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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yskim (바우처럼)
날 짜 (Date): 1995년10월30일(월) 23시15분57초 KST
제 목(Title): 자살의 과학

  이글은  한국과학 기술 청년회 홈페이지(http://www.ink.co.kr/~komsat)에
있는 글입니다.......   이것 이외에 과학기술자들을 위한 [과학기술 철학]
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학기술 철학에 관한 정리된 글이 있으시면 mail로 보내주시면
    홈페이지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 ]

  E-mail address :jhlee@gw4.hyunda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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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자살'의 과학]</h2><br><p>

                       서울대 과학사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주일우<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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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
<hr>

   생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일반적으
로 자살은 자연의 법칙을 조롱할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을 때까지
는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든  존재들의 확고한 본성을 무너뜨리는 행위로 간
주된다. 하지만 일단의 진화유전학자들은 자살이 자연선택과 적응의 영역을 벗
어난 탈선이나 병리학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냉혹한 자연선택의 논리가 작용
한 결과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p>
  자살은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공통적인  현상으로 전체 사망의 원인의 약
1%를 점하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의  심각한 자살 시도까지 고려한다면 자살하
려고 하는 경향은 꽤 높이 올라간다. 진화유전학자들은 이 정도로 높은 자살율
을 사회적 불행이나 정신병리학적  이유들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족하다고 생각
하고 있다. 자살율이  낮기는 하지만 일정한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살이라는 행위밑에는 다윈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진화적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있다. 그들은 자살을  하려는 경향이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
에서 그것을 휙득한 무리에게 이득을  주는 여러 특성들과 함께 생겨났을 것이
라고 주장하고 있다.<p>
 물론 자살을 지시하는 하나의 유전자가 존재한다거나 자살이나 정신병을 좋
은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에 합당한 진화적인 설명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한
가족안에서 자살을 하거나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자주  발견되는 것은 자살의
소질에 다분히 유전적인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리고 자살
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특정한 민족에게 더 자주 일어난
다. 예를들어 헝가리 사람들과 핀란드 사람들은 미국이나 여타의 유럽지역보다
두세배 가량 높은 자살율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 자살율이
높은 것은 경제적·사회적 상황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핀
란드 사람들과 헝가리 사람들이 다른  나라로 부터 이주해 온 사람들이라는 사
실은 생물학적 소질과의 관련을 암시하고 있다.<p>
   자살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은 크게 두가지가 있다. 첫번째가 자살은 살아남
은 친척들에게 이득을 주는 자기 희생의 표현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설명을 하
는 과학자들은 죽는 행위를 통해 생식이란 측면에서 얻는 것이 많고 잃는 것이
적은 것이 자살이라고 주장한다. 한  개체가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친척들은 죽
음으로부터 구조받거나 남겨진 자원들을 보다 많이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생
존자들은 희생한  개체의 유전자를 후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정글에서 사자를
만난 유인원 가족중 하나가 스스로를  희생하여 가족들을 살렸다고 해보자. 이
때, 그의 유전자는 살아남은 형제·자매를  통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아진
다. 자살은 인간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속에서 이러한 예를 수도 없이 많
이 만날 수 있다. 흰개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노리는 적들에게 자신의 창자를
파열시켜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내용물들을 퍼붓는다.  생식기(生殖期)가 지난
나비들은 그들이 새에게 발각되면 어린 나비들이 위험에 처하기 쉽상이므로 보
통 땅거죽까지 내려와 지쳐서 죽을 때까지 날개짓을 해댄다. 새에게 잡히기 전
에 스스로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곤충은 어미가 자신의
몸뚱이를 새끼들의 먹이로 제공한다. 두더지의  한 종류는 자신이 기생충에 감
염되었을때 무리 전체가 감염되지 않도록 복잡한 두더지 굴의 공공 화장실쯤에
해당하는 곳으로 가서 죽을 때까지 그곳에 머무른다. 감염된 놈은 절대로 그곳
으로부터 기어 나오지 않고 강제로 먹이를  먹일 수도 없다고 한다. 이렇게 자
신을 희생해서 일가붙이에게  이득을 주는 것은 사람들의  경우에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엄마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죽는다거나 전쟁 영웅이 그
의 동족을 위해 장렬히 산화한다거나 하는 예들이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늙거
나 병의 말기에 이른 환자들이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스스로 죽기
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추론들이 흔히 정신 이상이나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서  외롭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살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정신병학자들이 관찰한 바로는 자살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이라는 전적으로
이타적인 관점에서 생각한다고 한다. 심각한 자살 시도를 한 사람들에게 그 직
후, 이유를 물어보면 그들의 설명은 한결같이 이타적인 내용들이다. 물론 사람
들은 복잡한 집단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때문에 그러한 순교에의 충동은 때로
복잡하고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신의 죽음에 의해서 이득을 보거
나 자신의 유전자를 보전시켜 줄  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영혼을 바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p>
두번째로는 우울한 상태가 되려는 경향이 자연선택된 결과, 그 부산물로 자
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가 생겨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우울한 상태나 그 상
태에 머물려고 하는 경향은 때로 동물들에게  유리한 것이 될 수 있다. 우울한
상태는 일종의 감정적  동면의 역할을 해서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것이다. 또한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민감한 개체들은 그들의 동
료들보다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라든가, 새로운 동료의 불확실한 몸짓과 같은
환경의 중요한 변화들을  잘 알아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보고 듣고 냄새맡고
느낀다. 원숭이 무리를 연구해 보면  이런 원숭이들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숭이들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댓가로
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높다. 우울한 상태가 너무 긴 기간동안 계속되거나 자주
반복되면 부적응의 증상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수
도 있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심한 괴로움을 수반하는 우울증이  될 수 있다.
물론 우울한 상태가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주는 몇가지 잇점들 때문에 진화상에
서 선택되었다는 가설이 아직 검증받은  것은 아니다.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자
살과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룰 만큼 우울한 상태가 주는 잇점이 큰 것일까? 의
문이 남는다. 그래서 우울한 상태를 단순히 시기가 잘 맞아 떨어졌을때, 큰 잇
점을 주는 성격의 한 측면 정도로만 파악할 수도 있다. <p>
  하지만 우울증과 자살과의 관련성만은  명백해 보인다. 자살 전문가들은 오
래전부터 자살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우울증이나 조울증과 같은 정신병으로 고
생하고 있던 이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물들도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
살을 감행하곤  한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들볶인  원숭이는 생명을 포기하려는
시도를 한다. 영양실조로 죽을 때까지  음식물을 거부하거나 정신이 멀쩡한 원
숭이라면 접근하지 않을 위험한 나뭇가지에  몸을 던지는 등의 행동을 하는 것
이다. 한 침팬지 연구가는 8살박이 침팬지가 그 어미가 죽었을때 그 시체 옆을
떠나려고 하지도 않고  먹는 것도 거부하는 깊은 절망 상태에  처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 침팬지는 피골이 상접해가다가 결국은 죽어버렸다고 한다. <p>
   우울증과 그에 이어지는 자살을 자연선택의 산물이라고 하기엔 아직 성급한
감이 있지만 이런식의 추론과정을 따라가보는  것은 잇점이 있다. 이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생기는 행동의 변화와 심한  정신병이나 자살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진화유전학쪽에서 시작한 연구를 넘어 신경생화학적인 연구들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정신병은  뇌의 화학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노에피네
프린(norepinephrine)이나 세로토닌(serotonin)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신경 세포
간의 신호 전달이나 감정과  공격성등을 조절하는 분자들인데 정신병적 상황에
서 이들의  양이 감소한다. 이러한 대뇌  신경전달물질의 변화는 동물에게서도
똑같이 관찰된다.  붉은털 원숭이(rhesus monkey)들을 연구한  결과를 보면 이
원숭이들이 피붙이, 혹은 짝을 잃거나  사회적 지위가 하락했을때 약 20% 정도
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리고  이 원숭이들의 중추 신경계 노에피네프린
양이 적어지는 것이 관찰 되었다.  우울증에 빠진 개체의 통계수치와 대뇌에서
일어난 화학적 변화 모두 사람의  경우와 같았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신경전달
물질의 양을 정상적인 값으로 보정해 주면 정신병적인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사람이나 원숭이의 우울증 모두 프로작
(Prozac)과 같은 항우울증(抗憂鬱症)약으로 증상이  개선된다. 물론 이러한 요
법이 병을 완전히 낳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이 요법이 전제하고 있는 정신현상
에 대한 대단히  분석적이고 환원론적인 접근 방식에  대해서는 철학과 과학의
두 영역 모두에서 논란이 있다는 점은 주의하고 넘어가자. <p>
   자살에 대해 이것이 진화상에서 획득된 형질이라는 설명을 부여하려는 두가
지 시도는 아직 모두 완전하지 않다.  자살 행위를 이것이 주는 생식상의 잇점
과 연결시키는 첫번째 설명은 모든 동물의 행동을 '유전자의 생존욕구'로 설명
하는 사회생물학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많이 사용되는 것들인데 사회생
물학 자체가 많은 반박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많은 비판들 중에서 사회생물학
이 인간만의 독특한 정신활동의 결과인 문화가 결정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간과
하고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보자. 죽음에 대한 심성사(心性史)적
연구는 서구에서 죽음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여 졌는지를 해석해
냈다. 이에 따르면 18세기 이전은 사회 공동체와 자연및 우주사이의 경계가 모
호한 것이어서 개인의 죽음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았다고 한다. 누구나 죽
는 것이고 그래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 이상 나의 죽음만이 유별난 것도 아
니고 어쩌면 굳이 애달플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이후 사람들이 현세적인 행복
을 추구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열망이 강렬해지고 '나의 죽음'과 '너의 죽음'
같은 개인의 죽음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다. 죽음으로부터 주변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는 히스테리적인 애도의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죽음은 끔
찍스럽고 피해야만하는 금기같은 것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죽음이 가져오는
감정적 동요를 막기 위해서 생겨났는데  이렇게 된 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집단
적으로 행복을  추구하고 슬픔을 억압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시대마다 죽음에 대한 사회적 통념이  달랐다면 자살에 대한 태도도 역시 달랐
을 것이다. 자살에 대해 다르게 평가했을  각 시대는 분명히 자살 행위에 대해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이것은 생물학적인 것이라기 보다 문화적인 것이라 보는
것이 옳다. 생물학적인  설명과 문화적인 설명들은 어떻게  양립할 수 있을까?
결국 사회생물학적인 주장은 이타적인  행위의 원인을 문화적인 요소들로 설명
하는 다른 방식들을  아우를 수 있을 때 좀더 완전한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울한 상황이 정말 진화상에서 선택될 정도로 유익한지를 신빙성 있게 설명하
지 못하고 있는 두번째 설명에  대해서도 여전히 많은 보완과 검증이 뒤따라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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