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ongJi ] in KIDS 글 쓴 이(By): aeolus ( 바람의딸 ) 날 짜 (Date): 2001년 8월 20일 월요일 오후 12시 23분 44초 제 목(Title): 북경방문기 - 2 여기서 혜복은 나의 친구. 7월 28일 토요일 > 집에서 공항까지 아침 8시에 집을 나와 혜복이네 집을 들러 집에서 가까운 신설동에서 공항가는 버스를 탔다. 기다리는 도중에 카메라 필름 5통을 샀다. 꼭 5통을 다 써야지 하는 맘으로. 결국 5통까지 쓰진 못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거의 10시가 다 되어갔다. 인천공항은 처음이었다. 그 정도면 첫 인상치고는 괜찮았다. 이런 건물이 비가 새다니. 공항에 도착하여 이 곳 저 곳에서 몇 컷 찍었다. > 등록에서 비행기 탑승까지 10시 반 쯤에 여행사 직원을 만나서 티켓을 확인했다. 같이 여행할 팀인원이 모두 11명이라고 한다. 난생 처음하는 단체 관광이라, 아줌마 관광만은 안되었으면 빌 뿐이었다. 확인을 하고 공항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환전도 했는데 나는 USD로 70$를, 혜복이는 인민폐로 800元을 환전했다. 나는 굳이 인민폐로 안바꿔도 되고 이미 갔다 온 사람들에 의하면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주장했고 혜복이는 그 나라에 갔으니 그 나라 돈으로 환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공항에는 방학이나 휴가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영국, 프랑스를 가는 회사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곤 12시 반에 게이트 앞에서 탑승할 떄까지 기다렸다. 탑승은 오후 1시 5분께에 했다. 혜복이와 나는 창가 쪽에 앉았다. > 이륙해서 천진공항까지 1시 40분쯤 이륙한 비행기는 1시간이 넘어서 중국의 천진 공항에 갈 수 있었다. 원래 스케쥴 표에 나와있는 것으로는 1시간도 안걸렸는데 알고보니 중국은 우리보다 1시간 늦는다고 했고, 스케쥴 표에는 그 1시간이 감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탄 비행기는 2시(한국 시각으로는 3시, 이 후 현지 시각 적용)에 도착하였다. 아무튼 1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시간 동안 기내식까지 먹었다. > 천진 공항 천진 공항은 국제 공항의 규모라기 보다는 조그마한 어느 여객 터미널같은 느낌이었다. 아무튼 드디어 우리 일행은 중국이라는 낯선 땅에 발을 딛인 것이다. 공항 입국 수속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우리와 같은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수속을 하며 마주친 천진 공항 관계자들은 전통적인 중국 관리의 모습 그대로였다. 불친절하며 권위적이고 게으르기까지 한. 하긴 우리 나라 공무원과 비슷도 하다. 이렇게 수속을 끝내고 우리는 북경까지 동행하게 된 가이드와 함께 여행사 측에서 마련한 차(마이크로버스)에 올랐다. 북경 시내까지는 2시간도 넘는단다. 원래는 천진의 古문화 거리를 갈려했으나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바로 북경으로 바로 가기로 했다. 여행 내내 그 때 탄 마이크로 버스로 이동하였으며 운전기사는 앞니가 빠진 중국인 아저씨였는데 원래는 이 버스를 수리하는 사람으로 성수기때는 수요가 많기때문에 운정기사로도 일한다고 한다. > 우리 일행 소개 여기서 부터 우리 11명의 일행은 여행사 측에서 나온 가이드와 항상 같이 행동해야 했다. 그럼 3박 4일 동안 동거동락을 했던 일행들을 소개해보면. 나와 혜복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족 단위로 왔다. 우선, 부여에서 병원을 하신다는 세 가족이 있다. 이 가족의 가장되시는 분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인 가장의 근엄함을 항상 보여주셨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아주 명랑하시고 마치 옆집 아줌마같았다. 그리고 아주 귀여운 그 집 외아들인 한석이는 초등학교 6학년짜리 남자 아이다. 하도 똑소리나는 말을 잘해서 내가 똘똘이라고 불러줬다. 처음에는 하도 나서대서 싫었는데 자꾸보니 귀여웠다. 다음 가족은 역시 내과 의사부부인데 어른한테 이런 표현은 실례지만 둘 다 아주 귀엽다.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부부는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증명이나 하듯 둘 다 통통(사실은 좀 비만이었지만)한 체격이지만 겉모습과는 다르게 행동이나 말은 아주 귀엽고 아직도 신혼인양 로맨틱하려고 하셨다. 특히 아줌마. 그리고 둘 다 호기심이 아주 많아 보였다. 나와 혜복이는 돌아가는 날까지 나이를 물어보는 아주머니 떄문에 고생했다. 그리고 모자끼리 온 가족도 있었다. 어머니 되시는 분은 50대초반이나 중반정도 되어보였고 아들은 대학 4학년이란다. 그 둘은 떠나올 때부터도 거의 말을 안했고 그나마 아들은 다음 날부터 북경의 친구들 (1년정도 북경에서 공부했었다고 한다)과 어울리는 바람에 우리와는 (어머니도 같이 있음에도) 일정을 같이 하지 않았다. 아들은 마치 어머니의 그늘을 벚어나려 보였고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감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머니는 나이에 비해 행동이나 말씨가 세련되어 보이나 어딘지 차갑고 깐깐해보였으며 정형화되어있는 사고를 하는 것 같았다. 둘의 사이는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많이 좋아보였다. 대화도 많이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행 내내 둘이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대화를 하긴 했을까? 그 다음은 자매다. 우리 또래로 둘은 얼굴만 간신히 자매인 것을 확인될 뿐 풍기는 이미지로나 성격적으로나 자매같지 않았다. 언니라는 사람은 통통한 편으로 옆 집 언니같은 타입이었는데 반해, 동생은 큰 키에 시원스런 몸매, 화려한 화장으로 북경 시내 뭇남성뿐 아니라 우리 가이드도 사로잡았다. 자기 자신도 잘 아는 듯 했다. 이 동생은 옷을 하루에도 두 세번은 갈아입었다. 놀라울 뿐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가이드. 우리랑 동갑인 - 첫 인상으로는 30대 중반인 줄 알았지만 - 중국 연변 출신의 교포이다. 언듯보면 손범수를 닮았는데 혜복이는 아니라며 내가 턱도 없는 소리를 한다고했다. 북경에 온지는 이제 6년쯤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중국의 과거와 오늘을, 우리 나라와의 관계를 적절히 객관적으로 설명해서 괜찮은 가이드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면서 실망뿐이다. 나와 혜복이는 우리 일행에서 "친구팀"으로 통했다. > 북경에 도착 아무튼 우리 일행은 무사히(시간은 좀 걸렸지만) 북경 시내에 도착을 하였다. 오는 내내 피곤해서인지 졸다가 시내 가까이에 와서야 잠을 깼다. 예상과는 달리 높은 고층 건물(그러나 웬지 투박해보였다)과 많은 차량으로 내심 여기가 북경인가 했다. 차는 정말 많았고 자동차 산업이 없어서인지 제일 많은 것이 폭스바겐과 아우디. 간간히 우리의 차가 보였다. 우리는 일정의 첫 도착지인 천단공원에 도착해서 새로운 가이드(위의 연변 총각)와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천단공원 예전 중학교때 세계사 시간에 교과서에 사진으로만 보던 천단공원이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의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란다. 황제는 하늘의 자식(天子)이 아니던가! 우리가 흔히 봤던 천단공원의 기년전은 훨씬 안쪽에 있었으며 그 곳까지 들어가면서 밤에 제사를 지냈으므로 밤새 제단을 밝히던 거대한 촛대와 원형의 제단 원구단을 봤다. 그리고 푸른색 지붕의 기년전까지. 대표적인 건물인 기년전에는 제사를 지냈던 곳답게 사계절을 상징하는 4개의 기둥과 안 쪽의 일년 12달을 나타내는 12개의 기둥, 바깥 쪽의 12간지를 나타내는 12개의 2중 기중으로 되어있었다. 나는 이 곳에서 옛날 황제들이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역사적인 의미보다는 주말이라서인지, 휴가철이라선지 어디선가 온 수많은 인파가 더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런 인상은 북경을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지만. 곳곳마다 발디딜 틈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가이드도 사진을 찍으려면 절대 양보하면 안된다고 당부까지 했다.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 중의 반정도가 한국사람이라니! 기년전까지 구경한 우리는 공원 북쪽 문을 통해 나왔다. 나오는 중간에 긴 회랑을 지나왔는데 마치 성악가들이 우위를 겨루는 듯이 회랑 양쪽에서 사람들이 발성을 연습하고 있었다. 또 곳곳마다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어느 노부인은 기공을 연마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기도 하였다. 마치 문화 유적지라기보다는 북경 시민들의 휴식처같다는 느낌이이었다. 북문 쪽은 사람들도 별로 없고 한산했지만 토산품 가게들이 호객행위를 하며 기념품들을 늘여놓았는데 하나같이 별로 사고 싶은 맘은 안생겼다. 그러나 양산을 준비못한 母子팀의 아주머니와 자매팀의 언니는 양산을 샀다. 중국의 물건들은 적어도 처음 제시한 가격의 절반은 깎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결국엔 양산 두 개를 처음에 제시했던 한 개 값으로 샀으니 말이다. 여러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서양 사람들도 있었지만 단연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았다. 그리고 그 두 나라의 사람들은 척 봐도 느낌부터 달랐다. 처음엔 몰랐는데 몇가지 특징들이 있었다. 우선 한국의 아줌마들은 예외없이 퍼머머리였고 젊은 사람들은 염색을 했고 그들만의 유행 스타일이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상의는 가벼운 티에다가 아래는 베이지나 기타 옅은 색의 반바지. 유행하는 모자와 배낭까지. 나이드신 아저씨들도 비슷한 스타일이었다. 이에 반해 중국의 여자들은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모두 생머리였고 퍼머나 염색머리라곤 전혀 없었다. 옷들도 약간 촌스러웠지만 각자들은 엄청나게 멋을 낸것 같았다. 나중에 북경 시내의 유명 백화점을 갔는데 거기는 익히 보았던 북경 시민들이 아니여서 내가 서울이나 홍콩의 한복판에 있는 듯 착각을 할 경도로 우리와 비슷했다. 이렇게 오후 관광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 태가촌으로 갔다. > 태가촌 중국의 소수민족인 타이족의 전통 음식과 공연을 봤다. 솔직히 별로였다. 음식도 입에 맛지 않았고 그네들의 전통 의상을 입고 선 보인 공연도 별로였다. 아마 내가 라스베가스에서 하는 그런 쇼에 눈이 익숙해서인지 TV에서 많이 봐서인지 모르겠지만. 타이족은 얼굴 생김을 봐서는 남방계같았다. 중국에는 한족을 제외하고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 우리 민족도 있고 티벳지역도 포함하고.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 태가촌이 아파트단지 한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 태가촌은 분점이라고 한다. 북경 시내에 이런 태가촌이 두 개가 있다고 한다. > 서커스 구경 웬 서커스냐고 하겠지만 나도 의외였다. 난생 처음 현장에서 보는 서커스 구경이었으니까. 더러 실수를 있었지만 큰 실수는 아니었고 그런대로 볼 만은 했지만 어린 아이들이 많이 동원이 되어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그 어린 아이들은 그거라도 안하면 살 길이 막막하다고 하니 어찌할 수 없는 노릇아닌가. 그 서커스장은 예전 대한 극장같이 큰 극장같은 곳인데 한줄 건너 한줄은 어김없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8시 30분쯤에 서커스가 끝나고 우리는 3박 4일 동안 묵을 호텔로 향했다. > 금랑대주점 내가 묵었던 호텔이름이다. 여기선 호텔을 대주점 혹은 객점이라고 한다고 한다. 무슨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같았다. 갑자기 "新용문객잔"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4성급 호텔이라 특별하게 기대하진 않았지만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호텔로 오면서 "홍콩의 밤거리"가 아닌 "북경의 밤거리"를 구경했다. 기분이 그냥 묘했다. 우리 호텔 옆에는 북경에서도 큰 백화점인 "신세계"백화점이 있는데 매우 컸다. 대체적으로 중국의 큰 건물들은 진짜 그냥 컸다. 내가 익히 보아왔던 한국의 건물들과는 좀 외양이 달랐다. 건물은 큰데 좀 투박한 것이 실용성만 따지고 외양에는 별로 신경 쓴 흔적이 없었다. 하지만 3일째 저녁에 우리로 말하면 청담동 같은 곳을 지나왔는데 그 곳은 우리의 거리와 혼동될 정도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북경의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고 피곤한 우리는 얼른 잠을 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