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sbison (M.BISON) 날 짜 (Date): 1993년06월22일(화) 14시28분37초 KS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헨델 6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헨델의 명성은 헨델 자신보다 먼저 이태리에 가 있었다. 플로렌스, 로마, 나폴리, 베니스 - 그는 어디에 가든 "유명한 색슨인"으로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스칼랏티 부자와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그들과 음악적 기교에 관해서 많은 토론을 벌었다. 젊은 스칼라티는 헨델의 천재성을 무척이나 존경했다. 그리하여 헨델의 이름을 말할 때 그는 항상 성호를 그었다. 헨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음악이 "활짝 열린 하늘 아래서 꽃처럼 피어나나는" 이태리에 매혹되었다. 그는 이태리 오페라, 칸타타, 오라토리오, 그리고 바티칸의 미사곡등의 선율에 빠져 들어갔다. 그는 몇몇 작품을 이태리식으로 작곡했으며, 카톨릭 사제들의 간곡한 권유로 루터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청각뿐 시각에 있어서도 시인이었으므로 이태리 회화에도 정열적인 사랑을 품었다. 그래서 아고스티노 스테파니의 매력적인 제의에 이끌려 독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이 "영원한 봄의 나라"에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노버 오페라좌의 지휘자인 스테파니는 마테손보다도 도 괴상한 인물이었다. 그는 성직자였고 작곡가였으며,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비평가이자 외교관이었다. 또한 가수익도 했고, 종교음악 및 비종교적 음악의 지휘자이기도 했다. 그는 왕자의 고문 이었고 왕의 고해 신부였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대단치 않은 남자였지만, 그 조그만 몸에는 폭풍과 같은 즐거움이 넘쳐 흘렀고, 즐거운 만큼 현명했고, 현명한 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는 1708년과 1709년 사이의 겨울에 로마에서 헨델을 만나서, 곧 그를 자신의 보호하에 두었다. 그는 한버에 돌어올 때 헨델을 보조 지휘자로 두었다. 헨델보다 서른두살이 많았던 그는 세상 물정에 밝은 고용주었을 뿐만 아니라 헨델을 정신적 예술적으로 도왔다. 로망 롤랑의 말을 빌면, 그의 음악은 "황금기에 들어서 있는 이태리 노래의 가장 완벽한 모습이었다." 17세기 음악의 뛰어난 서정시인으로 간주되는 그는 헨델에게 최상의 서정성을 무러려 주었다. 그리고 헨델은 이 유산을 이어받아, 자신의 천재성을 통해서 이를 확장시켰다. 크리잔더가 말하듯이, "헨델은 스테파니의 발자국을 따라 걸었다. 그러나 그의 발이 더 컸다." 그러나 이 말은 단지 부분적으러만 옳다. 헨델은 누구의 발자국국도 따라 걷지 않았다. 그의 천재성은 그 자신의 발자취를 남겼다. 때때로 그가 길가에 멈추어 서서 흔히 피어 있는 꽃을 꺽어 그 향기를 즐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음악이 그의 음악에 미친 영향의 전부였다. 그는 희미한 기억을 회상하고, 그것을 보다 새롭고 풍부한 관념들 속에 엷게 뒤섞었던 것이었지 타인의 발자국을 고의적으로 추종하거나 직접적으로 표절한 것은 아니었다. 헨델은 누구 보다도 독창적인 작곡가들 중의 하나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