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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orori (포로리)
날 짜 (Date): 1999년 2월 20일 토요일 오전 02시 18분 57초
제 목(Title): [chopin님] 철학에 대한 오해


대충 정리돼가는 분위기인 듯 합니다만, 저도 조금 덧붙여 보겠습니다.

다른 분들에 의해 언급되지 않았지만, 몇 가지 오해로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만 인용을 해보면,,,

>철학보드에 와서 철학비판을 늘어놓았으니 불구덩이에 폭탄을 들고 
>뛰어든 격이군요.
>프로이드가 사이비다라는 주장을 심리학보드에 가서 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네요 ^^

 눈치 채셨는지 모르지만 여기 철학보드에 자주 오는 분들 상당수가 
 '철학 따위'는 없어도 밥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들입니다. 
 비전공자들이란 얘긴데요, 밥줄하고 상관없으니 제대로만 비판했다면 
 철학에 대한 비판은 오히려 적극 환영의 대상입니다. 전공자들만큼의 
 지식은 없어도, 생각할 수 있는 내용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니 좋은 철학 비판은 오히려 멋있는 폭죽을 쏘는 폭탄이 될 수 있지,
 감정싸움을 불러일으킬 이유가 전혀 될 수 없습니다. 

 심리학 보드에서 프로이드 비판을 해도 마찬가지일걸요?
 
>이러한 류의 토론을 할 때 항상 겪었던 경험과 생각을 한가지 적어봅니다.
>그것은 과학에 대한 크나큰 오해입니다. 요즘 과학은 거의 종교화 되가는 
>경향을 보입니다. 과학에 대한 맹신주의가 바로 그 종교화의 주범입니다.
>워낙이 많은 놀라운 것들을 이룩해 낸 장본인이니 그럴만도 합니다. 
>아마도 과학에 대한 터무니 없는 오해들은 이러한 종교화경향에 대한 
>반발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학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과학자들이 과학이 인간과 세상의 모든 
>진리를 밝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류의 토론'이란게 여기서 지금까지 한 얘기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지요? 
 저는 다른 어느 누구에게서도 chopin님이 우려하는 '과학 맹신(?) 주의' 
는 느끼지 못했는데요?   

 왠지 엉뚱하게 보이는 것이, 철학하는 사람들을 너무 바보 취급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위 글 이후 쭉 쓰신 과학에 대한 맹신이나 두려움은 '과학'도 '철학'에도 
아주 무관심한 사람들에게서나 흔히 보이는 현상이지, 여기서 그렇게 자세히
언급할 내용이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영역을 하나씩 점령해 간 다는 것이 과학발전의 크나큰 
>매력중 하나입니다. 생명과 인간, 마음에 대한 비밀이 앞으로 정복당할
>영역에 놓여있다는 것이 철학을 하는 사람들과 기타 사람들의 상실감과 
>반발감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입니다. 

 이건 '엄청난' 오해로 보이는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좀더 진리에 가까운
진실이 밝혀지는 것에 철학자들이 상실감을 느낄 거라고 판단하는 건지
도무지 납득이 안가네요...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지만 철학자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 중 하나가
'호기심'입니다. 밝혀지는 사실에 대한 나름의 재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아는 것 자체를 두려워할 철학자는, 철학자라면 단 한명도 없습니다. 

 적어도 현대에는 (1900년대 이후) 철학과 과학의 영역 구분이 상당히 
명료하다면 명료한 편이어서 경쟁 관계로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문데, 
 아무래도 chopin님은 좀 특이하네요 ^^;

 참고로 옛날 얘기나 하나 해보죠. 

 1920년대에 '논리 실증주의'라는 철학 학파가 있었습니다. 에른스트 마하나
A.J. 에이어등으로 대표되었는데,  그들의 주장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드디어 철학이 가야할 길을 발견했다. 그것은 과학의 시녀가 되는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 학파는 철학에 과학을 이용했다기보다는 지식의 전 분야가
과학에 흡수된다고 보았고, 철학이 할 일이란 밝혀진 과학 이론과 개념을 
분석하고 정리하는 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서 철저하게 추구되었던 것이 바로 경험의 영역을 넘어선 - 
칸트에 의해서 이미 부정되었던 - '형이상학'을 철학에서 적극적으로
걷어내는 작업을 위한 '검증 원리'의 확립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오캄의 
면도날의 원리가 바로 그들의 원리를 표현하는 말이 되기도 했습니다. 

 논리 실증주의가 끼친 영향은 상당했습니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분석력은
다른 철학자들에게 상당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들로 하여금 
방어를 위한 나름의 그에 못지 않은 분석력을 갖추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엔 오류로 판명되어서 학파 자체는 공중 분해되고 맙니다.
 일단 검증 원리 확립의 불가능성이 점차 대두되었고, 극단적 환원주의
유지에 대한 자신감의 상실, 진술에 대한 분석의 토대인 명제의 분석
가능성에 대한 회의 등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주창했었던 에이어
조차 논리 실증주의의 포기를 사실상 공식 선언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비록 레닌등에 의해서 마하의 관념론적인 성격이 
철저하게 비판되기도 했고, 많은 철학자들에게서 거센 항의도 받아왔었지만, 

 결과적으론 계속 영역을 넓혀 가는 과학 앞에서 철학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게 했고, 적어도 논리 실증주의의 기본 취지나 
태도는 지금도 높이 평가 받고 있기 때문에, 철학자들로 하여금 과학에 
관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던 일종의 큰 사건이었습니다. 

 철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를 떠나서 설사 그것이
오류였다 해도 논리 실증주의를 그냥 지나칠 순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철학 하는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나름대로 충분한 고민을 거쳐옵니다.

 또, 철학의 역사는 잘 알고 계신 대로 오류와, 망상과, 온갖 거짓말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철학이란 그런 겁니다. 다른 학문들과는 달리 철학은 '지식'자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칸트가 이미 분명히 천명했지만, 철학자들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함'을 공부합니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론 같은 것을 진지하게 믿는 현대 철학자는 
거의 없지만 - 일종의 황당한 헛소리가 되어버렸지만 - 플라톤은 지금까지도 
결코 무시당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철학자의 진정한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근본적이면서 누구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가정에 대한 강력한 질문의 제기나 
의심을 얼마나 철저히 해보았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지 "true한 진리에
대한 천명이 얼마나 많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글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죄송~),  지금까지 말한 걸 대충 요약하자면, 
 철학에 관한 지나친 사유가 과학적 사고의 확립에 방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정하는 바이지만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결코 과학을
방해할 이유가 없고, 경쟁 관계에 있지 않으므로 영역 다툼을 할 일도 없으며
이러한 내용에 관해서 이미 철학자들 사이엔 충분한 대화가 있어왔다는
 사실을 꼭 아셨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쓰신 내용 중,   

>왜냐하면 사람과  마음에 대한 비밀은 인간이 탐구해내기가 불능인 
>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우리는 인간과 마음이라는  상상보다 단순한 세계를 단지 무지하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도달 불가능한 탐구 불능의 영역으로
>신비주의베일에  감싸두고 있는 것입니다.  

 위 내용 역시 특별한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면 상당수의 철학자들이
이미 안 그러고 있으니 전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발견된, 개발된 과학적 업적에 비추어서 회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미래에 대해서도 단언하는 사람은 분명히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군요.
 회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단순히 감싸두려는 의무감때문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분석을 토대로 솔직한 의문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과학자는 일일이 답해야 할 의무는 없으나 열심히 실재에 접근하여 
무언가를 밝혀낼 것이고, 성실한 철학자라면 자신의 솔직한 의문에 
답변을 찾던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거부하던가 할 것입니다. 
 
  
* 아무튼, 처음 쓰신 글 덕분에 댓글들이 많아서 오랜만에 철학보드가
  활성화되는 것 같아 기쁘군요. 오랜만에 레이첼님도 나오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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