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blrose (박 종 욱) 날 짜 (Date): 1994년03월22일(화) 01시55분46초 KST 제 목(Title): [신희강] 말러 4번 음반 비교 분석 제목 : 말러 교향곡 4번 - 음반분석 #702/878 보낸이:신희강 (sulzbach) 05/12 02:53 조회:189 1/11 말러 교향곡 4번은 말러의 작품 가운데에 가장 밝은면을 가지고 있 는 곡이다. 말러의 1번이 우주에 대한 동경, 2번이 죽음과 그부활, 3번이 자연에 대한 애착을 노래했다면, 4번은 천상에서의 기쁨을 노 래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말러의 특유의 염세적 분위기가 풍기는 다른 곡들과는 다른 인상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말러의 교향곡중에서 가 장 작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말러의 염세주의적 색채를 가져오는 관악기군을 악기편성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이 눈 에 띈다. 즉 말러는 4번 교향곡에서 트롬본과 튜바등을 제외하고 있 는데 따라서 아주 민감함이나 긴장감 없이도 말러를 접할 수 있다. 또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가 이어지는 곡이라, 어떻게 보면 말러를 처 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들어보라고 추천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말러는 4악장에서 역시 그의 교향곡의 특징인 교향곡 속의 성악 삽 입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합창은 없으며 그전까지의 교향곡에서 의 심각했던 독창자의 노래들과는 달리 독창자는 위대한 환희에 대한 찬가를 부르고 있다. 이 곡 역시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따온 것으로, 이곡이 그가 그 곡으로부터 시와 주제를 사용했던 곡중에 마 지막 곡이 된다. 아바도와 빈필 (DGG)의 연주는 이 곡이 가지는 밝은 면을 가장 잘 살린 연주이다. 아주 투명하고 맑게 연주를 하는 점에 맘에 든다. 78 년 연주니 15년 정도 전의 연주인데, 디지탈은 아니지만 아주 맑은 음질을 자랑하고 있고 연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치밀하다. 빈필의 현소 리가 인상적인데, 4악장에서는 타악기군과 잘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 도 눈에 띈다. 그러나 특히 음의 흐름에 대한 속도 조절은 일품이며, 4악장의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의 독창도 좋다. 젊은 아바도 시대의 대 표적인 명반으로, 디지탈 시대의 어떤 음반도 아직까지는 이 연주를 (심지어는 음질마저) 능가하지 못한다.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관현악단 (EMI)연주도 아직까지 빛을 잃지 않는 명연이다. 61년 연주로 비교적 오래된 연주이지만 깊은 뼈대를 가지고 웅혼하게 흘러나가는 클렘페러의 연주는 가히 일품이다. 클렘페러는 매우 유연하면서도 스케일이 큰 연주를 한다. 특히 4악장 에서는 전성기의 슈바르츠코프의 독창을 들을 수 있는데, 특히 독일 어를 들을 줄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시적인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 다. 마치, 감정을 자연스럽게 터뜨리는 듯한 창법은 지금의 어느 누구 에서부터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말러 4번 특유의 밝은 이미지 와는 거리가 있는 연주이고, 슈바르츠코프의 독창도 사람에 따라서 는 ( 특히 독일어를 모를 경우에) 피곤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만 은 부인할 수 없다. 셸은 아주 재치 있고 무게 있는 말러 연주를 하는 점이 매력적이다. 클리블랜드 관현악단 (CBS)을 이끌고 아주 일사불란하게 연주해 나 가고 있는데, 현악기가 주도하는 악기군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비교적 말러의 밝은면을 강조하고 있다. 소프라노 주디스 라스킨의 독창도 좋은데, 힘있으면서도 맑은 연주를 선호하는 사람한테는 앞의 두 연주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은 (DGG) 역시 감탄사가 튀어 나오게 하는 카랴얀 특유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연주이다. 그의 얼마 안되는 말러 교향곡 연주중에는 가장 떨어지는 연주로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정치하게 말 러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일사불란함속에 그려지는 투명함은 말러 연주의 한 규범이라고도 볼 수 있다. 독창엔 에디트 마티스를 기용하 고 있는데, 비교적 좋은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발터는 뉴욕 필과의 정규 스튜디오 녹음 (CBS) , 세가지의 빈필과의 연주를 남기고 있다. 뉴욕필과의 연주는 발터 특유의 따뜻함과 낭만 성이 돋보이지만, 독창자 (데지 할반)에 문제가 있고 악단의 연주 도 그다지 정교하지 못한게 아쉽다. 4번 연주는 말러의 큰 편성의 다 른 교향곡에 비해 그다지 정교함을 요하지는 않지만, 뉴욕 필의 연주 는 빈 필이나 베를린 필과 비교할 때 적어도 말러 연주에 관한한 그 수준이 떨어지는 것만은 분명하다. 빈필에서는 제프리드 (Columbia), 귀덴 (DGG), 슈바르츠코프 (Music & Art -폐반 되었음)를 각각 기용한 연주인데, 발터 특유의 낭만성이 빈필의 기량과 결합하여 훌륭한 연주 를 한다. 특히 슈바르츠코프를 기용한 연주는 발터의 빈필 고별연주로, 슈바르츠코프의 독창은 여기서 오히려 클렘페러의 연주보다 더 빛난다. 말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발터의 연주이니 만큼 그 해석력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나, 현대적 감각이나 말러 연주의 필수적 요소인 음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땐 앞의 것들을 뛰어 넘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멩겔베르크와 콘서트헤보 (Philps)의 연주도 말러 연주의 전설적인 명연 가운데 하나이다. 루바토가 아주 심한 연주로 아주 낭만적인 해 석을 하고 있다. 특히 콘서트헤보우의 특유에 따듯한 투명함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제공한다. 1939년 연주에 비해서는 비교적 음질이 괜찮으나, 음질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고, 현대적인 세련미가 부족한 것 역시 아쉽다. 마젤과 빈필 (CBS)의 연주는 마젤의 말러 연주중 가장 훌륭한 연주를 해내고 있다. 매우 투명하면서도 정치한 것이 아름답다.지나친 채색 이 경우에 따라서는 거부감을 주기도 하지만, 맑은 음질과 함께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다. 특히 케슬린 배틀의 독창은 슈바르츠코프와 같 은 시적인 감각은 없지만 천상의 노래라는 이 음악의 특징에 가장 부합되는 훌륭한 가창이다. 솔티는 스탈만을 독창자로 기용하여 콘서트헤보우와 키리 테 카나를 독창자로 하여 시카고 심퍼니와 각 연주하고 있다 (각 Decca) 전자의 연주는 솔티 특유의 역동감이 상실된 것이 아쉽다. 콘서트헤 보우의 말러 연주 답게 투명한 것이 좋지만, 사람을 빠지게 하는 힘 이 부족한 것이 아쉽다. 독창부분도 큰 매력이 없다. 시카고 심퍼니와 의 연주는 비교적 전 연주보다 훨씬 성숙된 연주이다. 아주 힘차고 자 신있는 연주이지만, 이곡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함을 표현해 내기 에는 전반적인 접근방법이 너무 무겁다는 점이 불만이다. 키리 테 카 나와의 독창은 비교적 훌륭하다. 남서독일방송교향악단을 기용한 길렌의 연주 (Intercord)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주 곡을 잘 파악한 훌륭한 연주이다. 지휘자 가 원래 작곡가 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연주의 구성이 짜임새 있 고 탄탄하다. 독창을 맡은 휘틀리스니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나, 만족할 만한 연주를 하고 있다. 번스타인의 연주는 뉴욕필과의 연주 (CBS)나 콘서트헤보우와의 연 주(DGG)모두 그의 말러 연주중에서는 그다지 뛰어난 것이 못된다. 물론 소박하고 투명한 말러의 연주라는 점은 좋으나, 둘다 너무 심각하게 연주를 한 점이 불만이다. 이 곡은 자연스러운 접근방식이 더 호감이 가기 때문이다. 콘서트헤보우와의 연주에 보이 소프라노를 기용한 것은 색다른 맛은 있지만 좀 치졸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이팅크는 콘서트헤보우와 두번의 연주를 하고 있는데 (모두 Philips), 모두 온화한 말러의 연주라는 점이 호감이 가나, 그다지 특징이 없다는 점이 불만이다. 연주 자체는 음질까지 포함하여 신녹 음이 더 명확하고 좋으나, 독창은 처음 연주에 기용된 아멜링이 후연 주인 알랙산더 보다 뛰어나다. 아멜링의 노래를 들어보면 가장 시적 이고 풍부한 노래를 하고 있는점이 맘에 든다. 인발의 연주는 (Denon)은 그다지 짜임새 있는 연주는 아니다. 아주 모호하며 밝음과는 거리가 먼 연주이다. 음질은 뛰어나나 연주의 구 성이 아주 엉성하다. 말러의 천상에 대한 찬가를 노래하는 곡의 본 질과는 궤를 벗어나는 문제이다. 텐슈테트와 런던 필의 연주(EMI)도 그다지 매력이 없다. 텐슈테트 특유의 심각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이 연주자체를 너무 무겁게 처리 하여 곡에 대한 매력을 감소시키고 있다. 루치아 폽도 찬양과는 거리 가 먼 연주를 한것이 불만족스럽다. 오자와와 보스턴 심포니 (Philps)의 연주는 아주 무미건조한 무기력 한 연주이다. 이 곡을 보다 쉽게 접근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며, 구 성은 탄탄하나 색채감이 부족하고 말러 특유의 삽살함이 부족하다. 메타와 이스라엘 필 (Decca)의 연주도 지나친 극적인 힘이 연주의 매력을 감소시킨다. 마치 오페라 연주처럼 극적인 부분만을 강조한 것이 곡의 본질과는 괴리가 있다. 베이눔과 콘서트헤보우 (Decca)의 연주는 말고 투명함이 빛나는 편 안한 연주이다. 그러나, 현대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멀고 연주가 너 무 밋밋하다는 점이 아쉽다. 쿠벨릭과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DGG)의 연주 역시 연주 자체의 투 명성과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나, 현대적인 감각과 말러적 필링이 부족한 연주이다. 깁슨의 스코틀랜드 국립교향악단 (Chandos)는 너무 직선적인 연주를 하고 있다는 점이 불만스럽다. 다만 마가렛 마샬의 독창은 아주 훌 륭하다. 같은 독창자를 기용한 장 클로드 카자드쉬 (Forlane) 는 악단 (릴 국립교향악단)의 기량이 너무 떨어진다. 시노폴리와 필하모니아 교향악단 (DGG)의 연주는 가장 최근의 연주이 나, 그다지 특징이 없다. 악기군의 조화로움이 없어 앙상블이 엉성 하고, 환희의 찬가와는 거리가 먼 연주를 한다. 베르티니와 북서독일방송교향악단 (EMI)의 연주는 매우 쉽게 풀어 나가는 말러 연주라는 점에서 호감이 가나, 특징이 없는 말러 연주이 다. 그 밖에 아바도와 메타의 스승인 스봐로프스키와 체코 필 (Supraphon), 그리고 매리너와 슈트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Capriccio)의 연주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