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sbison (M.BISON)
날 짜 (Date): 1993년09월02일(목) 18시42분09초 KS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모짜르트 6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1756-1791)

....................................................................

 그는 비엔나로 갔다. 그는 이제 스물 다섯의 성숙한 천재였고,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염증을 갖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위어 갔고 눈에선 웃음기가 사라

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그의 신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

젊었다. 그는 대중적인 음악을ㄹ 만들었다. 모든 좌절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인정받아야만 했다.

 그때 그의 그런 좌절과 신념을 같이 나누려 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내 사랑의

이 마지막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띄웠다. "알로지아 베버

는 아닙니다. 그녀는 이태리로 떠났읍니다. 그녀의 자매들 중 한사람은 물론 아닙

아닐거라고요? 아버지, 아닙니다. 그녀는 알로지아의 동생이랍니다. 놀라지 마십

시오. 그녀는 둘째인 콘스탄쩨입니다." 알로지아와는 달리 그녀는 아름답지는 않

았다. 그러나 그녀는 꽤뚫어보는 듯한 두 눈, 늘씬한 자태, 그리고 착하고 건실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음악을 잘 몰랐으나, 모짜르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가족들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도피를 했다. 그리고 모짜르트는 마치 그 

순간에서 영감을 받은 듯 '세라글리오로부터의 도피'라는 제목의 오페라를 썼다.

 그 후 그가 원하던 것들이 빠르게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의 인정, 숭앙,

명상 따위들이었다. 대중은 이 "규방의 오페라"에 열광하였다. "그들은 그야말로

발광하는 듯합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썼다. 그것은 정말로 발광이었다.

그가 열렬항 갈채는 받았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저작권법이 없었다. 극장의 주인이 모든 수입을 가지는 것이었다. 작곡가는 아주 

상업적이지 못한 이상은 말년에 남는 것이라곤 명예와 배고픔뿐이었다. 세상은

신을 숭배했지만 그 신을 먹여 살리려 하지는 않았다. 모짜르트는 그 새로운 독일

오페라에서의 굶주리는 아폴로 신과 같은 운명이었다.

 그는 첫 오페라의 "성공"에 뒤이어 또 하나의 비슷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세빌라의 이발사'의 이야기에 기초한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프라하의 청중들은\

그가 결코 잊지 못할 갈채를 보내 주었다. "사람들은 춤곡으로 바뀐 나의 '피가로'

의 음악에 열광하고 있읍니다. 이곳은 온통 피가로의 이야기뿐입니다. 노래로,

휘파람으로, 악기로, 연주되는 모든것은 피가로 뿐입니다. 피가로 아닌 다른 오페라

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온통 피가로입니다."

 모짜르트도 춤을 추었으나, 즐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를 방문한

한 친구는 그가 방을 돌며 미친 듯이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것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지, 날씨는 지독히 추운데 땔감이 없다네."


...........................................................................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