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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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EltAeB (몸부림)
날 짜 (Date): 1998년01월31일(토) 14시32분28초 ROK
제 목(Title): 인간 김호길 - 그의 버클리 시절 (3)


1982년에 김호길 박사는 경남 진주시에 연암대학을 세우기 위해서
20여년의 외국생활에서 얻은 지반을 훌쩍 내던져버리고 귀국하기로 
작정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연암대학은 2년제 초급대학으로 발족하겠으나 
장차 대학원도 두고 진지한 과학기술의 연구소를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그때에 "20년 후면 연암을 한국의 캘택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오"라고 하던 
김호길 박사의 낙천적 발언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즈음하여 버클리를 방문한 부르크헤이븐 실험소의 이영용 박사와 
나는 김호길 박사와 함께 저녁을 먹고, 클레이톤에 있는 김 박사 댁에 
가서 김 박사가 많이 즐기는 술을 같이 나누며 밤새고 인생살이 얘기를 할 
참이었다.  김박사 부인께서 정성들여 해주신 술안주는 우리 셋이 밤새고 
앉아 먹어도 축낸 흔적도 안 보일만큼 푸짐했다.  그런데 이영용 박사는 
"김박사가 귀국하는 참 목적은 정치를 해서 감투를 쓰려는 게지"라는 말을 
하고야 말았다.  그 말에 김호길 박사는 펄쩍 뛰며 정색한 얼굴로 우리들을 
캄캄한 밤거리로 내쫓고 대문을 잠가 버렸다.  이튿날 버클리 실험소를 
방문한 이영용 박사가 김호길 박사 방을 찾아가니까 김박사는 보기도 
싫다고 손을 휘저으며 쫓아버렸다.  조금 후에 내가 혼자 찾아 들어가 
김호길 박사 보고 "무엇 농담으로 넘기지 그런 것 같고 화를 낼 필요가 
있는가? 화해하고 지내자"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김박사는 "내가 제일
믿는 당신네들까지 내 참마음을 못 알아 주기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 
그랬다."라며 뜻밖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날 오후에 김호길 박사와 
이영용 박사가 화해하고 악수하며 헤어지던 기억은 내 뇌리에 비쳐오는 
한가닥 밝은 햇볕처럼 아름답기만하다.

김호길 박사의 귀국 직전에 버클리 실험소의 과학자 동료들이 모여 
오찬을 같이하는 송별회가 있었다.  소위 "호길"을 아끼고 "호길"이 떠나가는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여러 물리학자들의 대화는 영국 버밍햄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1964년 버클리에 왔을때의 회고담으로 흘렀다. 특히 
"호길"이 운전면허증을 받으려 애쓰던 얘기가 벌어졌다.  운전연습 허가증을 
받으면 면허시험을 세번 칠 수 있는데 "호길"은 세번을 다 떨어졌다.
두번째 연습 허가증을 받았을때는 "호길"이 일하던 88-인치 사이클로트론의 
직원들이 다 거들어 아침에 버클리에서 떨어지면 오후에는 리치몬드에 가서 
다시 면허시험에 도전해서 결국은 그 어려운 면허증을 따고야 말았다. 
그래서 88-인치의 직원들은 자신들의 공로라고 자축하고 기뻐했다고 한다.
"호길"은 웃으며 "큰 길로 차를 몰고 나가니까 신호등을 보라고 하는데 
어느 것이 신호등이고 어느 것이 네온싸인인지 모르겠더라."라고 하여 다같이
한바탕 웃었다.  그 송별회에 나는 버클리 실험소의 큼직한 공중촬영 
사진을 들고 가서 동료들의 사인을 받아 기념으로 김호길 박사에게 드렸다.
나는 거기에 "나는 간다.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도 나는 간다.  그러니 나는 
낙관주의자인가 보다."라는 영문의 명언을 썼더니 김호길 박사가 읽고 
자신의 입장을 꼭 맞게 묘사한 말이라며 좋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김호길 박사는 떠나기 전에 나를 보고 "어디 두고 봅시다.  우리가 
나이 70이 넘어서 누구의 동상이 서게 될지를 두고 봅시다."라고 했다.  
귀국 이후 김호길 박사가 성취한 연암대학, 포항공대, 포항 방사광장치 
등의 찬란한 성과를 우리가 다 우러러 보게 되었다.  골프에서는 길게 
칠수록 공이 크게 삐뚤어져 나아갈 확률이 크지만, 게임을 이기려면 멀리 
치는 투기적 투기가 있어야 한다.  김호길 박사의 귀국결정은 분명히 
"골프인 김호길"의 롱숏이었다.

언젠가는 포항의 햇볕 밝은 언덕 위에 서게 될 김호길 박사의 
동상을 마음 안에 그려보며 인간 김호길을 추모하는 글을 여기서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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