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sbison (M.BISON) 날 짜 (Date): 1993년08월20일(금) 12시35분00초 KD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모짜르트 3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1756-1791) .......................................................................... 인생에서 너무 일찍 명성을 얻게 된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은 그를 더 이상 놀라운 꼬마로 보지 않고, 대중들의 격찬은 이미 사라지게 된다. 이제 모짜르트의 턱에도 수염이 자랐다. 그는 성인이 되어 훨씬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가 되었다. 그느 자신의 기적적인 천재성이 엿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오랜 시간을 힘든 공부로 보냈다. "이보게들, 확신하건대 어느 누구도 나만큼 작곡에 주의를 기울이지는 않을걸세. 내가 수차례, 그리고 열심히 연구해 보지 않은 거장의 작품이란 없네." 그래서 그는 성장하여 사람들이 얼마나 서로를 인정하지 않은가를 아는 사람이 되었다. 뛰어난 아이로서의 그의 나날들은 잊혀졌다. 스물 다섯 살에 그의 고향의 주교관에서 지휘자로 고용되고 한 달이 지나자 그는 자기의 환경이 몹시 싫어졌다. 주교는 그를 어리다고 무시했다. 주교는 모짜르트의 음악성을 믿지 않았다. 모짜르트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각하의 눈으로는 그를 믿지 않게 하기에 충분했다. 주교는 어러번 다른 곳에 가서 "진짜로 음악을 배우라"고 말했다. 모욕을 당한 모짜르트는 잘쯔부르크를 떠날 결심을 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열 다섯에 오페라를 작곡하여 세상의 갈채를 받은 그는 분명히 다시 인정을 받을 것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좀더 실리적이고 회의적이었다. 젖은 눈으로 그는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신을 믿어라, 볼프강." 그는 말했다. "사람들에 관해선 쓰라린 진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모짜르트는 맨 처음부터 환멸을 느끼도록 도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에 황제 앞에서 연주한 적이 있었던 뮌헨으로 갔다. 그때 황제는 그를 껴안고 그의 천재성에 대해 신께 감사를 드렸었다. 그러나 이제 모짜르트가 살기 위한 일자리를 얻으려 함에 황제는 냉정했다. 아마도 모짜르트가 정규교육을 몇년 받은 뒤었더라면... 그느 아우구스부르크로 갔다. 왜 누구도 이태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의 거장들을 불러 음악의 어떤 형식으로든 그와 겨뤄보게 하지 않았던가? 그가 할 수 없는 것이란 아무것도 업었다. 사람들이 원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는 마술사 보다 더 많은 선율을 그들에게 줄 수 있었다. 그에게 G 단조의 주제를 주면, 그는 수많은 다른 빠르기의 장조로 바꾸어 클라비코드로 푸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하고, 다시 주제를 바꾸어 세레나데로 연주할 것이다. 그것으로 그는 유한 인사들로부터 확실히 찬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음악 레슨으로 돈을 벌수도 있었을 것이다. 정말 그의 청회색 눈동자와 곱슬머리에 반한 많은 숙녀들이 그에게 모여 들지 않았겠는가? 그리하여 쉬는 시간에 그녀들과 함께 멋진 춤을 출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레슨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은 따로 많이 있읍니다. 나는 작곡가이며, 지휘자가 되기 위해 태어 났읍니다." 그는 신이 허여한 재능을 감히 묻어 버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부유한 백작이 그에게 어떤 제의를 해온다. 그는 모짜르트에게 뮌헴으로 와 독일 오페라를 쓸 것을 권유한다. 그것이 국립 극장을 탄생시킬지도 모른다. 모짜르트는 그러한 희망에 부풀게 된다. 그는 일 년에 네 편의 오페라를 써서 그 댓가로 수백 달러를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잠시 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그 백작은 충분한 동업자를 구하지 못하고 그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는 음악 레슨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경제적인 문제만 아니라면 그의 아우구스부르크 생활은 즐거운 편이었다. 사랑에 강한 욕망을 가진 발랄 하고 매력적인 사촌 동생이 잠시 그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만하임으로 떠날 때, 그는 많은 즐거웠던 사랑의 추억을 함께 가지고 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