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NU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그대의무엇) 날 짜 (Date): 1998년 9월 27일 일요일 오후 08시 25분 11초 제 목(Title): 하루에 영화 다섯 편 보기 금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와 있다가 전철을 타고 갔습니다.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영화를 보고 다시 전철을 타고 학교에 오니 정말 노가다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상태로 운전할 생각을 하니 끔찍한 마음이 들고 그냥 학교에서 자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어요. 표를 못구한 사월의 이야기를 종내는 못보고 말았습니다. 어찌 버텨볼려고 노력했는데 안먹히더군요. "여자 화장실에 아직 세 명 남았어!" 해가며 사람들을 철저하게 내모는 저 비인간적인 치사빤쓰, 자원봉사자들이 저주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간만에 시내에 나간김에 쇼핑이나(그저 아이쇼핑에 그치더래두) 할까 했었는데 마침 빈 시간에 맞는 영화의 티켓을 팔려는 사람이 있더군요. '천사들이 꿈꾸는 삶'이라고 프랑스 작품인데 그러지않아도 볼까말까 망설이기도 했던 거라 잘됐다 싶더군요. 올해 칸느에서 여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한 작품이라는데 좀 별로였습니다. 주제가 진부하다는 느낌이... 게다가 후진 제일극장은 중간에 상영을 끊어버리지 않나, 다시 들어온 화면엔 소리가 없고, 끝날 때의 자막(Ending Credit)마저 쬐끔 보여주다 끊어버리더군요. (영어 자막이 없는 것도 맘에 안들던데...) 영화제가 아니라면 함께 영화관에 갈 사람이 생기기 전엔 영화관 잘 안갈 거지만서도, 앞으로 영화관에 다니게 되더라도 제일극장에서 하는 건 왠만함 안볼랍니다. 기대했던 '탱고'와 '수우'는 아주 좋았고, '상속자'도 괜찮더군요. 탱고는 처음 나오는 춤이 별로라서 "속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중년의 남성 댄서 한 명이 탱고의 거장이라며 소개되고 한 곡 부탁받게 되더군요. 그리곤 그 파티석상의 한 젊은 여인과 춤을 추는데, 아르헨티나의 진짜 탱고가 아니라 볼룸 탱고에 가까운 춤을 추더군요. 그런데 그게 감독의 술수라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춤과 음악이 점점 더 멋있어 지더군요. 음악도 탱고의 고전으로부터 피아졸라나 또 다른 현대적인 누보-탱고들까지 다양했을 뿐더러 아주 일급의 연주들이었습니다. 엔딩 크레딧을 보니 익히 아는 거장들의 이름이 주르르륵... Tango King이라 불리웠던 카를로스 가르델이 생전에 출연한 영화의 한 토막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구요, 영화에 직접 출연한 연주자들도 정말이지 끝내주더군요.(특히 짧았지만 기타와 반도네온의 이중주가 인상깊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진짜 아르헨티나의 특급 댄서들의 춤이 있었죠. 후반부에 라 쿰파르시타에 맞춰 춘 춤은 정말이지 최고였습니다. 영화만들기를 영화화한 작품인데 대본도 꽤 탄탄했고 아주 좋았습니다. 영화속의 영화(뮤지컬)에서 아르헨티나의 독재에 항거하다 학살된 사람들을 구덩이에 던져넣는 장면이 나오는데, 옆자리의 낌새가 이상해 슬쩍 보니 아주 이쁜 아가씨의 눈에 눈믈이 가득 머금어져 있는 게 참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감독의 이름 카를로스 사우라가 어디서 본듯한 느낌이던데 집에 와서 뒤져보니 카르멘을 플라멩코로 만들었던 그 사람이더군요. 수우는 시골에서 새 삶을 찾아 뉴욕으로 온 여성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불안한 삶을 살다가 추운 겨울 한 공원의 벤치에 앉은채로 죽어갑니다. 그녀에게 있어 섹스는 대화입니다. 대화를 나눌 가족도 친구도 없는 그녀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섹스로 대화의 단절로 인한 빈 곳을 채우려 하죠. 그러나 그녀를 창녀라고 생각한 초라한 술주정꾼과도 대화(?)를 나눌 순 있지만, 그 대화에 금전으로 댓가를 치루려는 것은 그녀에 대한 모욕입니다. 굶주림에 죽어갈지언정 말입니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연상케 하는 그녀의 자존심에 공감이랄까요 그런 것을 느꼈는데, 영화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허탈하다는듯한 소리가 꽤 많이 들리더군요. 그리고 제 옆에 앉았던 어떤 아가씨는 같이 온 친구에게 "차라리 창녀가 되었으면 저렇게 죽지는 않지!" 그러고, 그러니 그 친구는 "그러게 말야~"하고 대답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이 수우의 자존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씁쓸했습니다. 오늘 아침엔 '가초 딜로'란 영화를 가볍게 한 편 보고 왔습니다. 한 프랑스 젊은이가 아버지가 즐겨 듣던 테이프에 담긴 집시의 노래를 찾아서 그 노래의 마을을 찾아 루마니아의 시골로 갑니다. 루마니아 집시의 노래라는데 플라멩코와 거의 같더군요. 어렵게 찾아다니며 녹취한 테입들을 모두 부수어 땅에 묻고, 집시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뤄주는(춤추는 거죠)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테입에 담긴 음악들은 주인공의 가슴에서 살아있겠죠. 영화는 아주 좋았는데 상영중 내내 근처의 어떤 썩을 인간이 그놈의 썩은 방귀를 줄기차게 계속 뀌어대는 통에 아주 곤욕이었습니다. 그래도 옆자리의 한 여성이 영화 시작 전에 삐삐를 끄더니,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까지 괜히 좋아보이더군요. 마음같아선 영화제 기간 내내 영화만 보고 살았음 좋겠습니다만 애고.. 언제쯤이면 제 꿈인 한량이 될 수 있을지, 아니 그런 날이 오기나 할런지 모르겠네요... 내가 죽으면 술통 밑에 묻어 줘. 운이 좋으면 밑둥이 샐지도 몰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