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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sss (없어)
날 짜 (Date): 2011년 01월 04일 (화) 오후 10시 09분 50초
제 목(Title): 눈 치우기



포항에는 60년만에 폭설.

월요일 아침 8시부터 밤9시까지 30cm가 차곡차곡 쌓였다.


1. 월요일 저녁, 일부러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해쳐 걸어 퇴근하는데

사방이 아름다워서 오히려 기분이 좋고, 심지어는 재미있기까지 했다.

세상에 눈만큼 예쁘게 생긴게 또 있을까.(그것이 당신의 눈이든 하늘의 눈이든)

이쁘면 다 용서가 되는건가..OTL


2. 화요일 아침, 햇볕이 나고, 날도 포근한듯 하다.

오후엔 눈이 녹아 치우기 쉬울것 같다. 

하지만 아침부터 눈을 치워야 했다.

제철소장이 눈 치웠나 순찰을 다닌다고 했다.

허허 가카께서 치킨값까지 친히 챙기시니 소장이 제설작업검사를 손수 

다니시네..(설마 디테일의 힘이란 책 때문은 아니겠지)


어쨌건 삽질은 재미있다.

한 삽에 조금이라도 더 담아 대건이하나 건져보겠다고 졸라 열심히 펐다.

2010년은 호랑이해가 아니라 개해였다지? 개드립,개삽질,개구라..

2011년도 시작이 좋다.

그렇게 허리를 펼수가 없을것 같아진 오후 4시 부장이 호출한 시간까지 

눈을 치웠다.

2시쯤엔 잠시 삽을 눈에 꼿아놓고 조업지원팀에서 제공한 팥빵과 우유를 
마시기도 했다.



3. 삽질을 하면서 철기의 위대함과 인력의 하잘것 없음을 느꼈다.

플라스틱 쓰레받이를 손에 쥔 사람은 좀처럼 일의 진척이 없는데 

나는 삽으로 매삽마다 대건이를 건져올릴수 있었다.

(그덕에 그의 팔다리는 성하지만 내 팔다리는 지금 바들바들 떨리고 있다.)

그 옛날, 적이 내려친 철검에 아름다운 곡선으로 휘어지는 나의 청동검을 보고 
나는 속이 얼마나 상했을지.

또한 내가 그렇게 열심히 눈을 다져가며 대건이를 만들어서 퍼날랐는데도

눈이 또 있고, 또 있더라. 

내가 퍼나른 눈도 내 어께만큼은 높아서 내가 이눈을 다 펐다는게 대견한데 

돌아보면 눈이 또 있고, 또 있고, 주차장은 줄곧 새하얗더라.


물집이 잡혀오는 손바닥과 아직도 드넓은 눈밭 사이에서 야기되는 갈등에

종지부를 찍으며 포크레인이 왔다.

포크레인은 삽자루에 한목숨을 맡긴 사람들의 가슴가슴을 눈으로 채웠다.

왜 눈을 치우라고 했어! 왜 눈을 치우라고 했어! 왜 눈을 치우라고 한거야!


4. 저녁엔 이마트에서 등심 스테이크와 와인을 사다 구워먹었다.

호주에서 먹던 맛이 나지 않았다.

라됴헤드의 노래가 흐른다.

포크레인이 채워놓았던 눈이 녹은 물이 눈에서 그렁그렁 맺혔다.

FMyLife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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