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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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Gentle (Single)
날 짜 (Date): 1995년01월26일(목) 15시19분25초 KST
제 목(Title): 정명훈씨의 내한공연을 직접 보(듣)고




  이글은 천리안의 Music 동호회의 김호섭님의 글을 퍼온 것입니다.

  정명훈씨의 내한 공연을 직접 보(듣)고 그날 저녁에 쓰신 글입니다.

  물론, 개인적인 주관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이분은 동호회 내에서도

  손꼽히는 음악 애호가입니다.

  조금 긴 글이어서 몇개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정명훈 내한공연의 연주평과.. 지휘자로서의 정명훈.. 그리고, 그날 공연된

  연주곡의 설명.. 등에대한 글입니다..

  그냥 부담없이 읽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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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명훈, 그의 노래는 끝나지 않았다.?

         아니다. 그의 노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다소의 걱정.

  정 명훈은 귀국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고 KBS 교향악단은 정기 연주회를

  치른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단원 개인 소코어로 연습할 시간이

  얼마나 됐겠으며 함께 오늘의 레퍼토리를 연습할 시간이 얼마나 있었

  겠는가. 그래 그런것쯤 감수하고 들어야지 그래도 오랜만에 정 명훈의

  지휘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라는 스스로의 다짐을 안고 예술의 전당

  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것은 한낱 지나친 기우에 불과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은 감동의 여운을 가라 앉히기에는 스스로의 감정

  을 추수리는 것이 이렇게 힘들때도 있구나 싶을 정도였다. 왜 였을까?


  정 명훈이 프랑스 바스띠유  오페라단에서 강제 축출 당하고 나서 들

  끓던 여론이 잠들무렵 고국 방문 연주회를 한다는 뉴스는 내겐 연말의

  가장 큰 반가움중 하나였다. 나의 그에 대한 연모(이것은 단순한 그의

  음악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고 그의 음악생활 전반에 걸친 연모이다.)

  는 그가 프랑스를 떠날때 극에 달해 언제나 그의 연주를 직접 한번 보

  나하고 고대 하고 있던터에 의외로 일찍 이루어져서 그 설레임은 형언

  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내가 좋아하는 몇 않되는 국내 연주자중 하필이

  면 한가족에 두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샘이 나게 만들기도 하지

  만 그래도 좋은건 좋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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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여러번 들어 보아서 귀에도

  익숙한 곡인데 멘델스존이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접하

  면서 느낀것을 재기 발랄하고 힘차게 표현한 멘델스존다운 음악이다.

  일악장에서의 도입부에서 시작하여 클라이막스에 올라갈때 까지 정 명

  훈의 지휘봉은 무아의 그것이었다. 리허설을 적게 했을 것이라는 추측

  을 뒤엎고 대체로 깔끔한 연주를 들려주어서 2부에 있을 로시니가 다

  소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2악장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훌륭하게 소화했으며 한국에서는 제일가

  는 관현악단 답게 통일된 조화를 들려주었다. 정 명훈의 템포와 강약조

  절은 상식적인 선에서 요구되었으며 그것을 귀로 확인하는 것은 긴장

  되지 않는 즐거움이었다.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멘델스존이어서 좋았다.

  3악장에서 관악기가 다소 흔들리는 조짐을 보였는데 타액이 많이 고인

  듯한 소리가 약간 탁하게 들렸다. 우리나라 관현악단이 관 파트가 약하

  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두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오늘도 불안

  한 연주를 확인하고 나니 그런 설이 사실인듯 싶다. 그렇지만 대체로

  피아노나 피아니시모에서 불안함이 느껴질뿐 포르테에서는 힘차고 자

  신있는 음색으로 하모니를 이루었다.

  4악장의 악상표시는 보기 힘든 살타렐로 프레스토(Saltarello Presto)

  로 되어 있는데 도약적으로 빠르게 정도로 보면 될것같다. 멘델스존

  의 음악중 박력이 넘치는 몇 않되는 레퍼토리중 하나다. 정 명훈의

  휘몰아치기 지휘는 절정에 이르러 자제되지 못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머리와 왼쪽손의 흔들림은 그만의  독특한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요소

  인데 유감없이 내뿜는 그의 무자아 모습은 일종의 경외감까지 느끼게

  한다. 정열은 있으되 경박하지 않다. 모션은 크지만 세세하다.



  그러나 더 놀랄 일은 2부에서 있었다.

  로시니의 스타바트 마테르(Stabat Mater)는 실제 연주회에서 만나보기

  힘든 레퍼토리다. 한시간이 넘는 대곡 인데다가 혼성 4부 합창에 남녀

  독창자도 4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대로 연주를 하려면 충분한 연습량

  이 필수요소다. 그러나 연습량이 절대부족이 틀림없을 KBS 교향악단과

  정 명훈은 그러한 나의 기우를 대부분 없애주었다.

  스타바트 마테르(성모애상)은 페르골레지(Pergolesi.G.B 1710 -1736)의

  작품을 가장 많이 들어 보았지만 그외에 드보르작의 작품도

  들어보았다. '성모애상'은 보통 로시니의 작품을 포함하여 이 세작품이

  유명한데 그외에 조스캥 데프레(Josquin Desprez 1440-1521)등의 작품

  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페르골레지와 로시니의 작품을 쳐주지만 이

  견이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로시니의 성모애상은 우여곡절이 많은 작품이다. 76세의 삶을 살았던

  로시니는 40대가 될 때쯤부터  갑자기 왕성하던 창작활동이 급격히 줄

  어든다.  이후로 죽을때까지 약간의 종교곡과 칸타타,몇개의 관현악곡

  외에 몇몇 기악작품을  남겼을 뿐이다. 그리고 이 성모애상은 그러한

  그의 후기에 작곡된 몇 않되는 작품중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그의

  전작품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기도 하다.

  이 작품이 작곡되기까지의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1831년 로시니는

  스페인을 여행하는데 그곳에서 부호이자 애호가인 돈 베릴라에게 작품

  을 위촉받았다. 그래서 성모애상을 작곡하게 되었는데 이듬해 지병인

  허리 신경통이 악화되면서 더이상 작업을 진행 시킬 수 없었다.

  그러나 작곡료를 이미 지불한 돈 바렐라는 계속 독촉을 하기로 로시니

  는 절반만 작곡한채 나머지는 친구인 지오바니 타돌리니에게 부탁하였

  다. 그래서 결국 이 작품은 친구의 후반부 작곡으로 완성되어 위촉자에

  게 넘겨졌다. 그리고  이듬해 마드리드에서 초연되었다. 그러나 8년 뒤

  인 1841년에 로시니는 친구인  타돌리니가 사망하자 로시니는 그 뒷부

  분을 폐기하고 자신이 직접 나머지 부분을 써서 곡을 완성하였다.

  처음 작곡에 착수하고 최종완성까지 10년이 걸린 셈이다. 이 작품은

  1842년 파리에서 다시한번 초연 되었고 선풍적인 호평을 받았다.



  [계속]

                나의 시작속에 나의 끝이..

                    Gen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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