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sbison (M.BISON) 날 짜 (Date): 1993년06월30일(수) 17시56분48초 KS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헨델 9 ......................................................................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 헨델은 수년 만에 카나본 백작의 고용에서 벗어났다. 런던에 새로운 오페라 좌가 문을 열었고, 헨델은 거기에 승부를 걸기로 작정했던 것이다. 헨델은 자기 오페라의 흥행에 전재산을 쏟아부었다. 그는 그 모험에 평생 동안 모아 온 오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리구 불운한 몇 계절이 지난 후 자기의 자산과 부채를 계산해 본 그는 처음의 자기 돈 오만 달러 외에 친구들에게 빌어 쓴 또 다른 오만 달러까지 날려 버렸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실패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그는 음악가로서는 훌륭했지만 장사꾼으로서는 신통치가 않았다. 그는 모든 시간을 작곡하는 데에 바쳤다. 막대한 성악곡과 기악곡을 제외한다 해도, 그는 20년 동안 매년 두 개 꼴의 오페라를 작곡했다. 이것은 그에게 사업을 돌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진지한 음악으로는 사람들에세서 충분한 돈을 거둬들일 수 없었다. "음악이 해야 할 일은 '권태'를 쫓아 버리고 현명한 사람등을 골치 아픈 사색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1722년 2월 24일자 런던저널은 말했다. 헨델의 야심은 사람들을 사색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사색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부다도, 귀족들 중의 도락적 탐미주의자들은 작곡가들간에 경쟁을 유발시키는 것을 재미있는 게임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은 이태리 음악가 보논치니를 충돌질해서 런던에 경쟁적인 오페라 좌를 열도록 부추겼던 것이다. 당시는 엉터리 시를 써대는 재주가 음악의 완상보다 고상한 것으로 생각되었고, 이 오페라들의 경쟁에 관한 풍자시들이 대중을 웃기던 때였다. 이 시시껄렁한 풍자시들 중의 하나는 헨델과 보논치니를 곡마단의 광대에 비유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두 경쟁 사업 모두 파산에 이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헨델의 경제적 실패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의 재능이 그보다 못한 재능을 지닌 자들의 가슴 속에 불러 일으킨 시기심이었다. 집요한 음모들이 런던으로부터 쏟아져 나왔다. 비방자들은 그의 "분에 넘치는 힘과 재산"으로부터 그를 끌어내리 려고 안달이었다. 그를 비방하는 기사와 팜플렛들이 그의 귀에 폭풍우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청중의 귀에는 충격을 주면서 자기 귀에만 발라 맞춘다"고 단언하며 그의 오페라를 공격했다. 그들은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헐뜯으며 그것을 "생선도 아니고 닭고기도 아닌, 이상하고 소화 안되는 혼합물"로 표현했다. 그의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는 밤이면 그들은 대중을 그의 주장에서 떼어놓기 우해 온갖 수단 - 예컨대 집회, 카드 게임, 닭싸움, "여성오락기수"따위 - 을 동원해서 고의적으로 훼방을 놓았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논평 기사에서 이렇게 즐거워했다. "모든 계층과 양성을 합심한 이 노력은 대단히 성곡적이었다." 그의 청중 수는 매우 희박해졌고, 헨델은 깊은 우울에 빠졌다. 그들은 그가 여배우와 불륜의 관계에 있으며, 오라토리오 속에 성경 귀절을 가사로 집어넣음으로써 신성을 모독했다고까지 비난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