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sbison (노성수) 날 짜 (Date): 1993년06월03일(목) 10시46분04초 KS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요한 세바스찬 바하 1 이글은 Henry Lee Thomas 와 Dana Lee Thomas 부부가 지은 Living Biographies of Great Composers 를 최동선 교수가 완역한 "위대한 음악들" 중에서 발췌 ( ? 거의 베꼈음 ) 한 것이다. ...................................................... 요한 세바스챤 바하 바하가의 핏줄을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음악인 듯하다. 그 시조는 플룻을 부는 제분업자였다. 우리는 그의 음악적 자질 보다는 그의 밀가루의 품질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하 음악 왕조의 다른 사람들 중에서, 열 네 명은 오르가니스트였고, 열 두 명은 성가대의 선창자 또는 지휘자였으며, 한 사람은 안쉬타트의 루드비히 군터 백작의 궁정 악사였다. 아이세나흐 공작, 마이닝겐 공작, 바이마르 궁정의 악사들도 있었다. 적어도 열 명은 코랄 전주곡, 칸타타, 미사곡, 푸가, 협주곡 등의 작곡가 였다. 또한 두 명은 유명한 오보에 주자였고, 세 명은 비올라 다 감바를 연주했으며, 두 명은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였다. 실제로 몇 세대에 걸쳐 독일의 일정 지역 내의 모든 직업적 음악가는 "바하"로 알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모든 음악의 목적은 신의 찬양에 있어야 한다"고 요한 세바스챤은 믿었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나만큼 열심히 일한다면,내가 해낸 것만큼 해낼 수 있다." ( 정말 기도 안차는 말임.... 자신의 선천적인 재능을 완죤히 무시함.) 세바스챤은 열심히 일한다는 프로테스탄트의 전통속에서 교육되어 훌륭한 루터교도가 되었다. 때때로 인간의 진보를 막는 가장 커다란 장애는 인간들 스스로의 강제의 행사에 있다고 바하는 생각했다. 그는 한때 안쉬타트 교회의 오르간 주자의 자리에 있었다. 그 교회의 오르간은 훌륭했고, 그의 손끝에서 그것은 민감한 동물처럼 소리내었다. 그러나 교회의 관리자들은 그다지 정성스러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찬송가 반주 방식을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에세 불평을 늘어놓았다. "수년간 우리 오르간 주자들은 일요일의 코랄 음악을 변주없이 연주해 왔소. 그런데 당신은 변주를 고집하며 이상한 소리를 섞어넣어 모든 회중을 혼란시키고 있소." 도대채 그들의 성스러운 선율을 향해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 그는 소년합창단을 연습시키고 끈기 있게 지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항상 오르간과 함께 있었으며, 소년들과는 한 순간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당신은 앞으로 학생들을 연습시킬 것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하시오. 봉급받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면,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소." ( 굉장히 이해하기 어려운 말임. 아니면 번역이 잘못되었을 수도.) 그러나 그 논쟁은 곧 끝나게 되었다. 교회는 그 "게으른" 오르간 주자를 해고시켰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