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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yungHee ] in KIDS
글 쓴 이(By): sinavro (시나브로)
날 짜 (Date): 1995년11월06일(월) 22시44분55초 KST
제 목(Title): [소설] 두 할머니 VIIII


약간 벌린 입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실없는 웃음이 삐져나왔다. 고모할머니는 차라리 
할머니의 딸 같았다. 할머니에게 그네는 고모들보다 더 딸 같은 존재였을지 
모른다. 나는 왠지나는 왠지 모르게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큰 길 쪽을 내다보았다. 
불빛 하나가 비탈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로 번들건리는 헤드라이트 
불빛을 흘리며 택시 한 대가 다가왔다. 차 안에 탄 여자가 누ㅡㄴ에 익었다.  나는 
평상 위에 ㄷ담배를 비벼껐다. 고모였다.

  고모들이 속속 몰려들 시간이 된 모양이다. 몇시지? 나는 다시 궁금해 진다.
  집은 여전히 어두웠다. 좁은 집안은 고모와 고모부들, 그리고 그들이 사방에 
떨구어놓은 그림자로 북적거렸다. 고모할머니는 이 보ㅉ�동 집에서 십년이 넘게 
사셨다고 한다. 말이 한 층 전세이지, 대여섯자 되는 방 두개와 마루, 부엌이 
전부인 집은 옹색하기 짝이 없다. 할머니가 마흔 두평짜리 우리 아파트를 두고 
보문동으로 옮겨 오신 것은 일년 전 쯤이었다.

  역앞 파출소에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 우리 식구중 누구도 할머니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었다. 입속으로만 중얼거리는 할머니의 혼잣말에까지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새벽녘에 집을 나가신 할머니를 우리는 파출소에서 모셔와야 했다. 
할머니는 파출소 바닥에 앉아, 땀내와 진한 동백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고 있었다. 서울역 개찰구 앞에서 종일 쪼그리고 앉아 
계셨다고 했다. 작지도 않은 덩치가 짐짝처럼 통로를 막고 있었으니 어지간히도 
걸리적 거렸을 것이다. 버둥거리는 할머니를 떠매다시피 모셔왔다는 순경은 떨어진 
단추를 내보이며 손사래를 쳤다.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 흔히 말하는 망령이 났다. 단순하고 고집불통이 
되었으며, 되지도 않을 일에 떼를 썼다. 할머니의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제멋대로 
넘나들기 시작했다. 전쟁때 헤어졌다는 할아버지를 입버릇처럼 찾을 때면, 
할머니는 읍내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새댁이 되었다.

  내 할아버지란 분은 좀 허랑방탕한 이였던 모양이다. 시골집을 비워둔 채, 그는 
역마살이 낀 듯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행세 깨나 하던 집안의 재산이, 
할아버지가 한 번 들릴 때마다 뭉텅뭉텅 떨어져 나갔다. 전쟁이 났고, 할아버지는 
바깥 사정을 수소문해 본다며 집을 나갔다. 밭 한 뙈기 남기지 않고 팔아치운 돈과 
함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를 마중한다며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갔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어느 틈엔가 집을 빠져 나갔다. 온 식구가 동네를 찾아 헤매고, 
파출소에서 연락이 오는 일이 잦아졌다. 동네 어귀 전봇대에서 지하철 역, 
고속버스 터미날까지 그네가 가는 곳은 참으로 다양하기도 했다. 망령치고는 꽤나 
유별난 망령이었다.
  감금령이 내렸다.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에도 빠져나가는 할머니를 우리는 
방안에 가두리고 했다. 행여 길에서 사고라도 당하시면 큰일이니... 아버지는 
그렇게 중얼거리고 밖에서 방문을 잠그시고 출근하셨다. 몇 시간동안 
칭얼거리시다가 지치면 할머니는 죽은 듯 잠잠해졌다. 그 덕분에, 우리집은 전에 
없이 조용해졌다.

  할머니가 어떻게 고모할머니께 연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잠긴 문 손잡이를 
두어번 덜컥거려보고, 고모할머니는 무섭게 화를 내셨다. 내가 아는 고모할머니는 
항상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남의 화를 풀어 주는 것이 고모할머니의 역할이었다. 
그렇게 화를 내는 고모할머니는 처음 보았다. 고운 목소리에 우얼리지 않는 높은 
언성이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성님, 우리집에 가입시다. 성님이 뭔 죄를 지었소? 갇혀 있지말고, 갑시다! 
우리집에 현이 할아버지도 와 있소."

  고모할머니는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를 일으켜세웠다. 여섯 살박이를 데려가듯 
옷을 입히고 할머니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할머니는 순하게 따라나섰다. 
막고나서는 어머니에게 고모할머니가 발칵 성을 내셨다. 현이 아빠가 알면 길길이 
뛸텐데... 하면서도 어머니는 속절없이 물러서야 했다.

 
                           E-mail Address sinavro@ss-10.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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