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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ongJi ] in KIDS
글 쓴 이(By): aeolus ( 바람의딸 )
날 짜 (Date): 2001년 8월 20일 월요일 오후 12시 25분 00초
제 목(Title): 북경방문기 - 4


7월 30일 월요일

> 기상에서 출발까지
7시50분에 모이기로 했는데 나랑 혜복이가 늑장을 부리는 바람에 5분이 
지체되었다.
8시부터 호텔 앞의 천안문으로 가는 도로가 막힌다고 가이드가 성화를 냈다.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타고는 10여분 정도를 가서 드디어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월요일 아침 출근 시간이라서인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 천안문 광장
천안문 광장은 200만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가이드 말투로 하면 
"용납할 수 있다"고.
가이드가 북한 말씨가 강해서인지 간혹 재미있는 용어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자신을 "본 자신"이라고 하기도 하여 웃기도 했다.
그리고 중국말에도 우리와는 의미가 같으나 달리 표현하는 것이 있었다. 북경 
온 첫날부터 거리의 간판에는 "XX集團"이라는 글이 자주 보였다. 이 "집단"이란 
것은 우리로 말하면 그룹에 해당하는 말이란다. 그러니까 삼성그룹이 아니라 
삼성집단이 되는것이다. 뭐 그룹을 굳이 번역하자면 집단도 맞는데, 내가 자주 
듣던 말이 아니라 그런지 생소했지만, 재미있는 표현이다. 무슨무슨 대주점, 
객점 이런 것도 말이다. 또 사무실은 영어로는 "Office Center"인데 이들은 
그냥 직역을 하여(아니면 우리와는 정말 표현 방식이 달라서인지) 
"事務中心"이라고 했다.
아무튼 천안문 광장은 엄청 넓었으며 사람들도 많이들 왔다. 평일임을 감안하고 
이른 아침임을 고려한다면 많은 인원들이다.
광장 한 켠에는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된 건물이 있었고 사람들은 거기에 
헌화하기위해 들어가려고 정말 기다란 줄을 서고 있었다. 마치 붉은 광장과 
레닌처럼.
그리곤 우리가 잘 아는, 마치 남대문처럼 보이는 거대한 문에도 역시 모택동의 
초상화가 걸려있었다. 그 초상화의 무게만 몇 톤이라고 한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치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다른 곳보다 공안이 많이 
보였다. 사복 공안도 있다고 하니 정말 중요한 장소가 맞는가 보다.
중국에는 요새 공안이 인기있는 직업이란다.
그 거대한 천안문을 통과하면 자금성의 입구가 나온다.

> 자금성
당연하게도 자금성하면 영화 "마지막 황제"가 생각이 난다. 아마 나 뿐은 
아니리라. "마지막 황제"에서 이 문을 나가려던 부의를 경찰들이 막는 장면이 
떠오른다. 제지당한 부의는 자기가 아끼던 쥐인가 개구리인가를 문에대고 
던져버렸던 장면도.
문 앞에서는 텔레비젼 드라마를 촬영하는 것인지 전통의상으로 갈아입은 
여자들과 스탭들이 보였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마치 영국 버킹검 궁 앞 근위대 
교체식같은 장면이 진행되었다.
자금성은 구천구백구십구 칸이란다. 우리의 경복궁이 구백구십구 칸임을 상기할 
때 무려 열 배나 되는 규모이다. 물론 정확히는 구천 팔백여개라고 하는데 
그래봤자 대동소이하다.
맨 처음 문을 지나면 - 자꾸만 마지막 황제의 예를 드는 것이 뭣하긴 한데 - 
부의가 영화초반에 황제로 등극한 후에 의식을 행하던 가대한 뜰 - 이렇게 
표현해도 되는지 몰겠지만 - 이 나온다. 그리고 앞에 태화전이라는 건물이 
나오는데 등극하는 세살 짜리 꼬마 황제 부의가 너무 긴장하여 그 안의 옥좌에 
오줌을 쌌다고 하는데 아직도 그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대화전 뒤에 보화전과 중화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황제가 정무를 보는 전각들은 모두 옥좌가 있었고 그 옥좌들은 하나같이 모두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 뒤로는 생활 공간으로 황제와 황후, 측실들의 공간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교태전으로 황후의 생일을 축하받는 곳이라고 했다.
각 전각의 현판은 파란색 바탕이었고 명나라 때에 지어졌다지만 청왕조가 
만주족이라서 한자와 만주어가 같이 표기되어 있었다.
자금성을 둘러싼 담장은 굉장히 높았고 바로 밖에는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있었다.
역시 중국의 대표적인 궁이라서인지 외국인들도 다른 유적지에 비해 많이 
보였고 물론 한국 사람들도 많았다.
재밌는 것은 여기 화장실은 유료라는 것이다. 하지만 유료치고는 관리가 
엉망이었다.
중국을 가기전에 화장실에 대해서 너무나도 많이 듣고 갔기때문에 많이 기대 - 
긍정적이 아닌 - 를 가지고 갔는데 생각만큼은 아니었다. 물론 화장실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더러 나긴 했지만.
자금성은 명의 영락제가 14년에 걸쳐서 만들었다고 한다. 자금성은 정치구역과 
생활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자금성의 지붕은 모두 황금색으로 
되어있었다. 황금색은 황제의 색이라고 한다. 영화 - 물론 "마지막 황제" - 
에서도 부의의 동생 부걸이 노란 황금색 옷을 입고 있으니깐 벗으라고 노란색 
옷은 황제만이 입을 수 있다고 화를 내는 장면이 또 다시 떠올랐다.

> 경산공원
자금성 바로 뒷 쪽에 있는 지대가 약간 높은 공원인데 이 곳에 올라가면 
자금성을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했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서 제일 위에 있는 팔각정 처럼 생긴 곳에 올라보니 정말 
자금성의 전체 모습이 모두 보였다.
그 곳에서 한 숨 돌리고 점심을 먹으로 가는도중 어느 병원에 들르게 되었다.

> 한의대 부설 병원
또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나도 영문 모르고 얼결에 와서 제약회사 때와 
마찬가지로 수 많은 방들 중에 어느 방으로 인도되어 앉아있으니 70은 족히 
넘어보이는 하얀 가운을 입은 어느 할머니께서 오셔서는 여기는 어느 대학의 
연구 병원이라면서 느린 어조로 많은 말씀을 하셨는데 피곤도 하고 긴 말씀에 
졸립기도 해서 내용의 요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어쩌면 제대로 들어도 
파악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그 
할머니께서는 나가시고 의사 두 분이 한국인 통역을 하는 두 명의 여자와 같이 
들어왔다. 진맥을 원하면 해보라고 해서 몇몇이 진맥을 받았고 나도 호기심에 
진맥을 받았다. 진맥은 대충 맞는것 같았는데 모든 사람에게 "동충하초(물론 
여기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하고 있다)"를 먹으라는 것이었다. 동충하초가 
만병통치약으로 쓰이고 있었다. 우리 일행중 의사 두 분은 몹씨도 못마땅한 
표정들인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뒤로는 남자 둘이 따로 있었는데 이들은 안마를 해준다고 했다. 
물론 이천원을 나중에 걷어갔다.

> 점심
점심을 먹으러 간 곳은 한식당이었다. 이틀간 기름진 음식만을 먹다보니 
사람들이 불평해서인지 한식당으로 갔다. 근 이틀만인데도 된장찌게며 밑반찬이 
왜그렇게 맛있던지. 싹싹 다 비우고 나왔다.

> 이화원
이화원은 청나라 제9대 황제인 함풍제의 여섯 번째 부인으로 입궁했다가 나중엔 
황후의 자리까지 올라간 그 유명한 서태후의 여름 별장이라고 한다. 여름이면 
자금성에서 이화원으로 옮겨와서 정무를 봤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자금성 
못지않게 규모도 컸고 곳곳에 역사적인 사건을 겪은 자리도 있었다. 자신의 
아들 동치제가 젊은 나이에 죽자 조카인 광서제를 황제의 자리에 올렸다가 
광서제가 개혁을 단행하자 이화원의 궁벽 속의 비좁은 공간에 10년동안이나 
갇아놓았던 자리하며 그 광서제의 애비를 우물에 빠뜨렸던 자리며.
광서제가 갇혀지냈다는 그 벽은 유리로 밖에서 볼 수 있도록 해놨는데 보통 
사람들도 잠시도 못견딜 것같은 공간이었다. 결국 광서제는 한창 나이에 죽고 
인과응보인지 그 다음날 서태후도 죽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차가 발달되어 있는데 식사할 때는 거의 자스민 차가 나왔다. 나는 
중국의 기름진 식사보다는 식사 후에 마신 자스민 차가 제일 맛있었다. 아무튼 
이화원의 한쪽에서는 차를 파는 곳이 있어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맛을 
음미하게 해주고 살 수도 있었다. 그 곳의 직원들도 한국말을 유창하게 잘했다.
또 이화원의 자랑인 긴 회랑이 있는데 기둥마다 그림들이 하나도 겹치지 않고 
그려져있었다. 이것도 서태후가 한 명의 화가에게 하나의 그림만 그리도록 
했다는데 거기에 그려진 그림이 무려 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만명 이상의 
화가들이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이화원은 그 안에 거대한 호주가 있고 그 호수를 가로지르는 배들도 있었다. 
당연히 우리 일행도 배를 탔다. 이화원 전체 넓이의 4분의 3이 
호주(곤명호)이다.
그 곳 상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도 먹었는데 참 독특하게 생겼다. 우선 
컵모양으로 색소가 들어간 얼음에 그 안에 부드러운 크림같은 것으로 
채워넣었다. 맛도 괜찮았고 우리 나라에서 팔아도 잘 팔릴것 같았다.
그리고 바위들도 있었는데 그냥 바위가 아니라 수백톤이 나간다는 거석들이다. 
그 거석들 중에 하나는 너무 무거워서 북경까지 옮겨오는 데에 한 세대가 
걸렸다고 한다. 바위를 문 앞에 놓으면 액막음을 한다고 믿었단다.
이화원의 전체적인 느낌은 자금성의 큼직큼직하다는 느낌과는 반대로 아담하고 
조밀조밀하다는 것이다.
이화원을 나가자 마자 몰려드는 상인들은 카드며 한글로 된 이화원이나 
자금성의 안내책자를 들이밀며 흥정을 해왔다.
북경의 관광 가이드들은 매일 그런 곳에 다녀서 그 상인들과도 잘 안다고 한다.

> 중국에서의 한국 연예인
이화원 앞에서 신문을 하나 사 가지고 온 가이드가 차 안에서 읽다가말고는 
읽던 장을 펼쳐보이면서 김희선이 나왔다고 했다. 보니 정말 김희선의 사진이 
신문에 실려있었다. 내용인즉 김희선이 이번에 중국에서 CF를 찍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8억을 받는다는 기사 내용이었다. 중국은 하나의 상품을 만들면 인구가 
많아서 많이 팔리기 때문에 김희선과 같은 지명도 높은 배우들은 높은 값을 
받는다고 한다.
요새 중국엔 그야말로 한류의 열풍이 일어서 안재욱이나 김희선, 핑클, HOT, 
베이비복스 같은 한국 연예인들이 인기라고 한다. 우리 가이드도 핑클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중국 여자들은 이쁜 여자들이 없다고 불평하듯 
얘길했다.
길거리를 가다가도 우리 나라 가요를 흥얼거리는 중국 아이들도 많아서 자기도 
놀란다고 한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해주면서 매우 자랑스러워하는 
가이드가 이해가 안갔다.

> 마르코폴로(진주)
진주를 양식해서 직접 브로치나 목걸이 귀걸이같은 악세사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다. 물론 이것 또한 일정엔 없는 것이다.
거기서는 예쁜 악세사리 구경과 무엇보다도 시원하게, 춥기까지 느껴지는 
에어컨 바람을 실컷 맞을 수 있었다.

> 발 맛사지
차로 조금 가다가 웬 허름한 건물 앞에 섰다. 모두 내려서 들어간 실내는 약간 
어두웠고 간이 침대가 몇 십 개가 5행 10열 쯤으로 정열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각자 침대를 정해서 누웠다. 앞 쪽에는 비디오를 틀고 있었는데 
우리 나라의 뮤직 캠프같은 가요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거기엔 조금 전에도 
가이드가 말했던 핑클, HOT와 같은 아이돌 스타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조금 뒤에 앞 쪽의 문에서 사람들이 우리 인원 수에 맞춰서 나왔다. 모두들 
스무살 안팎으로 보였다. 재밌게도 여자 일행들은 남자에게, 남자 일행은 
여자에게 맛사지를 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꼭 그렇게 안해도 되지만 우리 
가이드가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고.
처음엔 침대에 앉아서 어깨 마사지를 받았다. 여행 내내 걸어다니고 오랜만에 
활동을 해서 나도 여기 저기 결렸는지 받는 내내 아파서 비명 수준은 아니지만 
소리내어 통증을 호소했지만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열심히 해줬다. 나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아프다고 소리를 냈다. 모두 여행의 피로가 단단히 
들었나보다.
그렇게 한 20여분을 받고 다음엔 본격적으로 발마사지에 들어갔다. 이번엔 
누워서 받았다.
먼저 무슨 오일같은 것을 발바닥에서 종아리까지 발라주더니 마사지를 
시작했다. 발바닥을 누르는데 어께보다 더 아팠다.
마사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열심히였다. 여기선 평가점수가 B를 세 번 
받으면 - 마사지를 다 받으면 손님들이 점수를 매긴다 - 쫓아낸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발마사지를 한 30~40분은 더 받은것 같았다. 총 1시간쯤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는 나는 A를 줬다. 당연히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이천원을 주라고 하는데 
원래 요금이 이천원인 것인지 봉사료인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이달러를 주었는데 옆의 아주머니는 아주 만족했는지 오천원을 줬고 점수표에도 
A+로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의 의미를 모른다고 했다.
여기도 재개발 지역으로 되어있으서 조만간 헐린다고 한다.

> 저녁
저녁을 먹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 호기심 부부의 아저씨가 각자 만나것도 
인연인데 자기소개를 하자고 했다. 참 궁금한 것도 많은 아저씨라 생각된다. 
하지만 모두들 흔쾌히 좋다고 했다.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첫번 째는 부여에서 병원을 하신다는 세가족, 두번 째 
가족은 아저씨는 서산에서 내과를 하시고 아주머니는 서울에 사시는 주말 
부부라고 한다. 아이가 둘이 있고. 세번째는 아들과 같이 온 아주머니 역시 
서울에 사시고 아저씨는 사업상 바쁘셔서 아들과만 오셨다고 했다. 다음은 
혜복이와 나. 뭐 둘 다 회사원이고 중학교 친구 사이다. 같은 동네에 산다. 
간단히 소개만했다. 마지막으로 자매들도 서울 어디에만 산다고 간단히 
소개하고 들어갔다.
물론 호기심 부부는 우리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되었는지 식사하면서 더 
물어봤다.
"태양성"이라는 간판의 한국 음식점. 식사를 하면서 아저씨 한 분이 가이드와 
운전사에게 팁을 주자고 해서 각자 만원을 걷었다. 식사가 끝나고 가이드에게 
마지막 날이니 어디서 간단히 맥주같은 것을 마실만한 곳이 없냐고 하니까 
"왕부정"거리에 가야한다고 했다. 거기는 우리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여서 
일단 차로 그 곳까지 가서 돌아갈 때는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 왕부정 거리 맥주 축제에서
왕부정 거리는 우리의 명동과 같은 거리였다. 세계 유수의 상품들이 진열장마다 
가득했고 사람들도 활기차 보였다. 간혹 우리의 상표들도 보이기도 했다. 고가 
상품은 아니고 지오다노나 롯데리아 정도였다. 롯데리아는 한문으로 
"로대리"라고 했는데 지금은 한자를 잊어버렸지만 옮기면서 좋은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외국의 어느 상표는 발음은 비슷했지만 중국인들에게 안좋은 
느낌의 단어로 되어있어서 망한 브랜드도 있다고 한다.
중국에는 맥주를 따로 파는 우리의 호프집같은 곳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간 날은 세계 맥주 축제가 한창이었다. 거기거리의 노천에서는 
의자와 테이블만 놓고 맥주를 파는 곳이 많았다. 우리도 적당한 곳을 찾으러 좀 
돌아다녔다. 그런데 무슨 백화점 건물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아마도 
대중가수가 와서 공연을 하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사태를 파악한 우리의 
가이드가 우리 일행을 버려놓고는 그 무리 주변을 기웃기웃거리더니만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한 순간 어이가 없어져서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있다가 가이드가 돌아와서는 "에이, 별로 볼 만한 공연이 없다. 
원로 가수들만 나와있다"고 투덜거렸다. 작년에 여기서 핑클이 와서 공연을 
했다고 설명하는 가이드는 무척 아쉬운 표정이었다. 말은 안했지만 아마 핑클이 
왔다면 우릴 내팽게치고 공연을 볼 태세였다. 뭐 이런 공연이 드문 중국의 
사정을 감안하면 얼핏 이해도 가긴했지만 아무튼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길도 모르는 우리를 내버려둔 처사를 생각하면 아까 낸 돈 다시 회수받고 
싶었다.
암튼 우리도 자리를 잡아서 앉았다.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 원래도 사람이 
많긴했다지만 중국에는 이런 축제가 드물어서 젊은이들 뿐이 아니라 가족단위로 
더 많이 몰려들었다 - 자리 찾기도 힘들었다.
느낌은 우리 명동이라기 보다는 가족들이 많아서인지 광활리같은 휴양지같았다. 
나이드신 분들도 많이 보였다.
흥이 절로나는 분위기에 맥주도 몇 모금씩들 마시고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11시쯤에 호텔로 갔다. 가는 도중에 이제까지 우리가 본 것이 중국의 
어제였다면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봇물터지듯 밀려드는 중국의 오늘을 볼 수가 
있었다. 아직 일반 서민에게까지 깊숙히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겉만 봐서는 
많은 발전 - 그것이 좋은 의미든 안좋은 의미든 - 이 되어있었다. 정치, 문화의 
중심지인 북경이 이 정도라면 그들이 경제의 중심지라고 하는 상하이는 
어떨런지.
우리도 올림픽하면서 복권의 열풍 - 뭐 여전하지만 - 이 휩쓸었듯 지금 중국도 
복권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는 다른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못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가이드의 말을 신뢰할 수 밖에 없지만. 암튼 가이드의 꿈도 
복권에 당첨되어 자기 고향 연변에 가서 의리의리한 집 지어놓고 예쁜 여자랑 
결혼하는 것이란다.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뭘 모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자본이 아무튼 빠르게 성장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사회주의가 좋으냐 자본주의가 좋으냐고 물어보니 내 말에 생각할 틈도 없이 
"자본주의가 당연히 좋죠" 이렇게 말을 해서 놀랐다. 아니면 내가 당연한 것을 
모르는 바보이거나.

7월 31일 화요일
9시 반에 호텔로비에 모여 약 한 시간쯤 차로 이동하여 북경 공항으로 갔다. 
가는 도중 어제 우리가 걷은 수고비를 건냈다.
올 때와는 다르게 출국은 북경 공항으로 했다.
북경 공항은 천진공항과는 비교도 안되게 훌륭했다. 인천공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게이트 앞에 앉아기다리고 있으려니 중국 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모두 방학을 맞아 서울로 가는 학생들이라고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미국이나 유럽을 가듯 그네들도 한국을 온다는 것이다. 여러 생각이 들었다.
비행 출발 시각이 뒤로 조정되어서 한 30여분을 더 대기했어야 했다. 한국에 
비가 와서 연착되는 모양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4시쯤되었다.

지금 써놓고 보니 많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드는 것 같다.
다음에도 더 기약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다녀올 만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면 관광객이 드문 9월쯤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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