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NU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PNU ] in KIDS
글 쓴 이(By): youngox (  황소영)
날 짜 (Date): 1996년05월25일(토) 16시26분46초 KDT
제 목(Title): 깊이에의 강요  [2]



      그녀의 친구들이 걱정을 했다. 그들은 말했다.

      [그녀를 돌봐 주어야겠어. 그녀는 위기에 빠져 있어. 인간적인  위
    기이거나 그녀의 천성이 너무 예술적이어서  그런지도 몰라.  아니면 
    경제적인 위기일 수도 있어. 첫번째 경우라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
    고, 두 번째 경우는 그녀 자신이 극복할 문제야. 세 번째라면 우리가 
    그녀를 위한 모임을 개최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조차 그녀에게
    는 고통스러운 일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들은 식사나 파티에 그녀를 초대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
    러나 그녀는 매번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면서도
    그림은 전혀 그리지 않고 방안에 앉아  우두커니 앞을 응시하거나 점
    토를 주물럭 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한번은 자신에게 너무 절망하여 초대를 받아들인 적이 있었다.  그
    녀를 마음에 들어한 어떤 젊은이가 잠자리를 같이 하기 위해  그녀를
    를 집으로 데려가려 했다. 자신도 그가 마음에 들었으니 원한다면 그
    렇게 하라고 그녀는 말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깊이가 없으니 각오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
    을 들은 젊은 남자는 단념했다.

      한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렸던 젊은 여인은 순식간에 영락했다. 그
    녀는 외출도 하지 않고 방문도 받지 않았다. 운동 부족으루 몸은  비
    대해졌으며, 알코올과 약물 복용 때문에 유달리 빠르게 늙어 갔다. 
    집안 여기저기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고, 그녀에게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기까지 했다.

      그녀는 3만 마르크를 상속받았었는데, 그것으로 3년을 살았다.  이
    시기에 한번 나폴리로 여행을 갔었다. 어떤 상황인지 아는 사람이 아
    무도 없었다. 그녀에게 말을 건 사람은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이 웅얼거리는 소리만을 들었을 뿐이었다.

      돈이 떨어지자, 그 여인은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전부 구멍내고 갈
    기갈기 찢었다. 그리고는 텔레비전 방송탑으로 올라가  139미터 아래
    로 뛰어내렸다. 그러나 이 날 바람이 몹시 거세게 불었기 때문에  그
    녀는 탑 아래 타르 포장된 광장에 떨어져 으스러지는 대신에 넓은 귀
    리밭을 가로질러 숲 가장자리까지 날려가 전나무 숲속으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그녀는 즉사했다.

      주로 스캔들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대중지들이 감지덕지  그 사건에
    덤벼들었다. 자살 사건, 바람에 날아간 흥미로운 경로, 한때 전도 양
    양했고 미모도 뛰어났던 여류 화가의 이야기라는 사실은 보도할 가치
    가 아주 높았다. 그녀의 집은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보였으며
    기자들은 환상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수없이 많은 빈 명, 곳곳에 얼굴을 내민  파괴의
    흔적,  갈기갈기 찢겨 나간 그림들, 사방 벽면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점토 덩어리, 심지어 방구석에는 배설물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건을  두 번째 톱 기사로 다루는 모험을 감행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3면까지 이어 다루었다.



      앞에서 말한 평론가는 젊은  여인이  그렇게 끔찍하게 삶을 마감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문예란에 기고했다.  그는 이렇
    게 썼다.


      거듭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젊은 사람이 상황을 이겨낼 힘을  기르지 
    못한 것을 다같이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것은 남아 있는 우리 모두에
    게 또 한번 충격적인 사건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관심과 예술적
    인 분야에서의 사려 깊은 동반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국가 차원의 장
    려와 개인의 의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결국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
    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충격적인  분열
    이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사명감을 위해 고집스럽게 조합하는 기교에서, 이러저리 비틀고 집요
    하게 파고듦과 동시에 지극히 감정적인, 분명 헛될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에 대한 피조물의 반항을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B-612.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