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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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seonguk (최성욱)
날 짜 (Date): 1998년 8월 17일 월요일 오후 11시 22분 32초
제 목(Title): 쉐퍼에 관한 마지막 얘기...


jesusk님, 

   아무래도 앞으로의 논의도 크게 진전없을 것 같고 minerva님처럼 불평하는 
사람도 더 늘어날 것 같으니 이글로 제 입장을 대충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이번 글을 쓰기 전에 앞엣글들을 차분히 다시 읽어보았고, 저 개인적으로는
두가지 큰 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jesusk님이 쉐퍼의 
글을 채 올리기도 전에 제가 미리 앞질러서 글을 올리는 바람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 여지도 없이 지루한 1:1 토론이 되어버렸다는 점이었고,또 하나는 
제앞의 글들이 마치 쉐퍼의 글들을 올리지 말도록 만류하는 듯한 느낌을 님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일단 이 글을 마지막으로 저는 쉐퍼에 관한 일체의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하겠으니 쉐퍼의 글을 어느 보드에든 님이 원하시는대로 올리셨으면 합니다. 
다만 만일 님이 쉐퍼의 글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수 있는지에 대한 보다
다양한 반응을 알고 싶다면 철학보드보다는 아무래도 Christian보드에 
어울린다는 것이 저 개인 적인 의견입니다. 
  그러나 그건 전적으로 님이 선택해서 결정하길 바라며, 특히 철학보드에
계속 올리실 거라면 처음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미리 암시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선입관을 갖지 않고 대하도록 하는 것일테고 보다 많은 
사람이 님과의 토론에 참여하는 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쉐퍼도 그리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했던 비판은 제 생각엔 정확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만 님에게 굳이 그걸
설득해서 믿게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으며 다만 이런 생각도 있다는 정도로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이제 잡담은 그만두고 일단 몇가지 하고 싶었던 말을 마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제가 수차례 반복했던 인용의 문제를 마무리짓겠습니다.

  jesusk님은 혹시 C.S. 루이스의 "슬픔의 관찰"이라는 책을 읽어본적 있습니까. 
C.S. 루이스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대학 영문과 교수이면서 몇몇 유명한 
동화책을  집필한 장본인이고 지적인 무신론자들을 위해 기독교 교리를 잘 
풀어쓰기로  유명한사람이지요. (철학자로서는 오히려 쉐퍼보다 낫다는게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사람은 참 "학문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물론 저는 
이 사람의 이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 사람이 50살이 넘어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여인을 만나 처음 결혼을
해서 독신주의를 청산하게 됩니다만("쉐도우 랜드"라는 영화 - 보셨나요? 거기
자세히 나옵니다) 이 여인이 루이스와 행복하게 잘 살다  결혼하고 얼마안돼서
죽습니다. 이때 그 날카로운 머리로 무신론자와 토론해서 승승장구해왔던
C.S. 루이스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에 못이겨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서
쓴 책이 "슬픔의 관찰" 인데요...

  "슬픔의 관찰" 초반에 읽다보면 이 사람이 거의 무신론자로 되돌아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독교 신'에 대해 조직적인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근데, 나중에  책 결말쯤 가게 되면 신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회복하는 모습이 조용하게 그려지고 있지요.   
  
   뭔 씰데 없는 소린가 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쉐퍼 책에서 무신론 철학자에
대한 인용이란게 바로 이렇습니다. 만일 어떤 영리한 반기독교 무신론자가 
기독교를 비판하고 공격하기 위해   C.S. 루이스가 "슬픔의 관찰" 책 초반에 
조직적으로 해놓은 신에 대해  회의하는 부분만을 딱 잘라서 인용해놓고
"보아라. 이 똑똑한 기독교인이 결국엔 절망하는 모습을.." 하고 그 부분
에서 출발해서 반기독교적 무신론을 전개해나간다고 생각해보시라 이겁니다.
C.S. 루이스를 잘 알고 그 책을 읽은 기독교인이면 얼마나 기가 찰 노릇이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쉐퍼책에서 사르트르로부터  인용하여 무신론적인 수많은
종류의 철학들이 마치 한계에 다다른것처럼 얘기합니다만....
  특히 사르트르가  자신만의 무신론적 세계관을 펼쳐보이기 위해 해놓은 
무신론에 대한 조직적인 분석과 어떻게 보면 절망적으로 보이는 듯한 표현들을 
딱 잘라서 잘 엮어놓긴 했습니다만 그 결론과 상관없이 그부분에서 마냥 출발해서 
기독교 유신론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무신론을 잘알고 사르트르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기가 막힐 노릇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한 님이 말하고 싶어하는 인식론적 필요성 부분 chapter 에서 쉐퍼가 
비트켄슈타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테고, 쉐퍼 스스로 
이야기하듯  비트켄슈타인이 "Tractactus"에서 얘기한 맨 마지막의 "침묵"이 
자신의 책의 주제라고 까지 하면서 가장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걸 봅니다만....

   쉐퍼가 럿셀의 평가라고 하면서 인용한 "비트켄슈타인은 신비주의자"였다
라는 부분 - 요건 참 웃기는 겁니다. 비트켄슈타인이 신비주의자다라고 평가
할려면 할 수는 있습니다. 요새 서점에 가보면 비트켄슈타인이 불교사상을
가졌다는둥 별 이론이 다있더군요. 

   근데 여기서 쉐퍼의 의도는 비트켄슈타인같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가 철학에 회의를 거듭하다 못해 결국엔 "언어관념론"에 도달하게  
되었고 "가치 문제" 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는 마지막 진술로 결론을  
맺는 신비주의자가  되었고(럿셀이 말하듯),
따라서 무신론으로 출발한 인식론은 결국엔 "절망"이다라는 식의 논리인데요..

  먼저 럿셀의 말을 인용한 부분에서..
  럿셀이 물론 비트켄슈타인의 지도교수였으므로 비트켄슈타인을 가장 잘
이해했으리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꼭 그렇진 않습니다. 
비트켄슈타인의 "Tractatus"의 서문을 럿셀이 썼습니다만 비트켄슈타인이 
럿셀이 쓴 서문을 아주 싫어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Tractatus를 읽고 탄복한 럿셀이 자청해서 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록 럿셀이 비트켄슈타인의 "Tractatus"를 아주 높게 평가 했지만 
비트켄슈타인의 후기 철학인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책은 매우
싫어했던걸로 알려져있는 등, 두사람간의 관계가 대충 이렇습니다. 

  결국 비트켄슈타인 자신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럿셀이라는 사람의 말을 굳이
인용해서 신비주의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웃기려니와,  비트켄슈타인이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대해서 "침묵"하자는 명제를 자신의책 마지막에 
포함시킨것은 칸트가 형이상학이 학문적으로 성립할 수 없음을 보인 
의도와 별로 크게 다르지 않을 뿐일 것인데 그걸 가지고 "가치문제"에
대해선 아무 할말없이 전정긍긍한 언어철학 전체의 최종 결론인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음은 당연한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철학하는 사람의 최종 결론이 "언어"로 돌아갔다는 쉐퍼의 진술이
마치 우리 일상적 세계속에 있는 모든 것이 "언어적 용어"안에 구축되어 갇혀
외부적 실재와 단절되었다는 의도로 진행되어 읽는 사람을 겁주고 
있습니다만 이건 비트켄슈타인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한 초보적인 독서의 
결과입니다. 

  비트켄슈타인의 가장 가까운 몇몇 제자들이 쓴글들과 전문적인 철학자들의 
책만 보아도 그가 분명히 외부 실재세계 또는 가치문제에 대해 분명히 자신의
이론안에 포용하여  명료하게 구분지어 잘 설명하고 있다는 해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비록  그 간결하기 짝이 없는 비트켄슈타인의 책에
머리 싸매고 헤매지 않아도 말입니다. 
  (요건 jesusk님 스스로도 확인해보세요)

  인용의 문제는 어쨌든 대충 그렇다치고요....그럼 말입니다....
  설사 철학의 인식론이든
형이상학이든 도덕론이든 한계에 도달하여 더이상 답변을 찾을 수 없어 방황하게 
될지라도 만일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가 혹시 무신론적 출발점이었다해도 또는 
"인격적 출발점"의 결여가 되었다해도   거기서 부터 출발하여 
과연 굳이 "기독교 유신론"에서 해답을 찾아야하는 "필연적이고" "유일하고"
"절대적인" 이유가 있을까요 ? 
  그건 스스로 역시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  만일 제가 나름대로 그에 가장 적절한 신을 하나 창조해내서, 또는 어디
다른데서 찾아 가설로 설정한다면요? )

  굳이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을 길게 제가 예를 들어보인것은 그게 가장
그런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이고 있는 것이고 출발점을 같이 둔 이상 그이후
가 아무리 달라진다쳐도 결국엔 달라질게 없다는 것을 보이기위해서였고,
인간의 이성적 인식을 처음 단계에서 조금이라도 허용한 기독교적 변증이 
허무하게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저의 확고한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논증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예증으로서요..)

..............

  마지막으로 jesusk님.. 혹시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읽어보셨습니까. 
콜린 윌슨은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만 방대한 독서량과 좋은
통찰력을 가진 덕분에 학위받은 사람 이상으로 지성인 대접을 받는 
사람인데요. 그사람 책 "아웃사이더" 보면 쉐퍼가 이야기한 무신론자들의
이야기가 좀 구체적으로 여기저기서 인용되어  그려져 있습니다. 
특히 단순한 무신론자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훨씬 더 "세상을 깊게 
보는사람"들  얘기입니다. 이런 사람들 얘기를 콜린 윌슨은 참 잘 정리해서
묘사해놓았지요.
  
  참 특이하게도 쉐퍼의 의도대로 가만 보면 이 책에서는 그런 깊이있는
무신론자들이 "결코" 행복해보이지 않고 온통 절망적인 모습뿐인듯합니다.
제가 한때 기독교인었을때는 이런 걸 읽으면서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하곤 했습니다만........

   근데요..재미있는건 막상 그런 관찰을 해서 그런 책을 쓴 콜린 윌슨은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가지론자입니다. 즉, 그에 의하면 분명히 그역시
"신의 필요성"은  느낀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기독교 신"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걸 볼 수 있는데요..쉐퍼와 어떻게 보면
비슷한 관찰을 하고 있는 콜린 윌슨의 결론은 불가지론이라는 사실에서
봤을때..뭘 느끼십니까.

  어떻습니까. 그런 가운데서 신의 모습을 찾고,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독교 신을 선택하는 것은 각자 개인의 특별한 상황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믿음이 될뿐이지...결코 논리적인 결론이 될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님의 쉐퍼가 그것을 "논증"의 도구로 사용한 것은 제가 보기에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쉐퍼에 대한 제 나름대로 내린 최종적 결론입니다. 

.................

  이외에 과학철학에 대한 쉐퍼입장에도 몇가지 문제점을 지적할게
있습니다만 너무 길어질까 줄입니다. 
  한가지 - 마이클 폴라니에 대한 쉐퍼의 인용 - 요건 한번 1차문헌을
통해 다시한번 검토해보시면 제가 말한 또하나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

P.S.
  
   jesusk님.. 전 기독교인의 성경에 기반을 둔 순환론적인 주장을
결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오래전에 기독교 변증에 있어 
회의에, 회의에,고민에, 고민을 더한끝에 최종적으로  
오직 자증적인 성격의"성경"에서 출발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내린바 있습니다.
  이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를 진정한 기독교인지에 
대한 여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이고, 
지금 제가 신앙을 포기하고 비기독교인으로 머무르며 방관하고
있는 몇가지 이유들중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게 중요한
이유는 아니지만서도..

  만일 비기독교인이 그것을 순환론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논리적 공격을 해온다면 그때는 "세계관" 적인 해석으로 맞서는
수밖에 없겠지요..........요런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온다면(?)
(잘모르겠지만 ^^;) 해보도록 하지요. 
  
  어쨌든 많이 고민....하시기 바랍니다. 전 당분간 글쓰는걸 
자제하고 회사일에 열중해야겠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논문쓰는
일까지 겹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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