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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sss (없어)
날 짜 (Date): 2010년 07월 31일 (토) 오후 07시 19분 06초
제 목(Title): 어떻게 퇴짜를 놓나..


귀국하자마자 사촌형이 선자리를 주선했다.

집이 부유하고, 외국에 오래있다가 영어선생하고 있는데, 자기 학원 애들한테 
물어보니 사람이 무지 좋다고 하더란다.

올해 33세인 나는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감이나 각오도 없이, 오직 다급한 
마음에 낼름 만나보겠노라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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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잡기위해 통화를 잠깐 해보니, 말투가 느리면서도 또박또박하고, 

여자치고는 중저음이라 웬지 수수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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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까지 부산 서면으로 나가겠노라 약속했었다.

지금까지 선을 보러가면서 2,30분전에 도착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하지만..먼저 도착하여 후달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연달아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을때, 내가 기다리고 있던 곳이 롯데백화점 앞의 분수대가 아님을 
알았다.

나는 다시, 상대를 기다리게 하며, 도데체 여기가 어딘지, 롯데백화점 앞의 
분수대가 어딘지 허겁지겁 찾아나서야 했다.

중간에 전화기의 베터리가 떨어져서, 지하철역내 고객센타에서 잠깐 충전을 
할수 있게 되기까지 한번 더 가슴을 훓어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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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은 지금까지 본 모든 맞선녀들중 가장 키가 크고, 가장 아름다웠다.

흡사, 운명이란것이 물화하여, 불행하고 싶어하는 나를 어떻게든 행복하게 
만드려고 '어떠냐? 이런 것도 싫으냐?' 라고 묻는것 같다.

아마 서면역을 돌아다니는 여자들이 신은 굽의 평균 높이의 굽을 신는다면 
나와 거의 같았을 것이다.

쌍거풀 수술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ㅎㅎ 자연산 코가 나만큼 오똑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반달같은 눈썹이 짖어서 그릴 필요가 없었고, 가만히 있어도 미소지은 모양의 
입술도 도톰하였다.

두상이 작고 둥글어, 단발머리에 앞머리를 질끈 올려 묶은 힘든 스타일을 쉽게 
소화하고 있었다. 

한 사람에 대해 언급하면서 외모가 어떠하더라라고 하면 웬지 내 자신이 속된 
기분이 든다.

하지만, 어떤 경우건, 사람을 만나게 되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외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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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시원한 것을 마시고, 점심으로는 삼천원짜리 밀면을 먹고, 후식으로 다시 
시원한 것을 마셨다.

잠자는 시간을 몹시 아까워하여, 일찍 일어나서 날마다 한시간씩은 운동을 
한다고 했다.

뮤지컬, 영화, 독서, 국내외 여행, 음악회, 전시회, 미술관, 야구, 농구 관람, 
맛집찾아 다니며 먹기를 즐긴다.

맛있는것을 좋아는 하되, 직접만들지는 못하고, 만들줄 아는 것은 나쵸, 
스파게티, 셀러드 같은 양식.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어딘가를 해매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둘중에 하나는 
해야한다고 했다. 

쇼핑은 즐기지 않으며, 그 사람의 어디에서도 된장의 향기는 풍기지 않았다.

사탕을 상품으로 한 퀴즈나, 상품권을 내건 기말 순위경쟁같은 것으로, 또 
자신의 다양한 취미를 이용해, 여러 학생들과 친하게 지내며, 다르기 힘들 
남고생들을 능숙하게 다루는듯 하였다.

지금까지 한 사람도 맞춘적이 없었던 넌샌스 퀴즈 두개를 다 맞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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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는 언제나 처럼 머리가 복잡했다.

정리하자면, 유복하고, 성격좋고, 예쁘고, 늘씬하고, 부지런한 사람인거다.

완벽하네?

그런 한켠에 골치아프게 됐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사촌형한테 보고를 해줘야할텐데, 마음에 쏙드니 성사시켜야겠다는 결심은 
서질 않고, 트집 잡을 거리도 하나 없다.

나는 도데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포항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어떤 사람이 필요한지 
생각해보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없었다. 기준이.

나는 어떤 사람도 원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33과 회사에서 쫓겨나게될 대충 10년 후쯤의 나를 생각하면 상당한 압박을 
느낀다.

하지만 그에 대해 어떤 대안도 가지고 있지않고, 모색하고 있지도 않다.

그저 선자리에 나가보고는, '여자가 절 싫다네요..'라고 얼버무리기를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이번에는 그것도 어렵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해보자니, 시간만 비면 친구들과 약속을 잡는다는 사람의 
시간을 빼내, 후회하지 않게 해줄 자신이 없다.

나는 둘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여자만 보면 부들부들 떠는 증상은 나이한살 더 먹으면서 나았으니

그래, 이것이 근본에 거의 가까운 문제점이다.

오늘이 가기전에 어느쪽이든 의사전달은 되어야 할터인데,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이렇게 에지크랙보다 훨씬 어렵다.

아..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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