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laudia (가 아님...)
날 짜 (Date): 1998년 7월  4일 토요일 오후 07시 41분 14초
제 목(Title): Re: 제 질문의 요지는요


> 클라우디아가 아님님. 무척 날카로우시네요.
> 저의 질문과 시그에 대해 크리티컬한 면을 캐치하셨어요.

윽... 쑥쓰... 그리고, 그냥 저를 limelite라고 해 주세요. ^^

>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나온 마지막 대사인데, 그가 가진 신이란 올림푸스의 많은 
> 신들을 통합해서 절대적 존재군을 칭한것 같아요. 원작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몽땅 
> 갖다 썼다가 아무래도 "신만이 아십니다"는 용인할 수 없어서 뺐지요.

> 제 논점은 신이란 무엇인가, 신이 있나 없나, 신이필요한가를 따져보자는 게 
> 아닙니다. 엔들리스 아규먼트가 될 것은 불보듯 빤하죠. 아니면 지겨워서 아무말 
> 안할지도 모르죠. 저는 기존에 있는 신의 성격, 신자들의 기대 및 믿음의 포인트 
> 등을 짚어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지에 대한 사랑은 없으나 궁금한 걸 풀어보고 
> 싶어서..

  네... 역시 그러셨군요. 이에 대해서는 여러 분들이 좋은 책을 추천해 주신
것 같네요.
  참고로 제 생각을 약간 적으면, 저는 신의 존재 유무를 논하는 것 자체가
아예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증 불가능한 것을 논한다는 이유에서지요.

> 제가 신들에 대해 질문한 것, 그리고 신을 바람직한 신을 골라보고 싶다는 
> 것은 내가 신에 대해 가진 인정할 수 없는 입장들 외에도 뭔가 다른게 있을 
> 얄팍한 바램이지요. 사실 유일신들에 대해선 도저히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가 
> 없어요. 이것저것 인간적인 비유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다가도 말이 안되는 
> 곳에서는 "나는 신이야, 넌 몰라"로 우기죠. 신되기 참 쉽죠? 

  제 생각에는 이런 이유, 즉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대답해 줄 수
있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대답해 줄 어떤 존재를 바라기 때문에 인간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면서도 끊임없이 신이라는 존재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이걸 좀 더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게, 그렇게 신이 주신 답이라는 것을
자세히 보면 결국 인간 자신의 머릿 속에서 나왔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또, 신이 주신 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로 흔한 것은 그 답이라는 것이 자신의
욕구에 반한다는 이유입니다. 자신의 욕구에 반하는 명령을 한다는 이유로
자기 머리 속의 어떤 존재가 아닌 의식 바깥에 실재하는 존재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지요.

> 불교의 교리는 기독교의 것과는 달라서 받아들이기가 어색하죠. 대신 이전까지 
> 가지고 있던 오해는 해소됐어요. 종교에서는 "선행"을 미덕으로 여긴다라는 
오해죠. 
> 선한 행동, 다른 사람을 위한 행위는 인간적으로 볼때 좋아 보이는 일이기 
때문에 
> 인간이 종교에 추가시킨 더미 교리입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 종교는 철저히 
> 개인주의입니다. 적어도 불교와 기독교는. 음.. 이부분은 안쓸걸 그랬네요. 
정리가 
> 안되어 있는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지요.. 하하.. 인도의 고행승들이 
선행을 
> 우습게 여긴다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동의해요. 다른 사람한테 잘하는 건 
> 종교에서는 2차적인 문제이죠. 인간과 종교의 갈등에서는 항상 종교가 이기니까. 
> 왜냐하면 종교에는 논리가 없기 때문이죠. "신이니까" 한마디면 게임 셋.

  불교에서는 신이 없고 깨달음의 극에 달한 존재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아실테고요. 님의 생각은 소승불교의 생각과 비슷하군요. 일부 사람들은 소승,
대승 할 때 '크다'는 말이 들어간 대승이 더 좋은 것으로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고, 소승 대승 모두 불교에서 양립하는 커다란 두 줄기지요.

> 주저리 주저리 말도 많았네요. 아직 할말이 종교별로 많지만 너무 길어지겠군요. 
> 바람직한 신이란 좀 능력이 떨어져도 좋으니 말이 되는 말만 하는 신을 
> 찾는거지요. 난 신 모독죄로 화형당하겠군요.. 후후.

  하하... 화형이라... ^^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지동설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화형당한 조르다노 브루노라는 신부(맞나?)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참고로, 혹 아실지도 모르지만, 불교보드에서 소승과 대승에 관한 글을
퍼와 봅니다. 가서 읽어보시라고 할려다가, 근처에 제가 치졸하게 싸웠던
글들이 있어서리... 쩝... 그냥 퍼왔습니다... ^^

- limelite -

===============================================================================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dwij (드위지)
날 짜 (Date): 1998년 4월 30일 목요일 오후 02시 07분 55초
제 목(Title): Hynayana 와 Mahayana


라즈니쉬의 <달마 어록 강의>중...


*************
석가모니 부처의 가르침은 두 가지 종류의 구도자들을 만들어 내었다.

하나는 아라한으로 불려지는 사람들이고, 다른 하나는 보살이라고 불려지는
존재들이다.

아라한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바치다가 한번 깨달음을 얻
게되면, 어둠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는 사람
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로 간접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깨달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실 아라한들의 말에 따르면 자비심 같은 위
대한 생각도 엄밀하게 말해서 집착이란 것이다.

아라한들은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남을 도와 준다는 
생각은 애당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대는 오직 자신만을 도울 수 있다.

보통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아라한들은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
러나 그대가 어떤 선입관도 없이 본다면, 그들의 선언은 이세상에서 매우 중
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을 돕는 것은 남의 삶에 간섭하는 것이다. 그사
람의 생활방식에, 운명에, 그의 미래에 간섭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라한들은 
어떤 자비심도 믿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욕망에 대한 아름다운 
이름일 뿐이다.

그래서 아라한은 깨닫는 순간 제자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설법도 하지 않
고 어떤 방식으로도 남을 돕지 않는다. 그는 단지 자신의 황홀경속에서 살아
간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샘물에 목을 축이러 온다면 그때는 그사람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에게 샘물을 마시러 오라는 초대장 같은 것은 결코 보내
지 않는다. 만약 그대 스스로가 그의 현존을 마신다면 그것은 그대의 일이다.
그대가 길을 잘못 들어선다 해도 그는 그대를 말리지 않는다.

석가모니 부처는 자신들의 제자들 중 몇몇 사람이 아라한이 되는것을 받아들
였다. 그리고 그들의 길을 히나야나(Hynayana)라고 불렀다. 그것은 소승, 즉
작은 수레라는 뜻이다.  한배에 한 사람만 타고서 강을 건너갈 수 있는 작은
배란 뜻이다. 그들은 큰 배를 만드는 번잡스러움을 피한다. 피안으로 건너가
는 데에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는다. 오직 홀로 이세상에 태어
나서 홀로 수백만 번의 생을 거듭하다가 홀로 우주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부처는 아라한의 길을 받아들였고 또 존경했다. 그러나 또한 이 세상에는 많
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그는 간과하지 않았다.  그들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들의 첫번째 열망은 자신들의 기쁨을, 진리를 나누어 주는 것이
었다.  자비는 그들의 길이다. 그들은 역시 심오한 진리를 알고 있는 사람들
이다.

이 사람들을 보살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다른 사람을 초대하고 설득시켜서 
같은 경험을 맛보도록 한다. 그리고 그들은 이쪽 언덕에서 가능한 많은 구도
자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보살은 피안으로 건너가기를
자꾸만 연기한다. 그것은 어둠속에서 헤매는 사람들을 향한 자비심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의 관점이기도 했다. 더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아란한은 아라한이고 보살은 보살이다. 그들은 다른 운명을 갖고 있다.  물론
목적지는 동일하다. 그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보살들은 뱃사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기다리라. 서두르지 말라. 나는 이쪽 언덕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머물러야 한
다. 그래서 고통속에 있은 사람, 번뇌 속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구원해야 한다.
나는 절대적인 평화와 축복속에 있다. 나에게는 피안이 필요 없다. 나는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을 이곳에서 도울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도 역시 이런 사람들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는 아라한과 보살을
어떤차별을 두지 않았다. 자신들에게 맞는 삶을 택하라고 했다. 그래서 보살들
은 마하야냐(Mahayana) 라고 불린다. 그 말은 대승, 즉 큰 수레, 큰 배라는 뜻
이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처가 죽은후에 이 두 흐름은 2, 500년 동안 서로 자
신의 길이 옳다고 주장해 왔다.

............................


아라한은 보살을 이해할 수 없다. 보살 역시 아라한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완전히 반대극이다.

이제 불교국가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 졌다. 한국이나 일본같은 나라는 대
승불교에 속한다. 그곳은 보살들의 땅이다. 그리고 스리랑카 같은 나라는 소승
불교에 속한다. 그곳은 아라한의 땅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전혀 선불교를 존경
하지 않는다.  만약 그대가 스리랑카에 가서 달마를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웃을 
것이다. 만약 그대가 아난다 같은 아라한을 일본에 가서 말한다면 그들은 그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