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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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Gentle (Single)
날 짜 (Date): 1995년04월21일(금) 15시40분13초 KST
제 목(Title): [옮긴 글]  카스트라토 .. (2)




    '좀더 다양한 노래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남성을 거세해 보면 어떨까.'


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어떤 '악마'에 의해 처음 창안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예로부터 사치가 극에 이를 때면 눈 먼 인간들은 못할 것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기존의 '노래 요리'로서는 성에 차지 않았던 사람들은 소리의 지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소리를 얻어내는 데 골몰했다.

그리하여 변성기를 맞기 전 소년들을 거세한다면 소년기의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묘안을 짜내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카스트라토

라는 비극적인 존재가 탄생하게 되었다. 소년의 목소리도 아니고 여성의 목소리와도

다르면서 남성의 목소리는 더구나 아닌, 그러면서 그 모든 목소리의 특성을 조금씩

두루 갖춘, 참으로 묘한 그 별미의 목소리는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부쩍 인기가

높아졌다. 그러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무려 4000명 이상의 카스트라토가 등장

해서 전성기를 이루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카스트라토 이야기가 문헌상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루이지 덴티체가 1552년

나폴리에서 출간했던 [음악에 대한 두 개의 대화록]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그로부터 13년 후 로마 교황청 시스티네성당 합창단에 카스트라토가 등장했다는

것이 기록에 남아 있다. 그러나 역사상 그 이름이 명확하게 알려진 최초의

카스트라토는 1588년 시스테니 성가대원이 된 스파뇰레토였다. 1599년에는 다시

폴리나토와 로솔리노가 새로운 대원으로 영입되면서 시스티네 성가대에는

카스트라토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 무렵 식스투스 5세 교황은

카스트라토의 폐습을 없애도록 칙령을 내렸지만 교황청 성가대에서는 오히려

카스트라토가 늘어났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인은 교회에서 입을 다물게 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에 따라 교회에서는

여성의 노래가 금지되어 있는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소프라노 파트는 소년들이

맡았고, 알토 파트는 가성을 쓰는 남성의 팔세토가 맡았지만, 팔세토의 노래는

아무래도 자연스럽지가 못했다. 그러자니 극히 자연스럽게 카스트라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일 당시 교회 성가대에 여성 등장이 허용되었다면

카스트라토의 잔인한 역사는 싹트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교회 성가대원으로

터를 잡은 카스트라토는 차츰 일반인들의 관심도 끌게 되었다. 17세기에 접어

들면서는 이탈리아에 '오페라'라는 새로운 음악 양식이 대두되면서 페리의

[에우리티체],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어] 등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은 카스트라토

차지가 되었다.



   카스트라토는 소프라노와 알토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카스트라토가 오페라에서

여성의 역을 맡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카스트라토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그들은 남자 주인공 역마저 휩쓸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카스트라토를 구할 수 없었던 지역에서는 오페라를 공연할 때 남자

주인공 역을 남장한 여성이 맡게 되는 일도 허다해졌다. 근래에도 [박쥐] 라든가

[피가로의 결혼] 중 케루비노 역, 헨델의 [크세르크세스(세르세)] 중 크세르크세스

역 등을 남장한 소프라노가 맡는 것도 모두 18세기적인 전통의 잔재다. 궁중의

내시건 카스트라토건 자의로 거세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더군다나 카스트라토는

변성기가 닥치기 훨씬 전인 8세 전후에 수술이 행하여졌으므로 자의에 의해 그 길을

택한 소년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소년들이 수술의 대상이었을까. 고아원의 소년과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간혹 소년 성가대원도 수술을 받도록 권유받는 일이 있었다.

어렸을 때 빈 궁정예배당 성가대원이었던 하이든은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하마터면 카스트라토가 될 뻔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농민의 아들이 거세수술을 받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이 부모의 동의를 얻는다.

당시 농민들의 생활은 어려웠으므로 자식이 편하게 지낼 수 있다면 그런 수술

쯤이야 무슨 대수냐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식구 한 사람을

줄인다는 것도 궁색한 살림에는 크게 도움이 되는 유혹의 요인이었다.



  [계속]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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