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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EltAeB (몸부림)
날 짜 (Date): 1998년01월31일(토) 13시47분38초 ROK
제 목(Title): 인간 김호길 - 그의 버클리 시절


=== 방정리를 하다가 이 잡지가 나왔는데 그냥 버리기에 
=== 아까운 글이 있어 옮겨봤습니다.


인간 김호길 - 그의 버클리 시절

주동일 
로렌스 버클리 실험소

(KSEA LETTERS Vol.22 No.5-6 June 1994 통권 147 호)


1970년대 말 나는 남가주에 위치한 로마린다 의과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일하며 한달에 두어번씩 로렌스 버클리 실험소에 와서 
중이온 가속기의 의학적 이용 연구를 했다.  1978년부터 김호길 박사는 버클리 
실험소의 가속기 및 핵융합 연구실에 책임연구원으로 와있었는데 나를 
만나자 하는 말이 자기는 "메릴랜드 대학을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가는 길에 
버클리에 잠시 머물러 앉은 것이다"라고 했다.

점심시간에는 구내식당에서 김호길 박사의 이야기를 듣는것이 객지에 
와서 연구에 몰두하는 나의 단조로운 생활에 주는 즐거움의 하나였다.  식당에 
들어서면 김호길 박사가 어디 앉았는지 찾으려 두리번 거릴 필요가 없었다.
그냥 가장 큰 목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가면 틀림없이 김박사가 앞에 놓인 
음식은 먹을 생각도 않고 끝없는 정열을 쏟아가며 얘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호길 박사는 한문, 시, 골프, 한국정치, 미나리와 인삼의 재배법,
바둑, 한국의 "고속화 도로"의 건립 경위, 조선시대의 유럽, 동양사, 등등
초광범위한 지식을 예술의 거장이 그림을 그리듯 펼쳐놓았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 이론을 철학적이유로 거부하며 "하느님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라고 했다던가, 또는 상대성 원리의 이론이 실험결과와 틀려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건 놀라운 일이 되겠다. 왜냐? 하느님이 그럴리가 
없기 때문에"라고 했다는 얘기를 지적하여 어떤 이는 "아인슈타인은 자기가
마치 하느님의 아저씨가 된 것처럼 말을 했다"고 했다. 꼭 그 말처럼 
열변을 하는 김박사는 마치 공자의 아저씨나 이퇴계의 할아버지 같이 
보였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듯이 김호길 박사도 모든 하는일에 자신이 
있고 신념이 굳었다.

1979년 가을에는 한국에서 방문오신 어느 교수 한분이 박정희 정권이 
며칠 못 갈거라는 얘기를 했다.  김호길 박사는 그것은 군정의 권력을 
이해 못하는 견해라고 반박했다.  왈가왈부를 따지다가 결국은 점심 사는 
내기를 하게 됐다. 무기한 내기를 할수는 없다고 합의해서 1980년 4월 1일 
까지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면 김호길 박사가 점심을 사고, 그렇지 않으면 
한국에서 오신 교수가 점심을 사기로 정했다.  그 내기의 심판으로 내가 
추천되어 나는 수첩에 내기의 조건을 적어 놓았었다.  나는 반년 후면 
박정희 정권이 넘어가든 남아나든간에 공짜 점심을 얻어 먹게 되겠구나 
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러나 역사는 교묘하다.  뜻밖의 박정희의 암살로 
말미암아 그 내기는 무효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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