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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sccho (파파게노)
날 짜 (Date): 1995년10월28일(토) 23시54분43초 KST
제 목(Title): ..기다림..



 ..기다림.. 이라....   이게 어느 분 이름같던데....

막연하게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거, 실현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막연한 기대에 

이끌리어 그냥 무언가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을까?

적어도 난 그렇지 않았었는데...

 어제 토요일... 오전에 부산 수산대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고 나머지 늦은 

오후 일정들을 뒤로 한 채 부산 외대근처 어느 커피숍에 않아있었다. 이름이 

미르였던가?  그렇다.. 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모양도, 머리카락 길이도,

피부의 색도, 그리고 그 무엇보다 어떤 웃음을 짓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단지 내가 아는 것은 그녀가 외대에 다닌다는 것과 여기 키즈에 

아이디 빌려 종종 들어오는 사람이라는 거, 나한테 톡을 걸었다가 한 이분 

이야기하고 나서 가봐야한다고 했던 사람이라는 거, 재즈와인이라는 립스틱을 

바르면 어울린다는 거, 나중에 보내준 메일을 통해 알게 된 이름 석 자와 삐삐 번호,

내가 아는 건 그게 전부였다. 아니... 하나 더, 언젠가 부산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좋은 곳들을 소개시켜 주겠노라고 했던 사람...

학회가 끝나자 마자 부리나케 호출 번호를 눌러  

   " 음성을 남기시려면 이번!"

하자마자 2를 눌러 평생 처음 내 목소리를 녹음시켰는데... 

간간히 시계를 보며 기다렸지만... 막연하게 기다리니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처절하고 잔뜩 기대에 부푼 기다림과는 달리... 

  내 앞에는 친절하게도 종업원 아가씨가 석 잔 째 따라준 진한 커피 - 그녀는 그 

커피가 이것 저것 섞어 브랜딩한 건데 그 조성은 자기도 모르겠노라고 했다. 

무관심한 웃음을 지으며 그냥.. 다 드시고 또 드시고 싶으면 이야기하세요 

라고 했었다. 퉁명한 부산 말투로.-  와 벌써 오래 전에 없어진 토스트의 잔해,

그리고 그 집에 들어오자 마자 시켰던 카푸치노 잔이 아직까지 벽에 거품을 남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그 집에 있던 좋은 생각이라는 책을 보며 좋은 

생각들을 떠올려 보려고 무진장 애쓰고 있는 내가 있었다. 무려 두 시간과 삼십분

동안 ... 

  기다린다는 거 .. 막연하게 기다린다는 거... 그게 그리도 재미있을줄이야...

수많은 생각, 끊임없는 기억들에 둘러싸여 그냥 않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평범한 여유.. 그런것들이 과연 내게 한 번이라도 있었나? 뭐가 그리 

바빠서 이리 저리 휘달려 다녔던지... 뭐가 그리 조급하여 전전긍긍 했던지...

여덟시 이십분, 드디어 세 시간이 지나갔다.. 막연한 기다림은 결국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쓴 웃음.. 그러나 후회스럽지는 않는 그런 웃음을 웃으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부산의 밤거리를 걸었다. 바람이 무척이나 상쾌한 밤이었다. 한 열시간은

맞아도 기분 좋을 것같은... 그런 바람...


 
 


                                      파랑새를 찾아서, 피앙세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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