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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T ] in KIDS
글 쓴 이(By): Charles ()
날 짜 (Date): 1998년04월02일(목) 10시37분56초 ROK
제 목(Title): IMF한파에 해외교민도 휘청 


IMF한파에 해외교민도 휘청 
교민상대 업체 최악의 불황,역이민도 

                                (사진/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긴 시드니의
                                한인 상가지역. 유학생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감당하지 못해 보따리를 싸고 있다.) 

                                경제위기의 여파가 해외동포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언어와 문화차이를 어렵게 극복하며
                                살아온 해외동포들에게도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경제적 여유가 사라지면서
                                동포사회가 각박해지기도 한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환율을 보며 환차익을 얻었다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송금액이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숨짓는 이도 있다. 
위기를
어떻게든 넘기고 고국의 경제에 보탬이 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펼쳐지기도 한다. 
세계
어디에 있건 고국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5개국 해외동포들의 고단한 삶을 
담았다.
편집자 

'오스트레일리아' 

약 3만명 정도로 추정되는 시드니의 한인들은 지난 몇년간 김영삼 정부의 이른바
‘세계화’ 정책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였다. 매일같이 수백명씩 공항에 
내리는 한국
단체관광객과 매년 7천∼8천명 선에 이르는 유학생들은 한인경제의 대동맥과 같은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들어가면서 지겨울 정도로 밀려들던 
단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유학생들은
하나둘씩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일부 유학생 부랑아로 전락 

교민경제의 이상호황을 주도하던 두 지주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관광객의 급감은 관광 관련업계에 종사하는 수천명의 한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이어진다. 특히 여행사와 대형 음식점, 면세점 등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
현재 관광 관련업계에서 배출된 수천명의 실업자들은 한인들의 전통적인 
경제기반인 청소
용역업계로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한인 청소용역업체간의 과당경쟁으로 
이어져
교민경제의 기반을 갉아먹고 있다. 청소업계에 종사하는 교민 ㅊ씨는 “용역비 
덤핑 같은
제살 깎아먹기식의 경쟁뿐 아니라 계약관련 사기도 빈발해 업계 분위기가 
험악하다”고
전한다. 

유학생들도 IMF사태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집단 중 하나다. 1년 정도의 단기 어학
연수생들이 많았던 시드니지만 지금까지 절반 정도가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마저도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집없는 부랑아처럼 남의 숙소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유학생들도 상당수라는 소문이 동포사회에 파다하다. 

유학생들이 많이 사는 스트라스필드 거리에서 만난 26살된 ㄱ씨는 돌아갈 수도 
남을 수도
없는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한다. “한국에서 오는 송금액이 절반으로 준 지 
여러달
됐지만 쉽게 귀국 결정을 할 수 없다. 부모님은 빨리 들어오라고 성화지만 한국에 
가봤자
취직자리 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일 텐데…. 솔직히 두려움이 앞선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공부에 전념하자니 경제적 사정이 허락지 않는다.” ㄱ씨는 일단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볼 생각이다. 

'미국' 

국내의 IMF 한파가 미주 동포사회에 미친 영향은 매우 다양하다. 친척과 친지들의 
부도와
해고 소식에 침울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모로부터 학비와 생활비 송금이 
끊긴 친척
유학생을 기약없이 데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환률에 웃고울고… 이민사기 기승 

때문에 동포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부분은 환율. 그래서 상당수의 교포 일간지들이 
환율을
1면에 싣는다. 동포들이 이렇게 환율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몇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아직까지 국내에 재산을 갖고 있는 동포가 많기 때문이다. 이자가 높다는 이유 
때문에
힘들게 모은 재산을 국내은행에 저축했던 동포들도 있고, 부동산이나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채 이민을 온 동포들도 상당수다. 이들은 매일 환율의 등락을 바라보며 
자신의 재산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계산한다. 둘째는 지난해 말 1달러당 환율이 2천원대까지 
오를 때
달러를 원화로 바꿔 예금을 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일 환율을 보며 
환차익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하며 미소짓는다. 

반면 달러돕기 운동을 벌이느라 지난해 말부터 예금고가 줄어들기 시작한 
한인타운의
은행들은 속수무책이다. 구제금융 뒤 은행예금의 30% 이상이 본국으로 빠져나간 
것으로
알려진다. 한 교포은행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따지고 보면 본국의 달러돕기 
운동에
동참하느라 송금 수수료 면제라는 혜택을 베풀면서 줄어드는 예금고를 바라본 
꼴”이라며
“환율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국내의 고이자를 보고 송금하는 사람이 
여전하다”라며
한숨짓는다. 

셋째는 환율 변동에 따라 원가계산이 바뀌는 한인타운 업소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 수입한 식품을 취급하는 대규모 한국 식품점의 경우, 처음에는 급변하는 
환율을
바라보며 환란 이전에 쌓아놓은 수십만달러어치의 재고와 새로 들어오는 물품의 
환율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가 동포들로부터 “환율을 적용시키지 않는
악덕업주들”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율적용 세일’을
실시했지만, 환율이 1천3백원대로 내려가는 최근에는 다시 가격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서 한동안 잠잠하다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새 업종은 이민사기. 
미국 이민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조직적인 사기단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이민국
직원을 매수하여 1백여명의 한인들에게 임시 영주권을 받아준 한인 변호사와 
브로커 등이
연방검찰에 의해 무더기로 기소됐다. 이들은 정상적으로는 몇년이 걸릴 이민수속을
“몇개월 안에 해결해주겠다”며 이민 희망자를 모은 것으로 밝혀졌다. LA의 김형덕
변호사는 “이번에 적발된 한인들보다 훨씬 큰 규모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이민 사기
집단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어려운 조국의 경제에 보탬을 주려는 운동도 활발하다. 미주 
한인상공인
총연합회(회장 김상호)에서는 모국 상품의 구매를 늘리기 위해 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중소기업상품 박람회에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미 전역에서 세탁업에 종사하는 
5만여
한인들의 단체인 미주한인 세탁업 총연합회(회장 전문종) 또한 98년도 연차 총회를 
5월
서울에서 열어 본국산 세탁장비와 화학약품 등을 대량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첨단
과학분야에서 활동하는 1만여 한인 과학자들의 단체인 재미한인과학기술자협회도 
고국에
첨단과학기술 정보를 제공하고, 한국기업들과의 교류를 조직적으로 전개할 
예정이다. 이
단체 남가주 지부의 정황 회장은 “한국 정부나 기업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30% 가량 준비해 놓은 상태”라고 말한다. 

'영국' 

영국항공(BA)의 지난 3월25일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에는 빈 좌석이 하나도 없었다. 
현저히
줄어든 승객 때문에 운행을 중단하기로 한 항공사가 파격적인 가격으로 내놓은
고별비행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보따리를 싸서 영국을 떠나는 사람, 국내 상황을 
직접
점검하기 위해 다니러 가는 사람…. 

관련기업들의 엑소더스를 시작으로 지난 몇달 사이 일어난 변화는 충격적이다. 단기
영어연수를 받던 학생들이 대거 귀국해버려 한국인들이 주를 이루던 영어학원 
과정이
폐쇄되기도 한다. 사립기숙학교의 경우 비싼 학비를 내지 못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경영에 타격을 입고 있다. 워릭대학 등 아시아계 학생이 많은 대학에서는 
‘5년
뒤 무이자 분할상환’이란 조건으로 학비를 빌려주거나 지원금을 주기도 하지만 
학생을
붙잡지 못한다. 

학비 대여로도 유학생 붙들지 못해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런던 남서쪽 뉴몰든 지역을 보면 변화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재영 한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신문인 '코리안 위클리'의 대표 겸 편집인 
신정훈(39)씨는
“신문의 광고 내용 대부분이 가격인하가 주를 이룬다. 한국인을 상대로 한 상점 
가운데
타격을 받지 않은 곳은 없다”고 말한다. 

이곳 언론은 런던에 있던 삼성사업본부가 문을 닫던 날 관련 뉴스를 종일 
보도했다. 경기
활성화가 한참일 때 영국을 교두보 삼아 유럽으로 진출하려던 한국기업들의 야심찬
투자노력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제까지 해온 공부를 중도에서 포기할 수 없는 유학생들의 처지는 안타깝기만 
하다.
대부분 송금에 의존하던 이들은 빵 한덩이, 주스 한병 등 사는 물건마다 전보다 
곱절로
값을 치르고 나면 손에 힘이 빠진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남편을 뒷바라지 
하기 위해
슈퍼마켓에 나가 야간청소일을 시작한 갓난아기를 둔 새댁소식이 회자되는가 하면 
학교
식당, 주방 청소의 하루 임금이 얼마인지 하는 것들이 중요한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영국에서 맞는 한국의 경제난이 시사하는 바는 특별나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일부
한국인들은 영국을 한물간 나라쯤으로 비웃기를 서슴지 않았다. 한국의 언론들은
2000년이면 한국이 영국을 따라잡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었다. 영국인의 검소한
차림이나 살림규모에 조소를 보내는 ‘잘사는’ 한국인이 있는가 하면, 전 국민을
무상으로 치료해주는 국립보건제도에 대해 시설낙후 운운하며 경시하는 동포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좋든 싫든 절약은 생존의 수단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중국' 

한국 본사에서 베이징으로 파견나온 지 4년째인 김용성씨는 요즘 각각 초등학교 
3학년과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회사에서 전액 지원하던 교육비가 반으로 줄어든 데다 급여마저 20% 
삭감됐다.
“외국인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학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과 아내를
귀국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김씨는 “혼자 베이징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아득하기만 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상사원 대거 귀국 등 최악의 상황 

중국의 한국 상사원들은 봉급과 자녀 교육비 삭감 이외에도 주거비 절약, 사무실 
축소,
차량 반납 등의 압력을 본사에서 받는다. 삼성의 경우 지난 몇달 사이 19대의 
업무용
차량을 팔아치웠다. 이들은 그동안 주로 거주하던 베이징 동쪽의 외국인 거주 
지역에서
주택 임대료가 싼 일반 중국인 거주지역으로 대거 분산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내핍도 귀국하는 사람들의 불안에 비하면 사치에 속한다. 한국이 
IMF의 금융
지원을 받기 시작한 이후 상사원의 30% 정도가 이미 귀국했다. 지금도 귀국 행렬은
계속된다. 그런데 요즘의 귀국은 단순한 귀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 실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상사원들이 오랜 해외 근무로 본사에 기반이 없는 
탓에
인원감축 대상자 명단의 제1순위에 오른다는 것이다. 

92년 중국과 수교한 뒤 한국기업들은 터진 봇물이 밀려들 듯 중국으로 진출했다. 
한국의
웬만한 기업 가운데 베이징에 사무실이 없는 회사는 찾기 힘들 정도다. 덕분에 
베이징에
사는 교민수도 빠른 속도로 늘어 지난해 말 2만명 정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제 각 기업들의 중국 투자는 돌연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있다. 국내의 
자금난으로
중국 투자는 예전에 비해 80%가 감소했다. 사업 계획은 취소되고, 이미 진행되던 
사업도
대부분 중단되거나 축소되고 있다. 이에 더해 최근 아시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인한
중국경제의 급격한 위축은 중국에서의 사업을 날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기업이나 대사관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유학생들은 이미 모두 일자리를 잃었고
한국에서의 송금도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5천명에 이르던 유학생 가운데 
단기어학
연수를 하던 학생들은 대부분 귀국했다. 남아 있는 학생들은 기숙사에 사는 것조차 
힘들어
가격이 싼 중국인 아파트에 방을 얻어 나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신학기 
등록금을 낼
시기인 올 9월을 전후해서는 학업을 중도포기하고 귀국하는 학생들도 크게 늘 
전망이다. 

경제적 여유가 사라진 동포사회에는 각박한 일마저 이어져 동포들의 힘을 빼놓거나
우울하게 만든다. 베이징의 파인힐 레스토랑(사장 손석복)은 지난해 말 귀국하는
유학생들을 돕기 위한 장학기금을 마련한다는 명목의 행사를 벌여 고객을
유치하고도(본지 190호 보도) 정작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 

IMF 한파는 파리교민 사회에도 여지없이 밀어닥쳤다. 경제위기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교민들의 근심은 한국경제의 좌절에 대한 걱정이나 경제주권 상실로 인한 자존심의 
손상
같은 것이 아니라 당장 내야 하는 엄청난 액수의 집세나 전기요금이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전철이건 길거리에서건 쉽사리 만날 수 있었던 흔한 한국
배낭족들이 이젠 희귀종이 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성업중이던 수십개의 한국 
식당들도
파리를 날리고 있다. 파리의 한국 식당들이 문을 닫는 것은 이제 시간 문제다. 

자영업체 파산 도미노에 동포사회 흔들 

경제위기와 함께 파리에서는 한국인들의 대대적인 이동이 시작됐다. 위기 대처의 
1단계는
‘싼집으로 이사가기’다. 교민이건 상사직원이건 유학생이건 할 것 없이 집세가 싼
아파트를 찾아 대이동에 나섰다. 한인들은 대부분 자동차를 팔고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
외에는 거의 사지 않는 식으로 생활방식을 바꾸고 있다. 이렇게 내핍 생활을 해도 
한달
생활비는 한국 대기업 직원의 월급을 훨씬 웃돈다. 

경제위기와 함께 파리 유학생 사회에서는 저녁식사 초대나 생일파티 같은 풍속이 
자취를
감췄다. 그나마 모든 대학이 국립이라 학비가 거의 무료인 게 천만다행이다. 

생활이 힘들어도 허리띠를 졸라매면 되는 유학생들과 달리 파리에서 자리잡고 
사업을
하던 교민들은 대부분 파산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특히 피해가 심한 부문은 
여행사나
관광가이드들.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한인 여행사 ‘오떼아’는 경제위기 초반에 
이미
문을 닫았고 파리 최대 규모의 한인 여행사 ‘한불여행사’도 부도 끝에 최근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파리 관광가이드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가 됐다. 

10여종에 달할 정도로 과열 경쟁했던 파리 한인신문 중 현재 제때 발행되고 있는 
신문은
거의 없다. 광고주들이 도산하는 바람에 신문을 내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다달이
2번씩 나오던 오니바 신문은 월 1회 발행으로 바뀌었고, 그나마 지면수도 줄였다. 
이 신문
관계자는 “신문 발행보다는 당장 임대료가 걱정”이라고 한다. 신문사 사무실은 
벌써
내놓았고, 발행인은 자신의 아파트를 줄여 아예 집과 사무실을 합칠 계획이다. 

남는 장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꾸준히 전시회를 열던 한인 화랑 오니바는 “얼마 
전부터
전시회 신청자가 끊겨 그냥 임대료만 축내고 있다”며 울상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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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1998년 04월 09일 제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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