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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EuGene ()
날 짜 (Date): 2005년 2월 18일 금요일 오후 06시 30분 02초
제 목(Title): OTL


어제 오늘 이틀 내내 좌절감을 느낄 일들이 연이은다.


엊저녁 클럽 모임에서 진행을 맡은 내내 버벅대기만 했다.

한국땅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살아온 토종인 몸에,

몸도 마음도 스트레스 만땅인 상태에선 외국어를 말하는게 더 힘든거라고

위안할 수도 있겠지만, 

10년 전에 말하던 품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는 걸 떠올린 순간, 

한숨 쉬며 끊으려던 담배 하나 문채로 주차장에 세워둔 차 옆에 한동안 
서있었다.

담배 맛도 느껴지지 않고 그냥 목만 칼칼했다.


집에 돌아오니, 지난 달에 계약한 집 매매 문제를 부동산에 문의하고 돌아온 
아내가

무엇인가 잔뜩 적은 종이를 보여주며 옷 갈아입을 틈도 주지않고 

자신도 아직은 약간 혼란스러운 채로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구까지 내려가서 저당금을 지급하고, 근저당을 말소하고, 등기를 이전하고,

잔금을 치르기 전에 임시로 집주인과 전세 계약서를 작성하고,

등기이전이 확정되면 다시 잔액을 치르고, 거기에 더해서 부동산 취득세와 
등록세를 내란다.

그 와중에 외국 출장이 잡혀있다.

모자란 돈은 빌리면 된다지만, 빚지고 사는 삶이 편할 리가 있나...

아내에게 임란 몇해 전욋 거지를 사위로 맞이했던 조선시대 벼슬아치 얘길 잠시 
해주었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그 장인과, 

똑같이 혜안을 가졌기에 어짜피 망할 나라, 그냥 거지노릇이 편하다며 길거리 
노숙자였던 사위.

가진게 많을 수록 삶이 번잡스러우니 그냥 웬만하면 없는 채로 살아야지 한게 
7,8년이었는데,

나이들어 나를 바꾼다는게 어렵다고 느껴지지도 않고 그냥 가슴이 답답하다.

지난해 심장병으로 별세하신 한 어른의 가슴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리고 오늘 출근해서 받아 본 연구자료 메일엔 눈에 띄는 주제의 논문이 
여러편 보인다.

더욱이 얼굴은 몰라도 근방에서 같이 밥먹으며 일하는 사람들이 저자인지라 
파일을 받아 열어보았다.

......

그들의 논문이 순수한 연구의 결과이건 취합의 결과이건, 내가 도통 알아먹기 
힘들고,

양 또한 아주 많은 준비를 해왔음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어쩌랴... 며칠 후면 그들과 한자리에서 논문을 발표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야 내 분야도 아니고, 내 일하다가 앞으로 필요할지 모른다 싶어

혼자 있는거 없는거 찾아가며 썼다지만, 

학회장이 어디 그런 관용이나 배려를 과시하는 장소던가...


할일은 메모지에 빼곡한데 손에 잡히는 게 없다. 

난 대체 어찌 살아갈 수 있으려나... 아내를 두고 산사에 곁눈질할 수도 
없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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