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Rachel (레이첼) 날 짜 (Date): 1998년04월10일(금) 06시56분08초 ROK 제 목(Title): 환님께.. 제 글이 계속해서 굉장히 빗나가는것 같고, 제가 환님께 이야기하는것중에서의 문제는 제가 하는 이갸히늬 길과 환님이 하시는이야기의 길이 다르다는것. 그래서 전 분제가 안보인다고 이야기 한겁니다. 문제야 많이 있겠죠. 에를들어서 환님이 자꾸만, 네이걸이 경험공백을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태로 단정 지었다고 했는데.. 제가 충분이 그건 단정이 아니라 전재라고 말씀드렸는데도 그걸 가지고 물고 늘어시는군요. 알수 없는 걸 단정 지어서 받아들일수가 없다...라고 하시는데 죽음이라는 주제가 이미 증명 할수 없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고 제가 말씀 드리면서 종교적인 설명을 개입 시키지 않은 (개입시키면 신의 존재까지 더 복잡해 지니까) 죽음에 관해서 "가능성있는" 설명중에 하나가 바로 죽음은 아무런 경험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라고 말이죠. "하나의" 전재....입니다. 에를 들어서 과학에서도 이럴경우에 라고 이야기 하면서 틀을 만들듯이 이것도 커디션이 마로 죽음을 (많은 가능한 설명가운데에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상태로 본거죠. 그러니까..여기서 단정 지은것은 아무것도 없읍니다. 하나의 전재, 즉 The presupposition 아니고 a presupposition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전재로 사용하는 정의를 마음에 안 든다.. 내지는 틀렸다고 이야기를 하시니 전 이해가 안되는거죠. 일단 그 사람이 말하는 죽음을 경험 공백으로 보았을때..그 사람의 정의에 따라서 실제적으로 말하던 비 대칭의 문제가 그 사람이 준 설명으로 정말 풀리나..뭐 이런거 이갸기 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그게 주제 였는데...후후 만일 네이걸의 생각이 마음에 안 들면 (나도 맘에 들어서 이러는거 아님 하지만 문제는 바로 잡아야 함) 환님께서 아마도 다른 전재를 가지고 이야기 하시겠죠.. 예를 들어 처음에 이야기 하신 그 불교의 윤회등등.. 하지만, 죽음 이후에 세게를 이야기 하는것은 또 다른 주제가 되기 때문에 일단 네이걸의 전재에서는 죽음 이후의 세게는 이야기 하지않는 피하는 공백 상태로 만든것이죠. 환님께서 윤회내지는 또 다른 형이상학적 종교적인 설명을 죽음을 이해하는데 사용하셔도 전 상관 없습니다. 단지 네이걸의 전재가 증명할수 없어서 단정으로 보이셨던 만큼 환님의 어떤 죽음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제가 글을 올린 이유는 이런식으로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한다..하는 것이지. 이것이 정말 맞다.. 하는것은 아닙니다. 처음에 강력하게 이야기 했듯이 우리는 이미 증명할수 없고 전재적으로만 전재적으로 밖에 이야기 할수 없는 주제 즉, 죽음을 이야기 하고 ㅇLㅆ으니까요. 제 말이 잘 전달 되었으면 하네요. 레이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