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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peterk (김 태훈)
날 짜 (Date): 1994년09월08일(목) 19시40분59초 KDT
제 목(Title): 78 계단.



마치 시계추처럼 하루에 세번씩, 그러나 대부분 두번씩,

78계단과 학생식당을 오르락내리락한다. 

때론 78계단 오르는 것이 싫어서 후문쪽에서 산기연쪽으로 난 길을

택해서 걸어 가기도 한다. 

78계단을, 아마 우리학교학생들이라면 대부분이 공포의 78계단이라고

부르는데, 식사를 하고 나서 걸어 올라가면 언제 밥을 먹었는지

모르게 된다. 속이 푹 꺼지면서 소화가 다 되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에 걸어 올라가면서 신나게 떠든다거나

명상에 잠겨서 올라간다는 것은 나같이 이제 퇴물(?)소리를 듣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즈음은 78계단을 오르면서 빨리 올라가야지

하는 생각뿐이니까. 다 오르고 나면 무슨 산의 정상이라도 오른것처럼

만세라도 부르고 싶어진다.


언젠가 박태준 전 이사장님이 학교에 오셨을때 78계단 아래서 학생 한사람을

붙들고 물어 보셨단다. 혹시 뭐 필요한 것이 없냐고. 그랬더니 그 학생은

78계단을 한번 삐끔 쳐다보더니 여기 에스칼레이터좀 설치해 주세요라고

했다나. 물론 박 전 이사장님은 씨익 웃으시기만 했다는데...


겨울이나 조금 선선할때에는 별 느낌없이 아무 생각 안하고 오르면

금새 오를 수 있다. 하지만 한여름, 더구나 학생식당에서 삼계탕같은

것이 나왔을때에는 식당에서 나와 78계단을 보면  갑자기 

뱃속의 닭이 요동을 친다. 난 죽어도 못 올라가....


내가 1학년때 과기대 다니는 친구가 우리학교 축제에 맞추어서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대동제를 끝내고 그 다음날 학교구경을 시켜준다고

78계단을 두번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랬더니 이 친구는 다시는 학교에

안 올라가려 했다. 결코...


아마 78계단을 오르다보면 중간쯤에 계단이 약간 상한 부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계단의 튀어나온 부분이 깨졌는데 그건 내가 2학년때인가의

일인가 보다.(3학년때였나? 이거 요즈음은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우리 동문 선배가 봄 축제중 밤에 아틀라스에 가려고 10시쯤 올라가는데 

78계단 중간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 있더라는 거다. 이상해서 가까히 

가 보았더니 글쎄 르망승용차가 78계단 중간에 떡 버티고 있는거다!!!

선배가 급히 가보니 학생회관에서 벌어지는 주점에서 그윽하게 한잔하신

분이 그만 자가용을 몰고 78계단으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차는 용하게도 뒤집히지 않고 끝까지 내려왔고 그 와중에 계단 몇개가

차바닥에 부딕쳐 깨진 것이다. 더욱이 황당했던 것은 그 아저씨, 

재미있다고 하며 다시 차를 몰고 학생회관쪽으로 올라가려는 거다.

선배가 겨우 말려서 선배가 운전해 집에 데려다 드렸단다. 시상에나...


그 악독하던 78계단이 언젠가 한번 내게 너무나 아름다운 장소로 보였던

적이 있었다. 봄이 되면 78계단에서 부터 폭풍의 언덕끝까지 벗꽃이

만발하게 된다. 이 벗꽃아치를 걷다보면 웬지 발걸음이 가벼워 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밤이되면 가로등이 하나둘 기지개를 펴고 벗꽃과 어울려

한껏 녹음을 우리에게 안겨준다. 그 벗꽃들중에 78계단아래에서

보면 78계단 꼭대기 오른쪽에 한그루가 있는데 바로 그 옆에 가로등도

같이 있다. 만개한 벗꽃이 그윽한 가로등빛을 받아 그 자태를 뽑내면

나도 모르게 은근히 마음이 설래게 되며 한번쯤 그 아래에서 

사랑하는 이와 춤을 추고 싶어진다. 그러면 아마 그 벗꽃은 미녀와

야수의 그 주전자 아줌마같이 멋진 노래를 불러줄꺼야...

"Tale as old as time, True it can be ~..."


아마도 졸업을 하고 이 학교를 떠나게 되어도 78계단만은 잊지 못할

것같다. 어디에 있건 어느때건 78계단이 내게 준 선물을 기억하며...









"에구에구.. 아가, 빨래 걷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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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을 꾸고 있었나 보다. 결코 깨어나고 싶지않은 그런 꿈을.
                         peterk, alias Pipe, peter@ucad.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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