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orori (포로리) 날 짜 (Date): 2000년 5월 3일 수요일 오전 09시 50분 22초 제 목(Title): [R] 하버마스 책 하버마스의 글은 데리다의 원전을 중심으로, 사실상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하이데거나 훗설의 비판 내용에 대한 직접적 인용과 강의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습니다. 데리다 본인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오히려 매우 간결한 수준이어서 주의깊게 봤다면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데리다의 논문을 직접 공부해본 적이 없거나 하이데거와 훗설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깊은 관심과 독서가 없다면 이해가 매우 힘든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합니다. 하버마스의 글은 한두줄로 말하긴 힘든 내용이지만 제가 이해한 한도내에서만 간단하게 논점 중심으로 요약하면, 대략 이렇습니다. (1) 데리다는 자신이 극복하려는 근대 주체 중심의 철학 혹은 합리적 이성의 기본적인 토대를 의심하고 비판하는 입장에서 본인의 방법론 체계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2) 하이데거에게서 계승한 - 전통적 형이상학의 틀을 해체하기 위해 형이상학의 울타리를 형성하고 제외하고자 하는 시도의 흐름 상에서 그 자신만이 정확히 단절의 길을 걷고 있다고 볼 수 있는지. (3) 훗설, 소쉬르 등에 의해서 꾸준히 고집/유지되어 왔던 자기 현전의 형이상학에 대한 적극적 부정이 오히려 거꾸로 자기 현전 형이상학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1)~(3)을 중심으로 하버마스는 데리다가 "현대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비판하고 있는 철학자들의 논리와 데리다의 주장을 설명/비교하고, 데리다 역시 그 현대성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역으로 논증합니다. (1)은 굳이 하버마스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많은 철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사항이고, 저 역시 데리다가 이 부분에서 피할 수 없는 아포리아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라타니 고진이 비합리성의 토대위에 세워진 서구 철학의 전통적인 '건축에의 의지'에 대한 해체적 비판을 모색하다 궁극적으로 재귀적 형식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에 직면하고 비트켄슈타인의 세속적 비평 방법으로 입장의 변화를 정리한 것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고, 심지어는 해체방법론 자체에 대한 해체 작업 역시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형편이니까요. "합리성을 구성하는 비합리적 토대를 밝혀내는 과정에 숨어있는 그 지독한 합리성(!)". -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는 거죠. (2),(3)에 대해서는 아마도 Hyena님이 이해가 안된다는 말씀을 하게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가 된 논점이 아닌가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훗설이나 하이데거에 대한 많은 독서와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테고 Hyena님 본인이 먼저 준비가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1)이라면 모르지만 (2),(3)에 대해서는 데리다도 확고한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부분이고 많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선 내용 자체가 워낙 까다롭기도 하고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워 보류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므로 이 이상 하고 싶은 말이 얼른 떠오르진 않는군요. 다만, 제 사견을 중심으로 하나 말씀드리자면, 데리다가 주장하는 "의미의 비결정성"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회의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훗설의 현상학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데리다는, 기표->기의->기표->기의... 등의 무한 연쇄적인 흐름 속에서 사람 개개인이 갖는 사물에 대한 관념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일의적인 형태로 고착화한 근대철학의 형이상학적 전제의 토대를 밝혀내고 결론적으로 의미의 비결정성을 도출하기에 이릅니다. 만일 데리다의 주장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지금 저랑 Hyena님은 사실상 의미 주변을 무한히 겉돌기만 할 뿐 의사소통이 완전히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데리다가 우리가 실제 살고 있는 생활세계와 잘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주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더 나아가서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적 계승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에서 (2),(3)의 단서를 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선 더 생각해볼 여지가 많으므로, 일단 이대로 남겨두겠습니다. 또 오해하고 계신 듯 해서 첨언합니다만, 저는 하버마스의 글 전체가 옳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버마스의 글 전반에 대해선 저 역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간단히 코멘트하지요. 이를 테면, (1) '현대성'의 정의 혹은 범주에 관해 푸코나 데리다등과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인지? 즉 토론의 기본적인 출발을 위한 합의가 없이 혼자만의 독단적인 논리를 펼치고 있지는 않은지? (2) 데리다 혹은 푸코가 문제시하는 합리적 이성이 사실상 하버마스 자신이 확립하길 바라고 있는 비판적 이성과 동일한 것인지. 즉 그들이 과연 정확히 반대의 입장으로만 정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인지..? 등에 관해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데리다 배후의 유대교적 배경에 대한 언급도 지나친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Hyena님에게 감상문을 부탁할 때는 이런 부분등을 기대하기도 했는데, 어째 적개심만 잔뜩 가지고 계신 듯 해서 씁쓸하군요. 또 "논거가 잘 이해가 안되므로 논거가 없다"는 식의 비약적인 결론을 내리거나, 누구도 데리다가 사기친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단지 비판을 했다는 이유 하나로 극단적인 편가르기를 하시는 걸 보니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 도대체 어디에 사기 친다는 식의 언질이 있는지 ? ) 하버마스의 의견은 단지 데리다 역시 서구 근대 철학의 또다른 형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해가 잘 안되면 자신에게 기본적인 선행지식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를 먼저 따져봤으면 하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비판을 공정하게 경청할려는 열린 자세를 가지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많이 부족하므로 그렇게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