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Hyena ( 횡 수) 날 짜 (Date): 2000년 3월 11일 토요일 오후 12시 49분 37초 제 목(Title): 지성/'탈존' 그 열림의 사유 한겨레 21에서 퍼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지성/'탈존', 그 열림의 사유 하이데거 사상의 궤적 추적하는 신상희 박사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는 독일에서도 난해하기로 꼽히는 철학자다. 독일 사람들도 “왜 <존재와 시간>의 독일어 번역본은 아직 나오지 않았느냐”는 농담을 할 정도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하이데거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얻은 신상희(40) 건국대 강사는 최근 거의 연구되지 않은 하이데거의 만년 저작을 통해 그의 사상을 재조명한 연구서 <시간과 존재의 빛>(한길사·02-515-4836, 2만원)을 펴냈다. 비전문가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지만, 지은이가 하이데거 사상의 궤적을 추적해들어간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하이데거는 1927년 그의 대표적 저작인 <존재와 시간>을 출간하면서 제1부 3편에 해당하는 내용을 저술하지 않고 비워두었다. 그로부터 34년이 지난 1961년, 72살 고령의 하이데거는 이 제1부 3편에 해당하는 내용을 ‘시간과 존재’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풀어내었다. 이 강연록은 1969년 그의 생전에 펴낸 마지막 저서인 <사유의 사태에로>에 실렸다. 34년 전에 제기했다가 빈칸으로 남겨두었던 문제를 삶의 황혼기에 정리해내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름다운 일화다. 더이상은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일화는 아름답지만 그가 만년에 정리해낸 글 ‘시간과 존재’는 짧은 분량이지만 하이데거의 글 가운데서도 가장 치밀하고 난해한 글로 꼽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해가 가능하지 않은 글”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독일을 포함한 구미 학계에서도 이 글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신상희씨는 바로 이 ‘시간과 존재’라는 무시무시한 글을 통해 하이데거의 사유를 재조명했다. 국내에 잘못 번역되거나 잘못 알려진 개념도 여러 가지를 바로잡았다. 하이데거를 실존주의 철학자에 포함시키는 따위가 그런 예이다. 신상희씨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자신을 실존주의 철학자와 구별지었다. 그래서 ‘실존’과 구별되는 개념으로 ‘탈존’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신상희씨가 ‘탈존’이라고 번역한 개념은 ‘실존’을 뜻하는 독일어 ‘Eksistenz’에서 ‘Ek’와 ‘sistenz’ 사이에 하이픈을 넣어 ‘Ek―sistenz’라고 표기한다. 그러면 이 낱말은 “밖에 서 있다”는 뜻이 된다. “실존주의는 모든 결단의 중심이 ‘나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데 반해, 하이데거는 그것이 ‘나의 밖에 서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중심이 아니라 밖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죠. 나의 ‘밖’은 과연 어디인가, 이렇게 묻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건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실존주의와는 다른 사유죠.” 하이데거가 말하는 ‘탈존’은 “존재의 열린 장,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음”을 말한다. 나와 너의 소통이나 이해 또한 각자의 주관을 내세워 합의에 도달하는 주-객 이분법의 사고에서 가능한 게 아니라, “내가 나다워질 수 있는 장이 열려 있음을 받아들일 때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이해의 차원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이런 만남을 통해 내가 나다워질 수 있으며, 타인 또한 그 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살기 위해 작위하지 않음(不自生)”을 말하는 노자나 “아상(我相)이 없음”을 말하는 고타마 붓다의 사유와도 매우 닮아 보인다. 오늘날 하이데거 사상과 동양사상의 친밀성은 우연이 아니라 그가 동양고전으로부터 영향을 입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2차 대전 종전 직후 독일로 유학온 일본인들 가운데 하이데거에게 배운 이들이 있는데, 하이데거는 이들과 함께 노자의 <도덕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책으로 펴내지는 못했지만,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양사상의 영향을 입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본다. 신상희씨는 요즘 하이데거 후기 사유의 정수를 담고 있는 만년 저작 <이정표>와 <숲길>의 번역에 매달리고 있다. “이 중요한 저작들이 왜 아직까지 한글로 번역되지 않았는지는 번역에 손을 댄 뒤에야 알았어요. 이렇게 고생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죠.” 강의가 없던 지난 3개월의 겨울방학 동안 밥 먹는 시간 빼고 하루종일 꼬박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건만 하루 3쪽 번역이 한계 작업량이다. “3쪽 옮기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건강을 생각하면 2쪽조차 벅찰 때가 있어요. 어떤 땐 하루종일 1쪽 가지고 씨름하는 날도 있죠. 그러다보면 나처럼 세상을 비효율적으로 사는 사람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죠.” 세상의 갈채를 받는 것도, 장도가 유망한 것도 아니지만, 그가 악몽처럼 난해한 사유의 미로를 더듬어가는 삶을 선택한 까닭은 소박하다. “하이데거를 앞서 번역해 소개했던 은사님들 덕분에 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고, 하이데거에 접근하는 일도 가능했습니다. 이제 내가 조금이라도 역량을 쌓았다면 다음 사람을 위해 그것을 풀어내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충실한 번역서를 내놓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하죠. 어찌보면 내 인생이 굳어 있고 고인 물 같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양식으로 흘러나갈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생활은 남루하지만 사색의 숲을 거니는 정신만은 언제나 풍요로운 인문주의자의 초상을 발견하는 일은 깊은 숲 속에서 찾아낸 샘물 맛처럼 신선하다. 이상수 기자 leess@hani.co.kr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어느 철학 교수는 데리다가 하이데거를 베낀다고 하고, 여기서 보면 하이데거는 노자를 일부 베끼고 있는 지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