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a drifter) 날 짜 (Date): 2007년 7월 5일 목요일 오후 10시 52분 17초 제 목(Title): Re: 러시아. 러시아의 문화적 저력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에는 공감합니다만... 그러면 우리는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군요. 오래 전에, 조선후기-일제시대를 활동하던 5명창의 SP판을 복각한 CD과 일제시대-50년대까지 활동하던 명창 임방울의 소리를 담은 CD에서 각 명창들에 대한 소개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소개글에는 명창들이 활동 하던 당시의 평가도 많이 차용되었죠. 그거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거든요. 옛날 평가들을 보면 명창들의 소리에 대해서 상당한 미사여구가 동원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 미사여구가 어색하지 않고 구사가 자연스럽고 평가에 자신감이 읽힙니다. 그런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는 미사여구 평가의 구사... 실은 많이 보던 거죠. 우리가 수입하던 서양의 유명한 음악가의 소리를 담은 서구 음반의 설명글에서요. 그런 미사여구가 어울리는 본고장 서양음악가들을 부러워 하며, 우리나라의 서양음악가들에게는 차마 쑥스러워서 사용을 못하던... 그러니까 우리도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현대의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조선이 유교라는 이념에 의해 지배되는 '사실상 종교국가'였고, 유교의 발상지 중국을 문화적으로 존경하는 사대주의 국가였으며, 조선이 추구 하던 유교분파 이념의 속성 등등의 이유로 물질적/물리적인 측면에서 조선시대는 서양의 중세 암흑기와 비교될 정도로 침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선 사대주의자들이 문화적 자부심까지 잃었던 것은 아니었 습니다. (참고로, 물질적인 측면에서 조선중기 이후는 그 전이나 고려시대하고 비교해도 표가 팍 납니다만, 서양의 중세국가들과 로마카톨릭과의 관계 같은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조선의 상황이 특별히 나빴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어째건 암흑기는 암흑기지만) 물질적 기반을 무시한 문화적 자부심은 스스로 깨치기도 전에 제국주의 시대의 격랑에 휩쓸리게 되고, 결국 조선은 타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게 되지요. 모든 식민지국가가 그런 것은 아니라지만, 대체로 식민지국가들은 전통문화로부터 차단 되고 자기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잃기 마련이고, 조선도 일제시태 거기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합니다. 또, 식민지는 해방 후에 대체로 (개발)독재국가로 연결되면서 또 다시 적지 않은 문화 파괴를 경험하게 되는데, 조선은 거기에 국토의 분단에 이념적 분단까지 경험 하면서, 문화적 전통과 자부심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일제시대와 해방후 남한의 문학작품들을 비교해 봐도, 해방후 남한의 문학작품들이 오히려 자부심은 더 많이 죽을 정도죠. 적개심 표현은 더 강해졌다고 볼 수 있겠고요. 다른 예로 조선은, 현대의 발달한 자연존중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대단히 감탄스러운 자연 친화적인 철학과 미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지배층의 자부심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도 자연 친화적인 관습이 많이 배어있었습니다. 이런 쪽으로 너무 발달해서 위와 같은 문제를 야기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앞선 자연친회적 이념이 일제시대와 특히 분단-개발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단절되고 저열하게 변질되었는지, 더 설명 안해도 될 겁니다. 피아니스트 리흐테르의 연주여행은 무척 부럽고 좋아보입니다. 근데 그게 러시아만의 문화적 전통일까요? 그것은 사실 우리의 문화적 전통 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명창들의 멋들어진 연주여행도 결코 리흐테르 연주여행 못지 않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런 문화적 전통과 자부심으로부터 단절된 불행한 세대인 것이죠. 어떻건 현대의 문화융합은 미래의 우리 문화저변과 전통이 될 것이고, 과거 전통만 추억하고 고수하려는 태도가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렇지만, 자기 문화의 전통과 자부심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융합을 하는 것과 그것들을 잃어버리고 추종하게 되는 것은 설명하기 쉽지 않은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문화계가 외부에 과시할 성과에 목말라하면서 아둥바둥 해봤지만, 성과를 얻는 효율은 차라리 1950 년대만 못했다(최소한 2000년대 전까지는)는 식으로 비교가 될 때면 더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의 문화적 저변을 존중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문화적 전통과 현대적 문제에 대한 생각이 짧은 금난새의 아래와 같은 말은, 경직된 교조주의에 빠졌음에도 문화적 자부심은 유지했던 조선 사대주의자보다도 저열한 식민지-분단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자부심마저 잃은 문화사대주의자의 발언로 해석 되네요. >소련이 막 붕괴되었을 때, 지휘자 금난새가 TV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조금 잘 살게 되서, 맥도날드 앞에서 줄서는 러시아 사람들을 >무시하지만, 그네들과 우리의 문화적 저변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거기 사람들은 맥도날드는 못 먹어도 음악회는 간다고. ............................................................................... a drifter off to see the world there's such a lot of world to se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