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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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0년 2월 22일 화요일 오후 10시 20분 36초
제 목(Title): [펌] 양주와 노장사상



풍우란, 『중국철학사』上, 박영규 옮김, 까치, 1999, pp. 231-232

에서 무단 전재한 글입니다.

[前略]

여기서 노장의 책에 양주 학설의 자취가 의연히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노장 의 최고 이념(義)은 아니다. 양주(일파)가 말한 것은 주로 우리  
스스로 자신의 생을 손상시 키지 않을 방법(道)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살면서 
스스로 자신의 생은 손상시키지 않는다 고 하더라도,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은 항상 있는 것이다.우리는 진실로 자신을 손상시켜서는 안되지만 또한 
나를 손상시키는 다른 사람과 다른 사물에도 대처해야 한다. 이 측면에서의 양주의 
방책은 오직 피(避:도피)라는 한 글자의 비법이 있었을 뿐인 듯하다. 예컨대 
'은자'의 '피세(避世)'가 그 예이다. 그러나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피하지 못할 
해는 늘 있는 것이다. 노자의 학설은 바로 우주간  사물변화의 통칙(通則:常)에 
대한 발견인 바, 그것을 안 사람이 그것을  응용할 수 있으면 가히  "종신토록 
위태롭지 않음"을 희망할 수 있다. 『장자』「인간세」도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의 해를 입지 않을 수 있을까를 연구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모두 우리에게 만전(萬全)을 보증할 수 없다. 인간사는 변화 무궁해서 
그중에는 예측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자학은 마침내 
"핵심을 꿰뚫는(打穿後壁)" 말을 했다. 

    내게 큰 재앙이 있는 이유는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내게 몸이 없다면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 노자 13장 --

이것은 참으로 위대한 깨달음(大澈大悟)의 말이다. 장자학은 이것을 계승하여 
"사생을  하나로 여기고 남과 나를  동일시함(同人我)"에 대해서 논했다. 
[주관적으로]  해를 해로 여기지 않는다면 해는 비로소 진정 [우리를] 손상시킬 수 
없다. 이로써 보건대, 노자의 학설은 양주의 학설의 진일보요, 장자의 학설은 
그것의 진이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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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I 251쪽: 도가철학은 몰락한  귀족의식의 집중표현이다. 
"위아(爲我)"사상이 도가의 각 파에 관철하고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몰락한 귀족은 
원래의 천당(天堂)을 상실하고 남은 것이라곤 단지 자신들의 신체와
생명뿐이었으니, 드디어 자신들의 신체와 생명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들은  부귀나 공명 따위는 본래가 몸 밖의  물건이므로, 누가 주어도 
가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들은 몰락했고 따라서 물질적인 향락추구의 욕망을 
충족할 수 없었던 까닭에, 그로부터 "과욕(寡慾)"과 "절욕(節慾)"을 제창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동화 속에서, 포도를 따먹을 수 없는 여우가 그 포도는 실 
것이라고 말한 경우와 똑같다. 그들은 천하에서 가장  요긴한 일이 자기 생존을  
보호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털 하나도 뽑지 않겠고, 천하를 이롭게 
하지도 않겠다(不拔一毛, 不利天下)"고 선언했다. 그러나 사실상 애초부터 그들의 
털 한 개와 천하의 대리(大利)와는 바꿀 수 없으려니와, 더욱이 상실한 그들의 
"천하"를 구해줄 수는  없었다. 장주(莊周)에 이르러서는 천하(사회)가 경
중을 따질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겨졌다. 이런 극단적으로  소극적인 사상은 
구시대 귀족의 극단적인 몰락의 반영이다. 그들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막힌 지경에 
이르러, 희망은 환멸로 변했고 전도(前途)는 없어졌다. 이런 정황하에서 나온 
최후의 비명이 바로 장주의 사상이다.

*『中國哲學史新編』(全6冊), 人民出版社, 北京, 1982-90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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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철학사신편의 비평은 신랄하지만 일리가 있는 듯하고 비슷한 비판을
불교에 대해서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말하자면
코딱지만한 왕국에 닥칠 재앙을, 평소에 자란 환경을 관찰하여 미리
예견한 왕자가, 장차 닥칠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부터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장자와 비슷한 결론에 이른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비슷한 결론은 비슷한 환경에서 나온다는 수렴진화의 철학비평
이랄까...?



Okay, Beatrice. There was no alien, and the flash of light 
you saw in the sky wasn't a UFO. Swamp gas from a 
weather balloon was trapped in a thermal pocket and 
refracted the light from Venu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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