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T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8년01월11일(일) 07시57분52초 ROK 제 목(Title): Re: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홍성욱씨 > 첫장벽은 언어. 마치 「지진아」처럼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질 못했다. > 81학번인 그가 대학을 다닐 당시는 한창 반미감정이 고조된 때. 영어를 공부하는 > 것이「수치」였던 시절이었기에 영어는 바닥이었다. 기자의 생각인지 홍성욱이란 분의 말을 기자가 받아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영어 공부한다고 '수치'였던 시절이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반미 감정이 고조되던 때는 84년부터 학원내에서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의 사진과 곁들여 대자보가 나붙어 광주에 대한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게 되면서 미국의 당시 역할에 의문을 가진 학생들이 많아졌고 급기야 85년 미 문화원 점거 사태로 이어진 것인데.. 그 때까지만 해도 반미감정이 그다지 고조되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지방대 모 여학생이 "양키는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85년도에 외치는 것을 들은 것이 처음이니까요. 많은 대학 시위에서도 '양키'라는 말을 입에 담고 외치는 것이 시작된 것이 주류를 이루게 되는 것은 85년 이후입니다. 그 이후에 반미 감정이 고조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래서 영어 공부하는 것이 '수치'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일부 지역의 일부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면 말이 되겠지만.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