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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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가 맞음...)
날 짜 (Date): 1999년 2월 18일 목요일 오전 06시 43분 29초
제 목(Title): Re: 인간과 기계사이의 다리.


  덕분에 좋은 글을 많이 봤네요. 전문용어들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바람에
끝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

  쇼팽님이 여기 적으셨기 때문에 적어보면, 읽은 느낌은 쇼팽님이 결론을
너무 쉽게 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부분에서 인간이
가능한 생물 진화에 대해서 확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것임을 강조하면서,
자연계에 해를 구해 내는 어떤 매커니즘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의견을 전개하시는 것 같던데요(아니라면 다시 설명 부탁). 그런 의견이라면,
비록 쇼팽님 자신은 창조론을 싫어하시는 듯 하지만, 창조론자들이 반가와
하겠군요. 그런 어려운 일에는 신이 개입했다는 설명이 쉽게 가능하면서도
설득력이 높아보이겠지요.

  생물의 진화를 저는 제가 군대에서 임진강 경계 근무를 설 때 보았던
임진강변의 뻘(정확히 뻘인지는 모르겠음. 뻘흙 비슷해 보이는 흙) 바닥에
깊게 새겨진 골들, 때로 아름답게까지 보이던 그 골들하고 비교하고 싶군요.
오래되서 기억이 가물한데, 임진강이 조석 작용의 영향을 받아 하루 중
일정하게 물이 들거나 나거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이 나면 강
바닥의 일부가 드러나지요. 그렇게 드러난 강 바닥은 대체로 평평한데,
부분부분 깊은 골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골이 물이 날 때 물 빠지는
통로였던 모양입니다. 그 골의 모양은 대체로 고등학교 때나 배웠던 처음에
평평하던 땅에 빗물이 빠지고 강이 생기면서 그랜드캐년 같은 골이 생기고
어찌고 어찌고 했던 그림을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 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으로 봤던 그랜드캐년처럼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어떤 것은 참 아름답습니다. 패여진 골의 양쪽 경사에 새겨진
무늬도 그렇고요, 작은 강줄기들이 모여서 큰 강을 이루듯 골들이 연결된
모양도 멋있고요. 작은 분재를 보면서 큰 나무와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듯이,
그 골들을 보면서 가보지도 않은 그랜드캐년의 아름다움의 일부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 중 특히나 아름다웠던 어떤 골 앞에서 골의 경사에 새겨진 무늬에 감탄
하던 저 같은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합시다.
  "아! 놀라워라. 어떤 과정을 거쳐야 이런 아름다운 무늬가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불가능해보이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연의
   신비는 놀랍고도 경외로운 것이로다."
이렇게요. ^^
  하지만, 정작 자연의 입장에서는(자연이 입장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말이 우습겠지요? 하다보니 어디 틈이 생겼고, 그 틈에 물이
더 잘 흘러서 깊게 골이 패인 것인데, 그 중에 하나 자기 눈에 들어온다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모습이요.
  비슷한 일들은 우리 일상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요. 누군가 뭘 가까스로
했더니 남들이 옆에서 보고 "어떻게 그렇게 절묘한 해결책을 생각해냈느냐"고
감탄을 하면, 자신은 속으로 '그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거 밖에 없었거든'
이라고 생각한다거나요.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라는 책에 보면 끝 부분에 '약한 인간의 원리'에
대해서 적고 있습니다. 우리 우주의 형태를 결정하는 여러가지 상수 중 하나만
이상했어도 지금 인간은 태어나지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에 대한 적절한 반론을
제시하는 원리이고, 대체로 어떻게 해서인지 모르지만 인간이 탄생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진 우주가 생겨났고, 거기서 탄생한 인간이 자기 자신에게 감탄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조건을 가진 우주에서는 인간이 태어나지 않았
겠지만, 우리 보기에 좋아보이건 추해 보이건 또 거기도 어떤 모양을 가진
우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진화를 통해서 현존하는 인간과 같은 고도로 정밀한 생물의 탄생한 것도 비슷하게
볼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방학이라고 TV에서 아침방송 끝날 때 즈음에 일본에서
만들었다는 생명진화에 대해서 다룬 다큐멘타리 하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시간을
기억했다고 꼭 보곤 했었습니다만. 아시겠지만, 5~7억년전(맞나? 대충 이 정도)
생물 폭발기라고도 불려지는 캄브리아기는 지금 있는 생물의 원형을 포함해서
다양한 형태의 생물이 공존했던 생물 형태의 실험장 같은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
중에 척색을 가졌던 당시에는 약한 생물이었던 어떤 생물체가 진화의 주류로
떠올라서 오늘날의 척추동물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큐멘타리 프로그램에서는 그 당시를 연구하는 고생물학자와의 인터뷰 장면도
있었는데, 그 고생물학자는 만약에 지구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생명탄생과
진화의 실험을 되풀이한다면 오늘날과 같은 생물계가 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즉 오늘날과 전혀 다른 생물계도 가능했고 그 선택에는 어떤
우연의 요소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정확히 같은 말은 아니고 같은
의미)
  오늘도 우리가 하늘을 보면 각양각색의 모양을 가진 구름들이 지나가고, 어떤
구름은 우리가 아는 토끼나 솜사탕을 닮기도 합니다. 생물의 탄생과 진화에 있어
인간의 의미란, 자연이 구름에 그려내는 다양한 무늬 중 어느 하나와 같지
않을까요?


  쇼팽님의 글을 보면 철학이 하는 일이 뭔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계신
듯하던데요.
  이 글만해도 잘 보시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임진강 바닥의 골과 인간 진화와
우리의 일상과 우주상수와 어떤 원리, 캄브리아기, 구름 같은 것들이 서로 엮여
들어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철학이 자연의 비밀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맞습니다. 분명히 철학은 자연의 비밀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자연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은 과학이지요. 철학은 과학이 알려준 자연과 인간과 인간
사회의 비밀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 인간 사회를 모두 "꿰뚫고 있는" 원리를 이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우리가 사는 세상을 꿰뚫는 원리를 이해하려
하는가? 그 답은 다음의 질문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과학을 통하여
세상의 비밀을 알려고 하는가?
  이렇게 과학과 철학이 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에, 훌륭한 과학자가 반드시
훌륭한 철학자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동네 떡볶이 아줌마나 자주 가는 찻집의
아저씨 같은 분들도 멋들어진 개똥철학을 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학이나 이런 동네는 엄밀함이 부족하다고 보시는 듯 한데요. 엄밀함의
문제는 개인 차이입니다. 막연한 생각들을 대충대충 엮거나 논리적 결함이 있는
생각들을 자신의 철학으로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밀한 논증 끝에 얻은
결론으로 견고한 철학을 쌓는 사람도 있습니다. 꼭 수식을 사용해야만 엄밀한
논증이 가능한 것은 아님을 생각하면 이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이 글의 주제는 진화와 인간 탄생에 대한 다분히 철학적 고찰을
통해서 되새겨 본 철학의 의미... 이 쯤이 되겠군요. ^^

  그럼, 철학보드 여러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



                                                        먼 길 돌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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