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blrose (박 종 욱) 날 짜 (Date): 1994년03월14일(월) 01시39분53초 KST 제 목(Title): [신희강] 말러 2번 음반 비교 분석 제목 :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 음반분석 #628/878 보낸이:신희강 (sulzbach) 01/21 22:52 조회:243 1/10 말러는 그의 교향곡 2번 부터 4번까지를 <어린이의 이상한 뿔피리 교향곡>의 3연작으로 작곡하고 있다. 그중의 첫 곡이 교향곡 2번 <부활>로서 <Des Kn aben Wunderhorn>에 나오는 주제를 담고 있다. 사실 그의 교향곡 2번은 1번 교향곡 보다 그 작곡의 착수시기가 더 빨랐지만 곡의 착수에서 완성까지 6년 이라는 긴 세월이 걸리는 바람에 그의 <거인> 교향곡에 1번의 자리를 물려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작곡에 걸렸던 시간이 말해주는 것 처럼 이 곡은 그 의 교향곡 중 가장 심오함과 웅대함이 조화된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 곡에 서 그가 고민했던 것들을 묻고 대답하는 방식으로 곡을 전개하고 있다. 그는 1악장의 부제를 <Totenfeier> 즉 장송곡이라고 붙이고 있다. 장송곡을 시작으 로 말러는 이 곡에서 인간은 왜 살고 죽는가 그리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묻고 있으며, 4악장의 <Urlicht> 즉 생명의 빛을 노래하는 알토의 독창을 통해서 마지막 악장에서 해답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 해답은 일원 적이고 즉흥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 해답은 곡을 듣는 사람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이 곡은 그의 삶의 대한 애착과 영혼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고 있 는데 그의 곡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염색주의적이고 비관주의적인 색채와 달 리 이곡은 보다 투쟁적이며 격정적이까지 하다는 것이 특징일 것이다. 말러 교 향곡 중에서도 대표적인 곡일 뿐만 아니라 교향곡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도 하 나의 획을 긋는 중요한 작품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 곡도 많은 지휘자들이 엄청난 힘을 기울여 연주한 만큼 좋은 연주도 많다. 그러나, 카라얀이나 쥴리니 처럼 이곡을 도전조차 않은 지휘자도 많은 것을 보 면 이 곡의 연주도 지휘자들에겐 하나의 벽으로 여겨 지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살펴 볼 연주는 지난 1번과 마찬가지로 발터의 연주로서 아직까지 빛이 바래지 않은 명연이다. 놀라운 낭만성과 도취감은 눈물이 날 정도이나, 크게 낭만적이지 않은 이 곡을 지나칠 정도로 병적인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재구성 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말러관에 부합하는 연주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연주의 아름다움이라는 측면에서 따를 연주가 없을 것이다. 다음으론 아바도의 연주를 들 수 있다. 70년대 중반 녹음한 아바도의 명연 을 들 수 있다. 아바도와 시카고 교향악단이 만들어낸 최고의 명연으로 젊은 아바도의 감각이 돋 보이는 연주이다. 시종일관 싱싱하면서도 엄청난 집중력 이 이 곡의 본질을 꿰뚫은 명연이 아닌가 한다. 80년대 들어와 엄청난 말러 녹음이 행하여 졌지만 그의 연주가 여전히 빛나고 있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특히 시카고의 금관주자들의 기량은 발군으로 후에 그 교향악단의 지휘자인 솔티와의 녹음에서도 이루어내지 못한 명연을 여기서 펼치고 있다. 86년에 녹음된 래틀과 버밍햄 시립 교향악단의 연주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연주이다. 그 후 그라모폰 대상과 녹음 상을 받았으니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 만 래틀의 연주는 아바도의 연주보다 좀 더 직선주의 적이고 도전적이다. 아 바도가 집중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간결하게 표현해 내었다면 래틀은 가늘면 서도 명확한 연주이다. 영국의 지휘자들에게 나타나기 쉬운 병폐이기도 한 모 호함이 이 연주는 없다. 래틀은 하고 싶은 말을 돌려서 하는 것이 아니라 요점 을 잡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젊고 패기 있는 연주다. 말러는 그의 교향곡 2 번을 연주하면서 1악장 이후에 인터미션을 두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것은 1 악장인 장송 교향곡을 연주한 후 하나의 사색시간을 갖기 위함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래틀의 이 CD는 1악장만 1장에 23분 52초로 담겨있고 나머지 악장은 2번 CD에 담겨 있다. 그 다음에 보아야 할 것은 번스타인의 연주다. 번스타인은 CBS사에서 런던 심포니와 한번 그리고 그라모폰사에서 뉴욕필과의 연주가 있다. 후자의 연주 가 좀 더 노련하고 또 음질도 좋고 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번스타인의 연주는 생각보다 따뜻하게 흐르고 있다. 가능한 과장을 억제하고 템포도 적정 하게 설정하고 있다. 뉴욕필과의 연주는 라이브 레코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는 좀 느린 연주가 아닌가 하지만 번스타인이 말러에게 바쳤던 애정이 스며들 어 있다. 특히 4악장과 5악장의 조용한 연주가 인상적으로 노년의 번스타인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바바라 헨드릭스와 크리스타 루드비히의 절창 도 돋보이는 연주이다. 길버트 카플란은 아마츄어 지휘자이지만 일생동안 말러 2번 만을 연주한 연 주가이다. 런던 교향악단과의 연주로 MCA사에서 발매되었는데 이 지휘자의 이 곡에 대한 애정이 스며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들어보면 이 지휘자가 아마 츄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곡의 강약 대비 처리에서는 미숙함 마저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해석법은 신선하고 충격적일 정도여서 이 곡 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권하고 싶은 연주이다. 솔티는 이 곡을 런던 교향악단과 60년대에 시카고 교향악과 80년대에 1번씩 녹음했다. 전자의 연주는 지휘자와 악단이 손발이 안맞는 부분도 보이고 좀 모호해서 비판을 많이 받았던 연주로 솔티의 말러 연주중에서도 졸작으로 꼽 히는 만큼 추천의 대상이 되기는 힘들다. 그러나 후자의 연주는 음질의 향상 뿐만 아니라 좀 더 과감한 접근과 스케일의 확대로서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5악장의 처음 부분과 마지막 부분의 파괴력은 거의 압권이다. 솔티는 이곡을 바그너의 발퀴레와의 유사성에 접근하여 보다 과감하고 무게있는 연주를 하고 있다. 그러나 너무 과감하게 나아간 나머지 한스 폰 뷜로가 중시했던 이 곡의 하이든적 요소를 무시한 점이 좀 귀에 거슬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독창자 (부캐넌과 자카이)의 수준이 떨어져서 불만이다. 지휘자와 악단의 앙상블도 오히려 아바도와의 협연 보다 못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과장 해서 표현하자면 시카고의 갱 냄새가 물씬 풍기는 연주이다. 말러 연주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주빈 메타는 이곡에서 만큼은 빈 필 의 좋은 반주에 마추어 명연을 뿜어 내고 있다. 특히 이 지휘자의 현대감각과 표현력이 인상적인데, 큰 스케일과 더불어 빈 필 현 주자들의 치밀한 앙상블 이 돋보인다. 또한 독창자인 코투르바스와 루드비히 그리고 빈 가극장 합창단 의 합창은 독창진과 합창단의 진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땐 이 곡의 연주중 가 장 인상적이다. 루드비히도 후에 한 번스타인의 협연 때 보다 더 싱싱하고 깊 이 있는 소리를 전달하고 있다. 다만 이 연주는 데카사에서 아직 CD로 재출반 되지 않았지만, 시중에선 클라식이라는 해적 레이블 시리즈 속에서 싼 값으로 구할 수 있다. 일본의 런던 레이블에선 출반된 바 있다. 아멜링과 하이니스를 독창자로 기용한 하이팅크의 연주는 무엇 보다 독창 자들의 깊은 목소리들이 인상적이다. 특히 알토 하이니스는 클렘페러반의 페 리어를 제외하고는 가장 감동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한편 하이팅크는 그의 무미건조 했던 말러 연주와 달리 좀 더 활기 있고 선이 분명한 연주를 하고 있다. 그의 말러 연주중에선 비교적 성공적인 연주이나, 듣는 사람을 휘어잡지 못하는 점은 1번과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보면 이 곡의 연주중에서 가장 모호하면서도 이 곡을 처음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연주가 아닌가 한다. 클렘페러는 두 가지 연주가 나와있다. 하나는 EMI사에서 나온 것으로 슈바르 쯔코프와 뢰셀-마드얀을 독창자로 기용하여 필하모니아 관현악단과 협연한 연 주이고, 다를 하나는 콘서트헤보우를 지휘하고 조 빈센트와 페리어를 독창자 로 한 데카사의 연주가 있다. 둘다 다 CD 1장으로 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 는데, 양자 다 모두 클렘페러 특유의 스케일과 묵직함이 빛나는 연주다. 특히 후자에서 보여준 페리어의 절창은 가슴이 찡할 정도의 감동을 준다. 그녀가 발터와 한 대지의 노래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어느 곡이던 페리어의 음성을 통하게 되면 감동 그 자체로 변하는 것 같다. 4악장의 원광에서 들리는 "나는 신에게서 나와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부분의 절창은 대지의 노래를 종료시키는 "영원히, 영원히"와 함께 이 곡 해석의 기념비로 영원히 존재 할 것이다. 한편 전자는 슈바르츠코프의 독창이 인상적일뿐만 아니라 후자보다 좋은 음질과 악 단과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인상적이다. 인발과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연주는 데논 사의 놀라운 음 포착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무언가 핵심이 결여된 공허한 연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 다. 또 곡의 해석도 가끔 우왕좌왕하고, 조금 불분명 한 연주로 그다지 추천 할 만 하지는 않다. 플로우라이트와 파스벤더를 독창자로 기용한 시노폴리와 필하모니아의 연주는 너무 극적인 효과를 살린다는 것이 오히려 좀 거부감을 일으키는 연주로, 그가 5번 교향곡의 연주에서 보여 주었던 신선함을 이 곡의 연주에선 찾아 볼 수 없 다. 비인 필을 연주한 마젤은 전체적으로 구성이 탄탄한 연주를 하나, 집중력이 모 자르고 너무 잔 장식을 많이 한 것이 불만이다. 오자와도 보스턴교향악단의 훌륭한 협연하에 좋은 연주를 하고 있으나, 1번 연 주에서 보여 주었던 신선한 감동은 찾을 수 없는 대신 그의 연주의 비판의 대 상인 단순함을 이 연주에서 느낄 수 있다. 다만 이곡을 매우 쉽고 분명하게 접근하였다는 점은 높게 살만하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지휘한 쿠벨릭은 큰 불만점은 없으나 그다지 인상적 이지 않은 연주를 하고 있다. 한편 체코 필을 지휘한 노이만의 연주는 너무 선이 가늘고 음의 포착이 불분 명하여 그의 말러 연주중에서 비교적 떨어지는 연주라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텔락에서 나온 슬래트킨의 연주는 미국적 감각의 신선한 말러관 이 돋보이나, 좀 더 깊고 성숙한 표현이 아쉬우며, 독창자로 기용된 배틀의 독창이 인상적이긴하나 좀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좋은 연주가 많 은데 굳이 이 연주를 택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