지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의 있던 없든, 율법 전승과 해석만이 중요시되는 상황을 두고 한 
말로 보시면 됩니다. 
 
 번역이 후져서 문장이 이상하면 이상했지, 잘못 이해하고 계신 듯
합니다.  물론 저는 하버마스의 저런 식의 규정엔 동의하지 않지만요.


> 이 문제들에 대해 하버마스가 데리다에 가한 비판의 유일한 논거는 데리다가
>유대교 신비주의의 전통을 따랐다는 것 하나 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한 유태교 신비주의가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 상에 있으면 하버마스의
>주장은 타당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언급이 없고, 도리어 유대교
>신비주의가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과는 반대의 방향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다른 논거나 논증이 있었다면 포로리님이 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전통적인 서구 형이상학의 중심엔 바로 '로고스'(logos)가 있지요. 

 세계가 "창조자"와 창조자의 "말씀"으로 이루어졌다는 기독교/유대교의 
로고스 사상은 그리스 철학과 함께 언어-사물 관계를 고민하는 서구 
형이상학의 한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현전에 비해 구전되는 율법이 
죽은 문자라고 하여 비하되고 있는 것이 서구 로고스 중심주의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라고 보았던 하버마스는 로고스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데리다가 이교도적 전통과 오히려 친화하고 있다고 보았던거지요.  
 
 즉 "신의 부재 여부에 완전히 무관하게" 율법의 전승과 해석만을 
중시하는 전통과의 친화는 과거 신비주의->계몽주의로 넘어가는 
그것을 연상시킨다는 식의 비교를 하고 있는겁니다. 

 따라서 당연히 하버마스가 문제삼고 있는 것은 데리다가 단순히 
유대교적 전통을 따랐다는 도식 때문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데리다의 주장이 현대성을 부인하기 위한 합리성의 토대를 완전히
불식시키는 - 토대주의를 무너뜨리는 주요 근거로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거지요. 
 데리다 역시 어떤 형태로든 "토대"를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게 기독교/유대교적 신비주의에 반하는 이교도의 전통이든 
뭐든간에요. 
 

>그리고 데리다가 주장하는 의미의 비결정성을 내세워 저하고 포로리님의
>의사 소통의 불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포로리님이 데리다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의미의 비결정성은 의미가 아주 모호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미가
>하나로 절대 고정되지 않고, 지금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도 눈치 못 채는   
>다른 의미의 가능성이 열려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과 같이 저하고 포로리님하고 하는 일상적인 의사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그러잖아도 이렇게 말씀하실 듯 해서 앞의 제 글에서 '기계적..'
이라는 것..과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적 계승' 이라는 단서를 
문장 중간에 붙였지요. :)

 오직 기표들의 무한 연쇄 현상만이 있을 뿐 사실상 의미를 결정
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완성하는 끝이 있어야 하지요. 

 그래서 야콥슨은 '제로 음소'라는 개념을 얘기했고, 롤랑 바르트는 
궁극적 기표로서의 '신'을 얘기합니다. 
 데리다는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하는 무엇'을 얘기하지요. 

 저는 데리다가 야콥슨 등 구조주의자들의 이런 개념이 궁극적으로
현상학적 주체나 초월적 자아를 극복할 수 없음(혹은 별 차이가
없음) 을 간파하여 해체해버렸으면서도 자신 역시 저런 난해한 
개념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존 전통적 형이상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했던 겁니다. 

 아직 의심만 하고 있을 뿐, 독서도  부족하고 해서 남겨둔 부분
이죠. '목소리와 현상'은 읽다가 그만둔지 오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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