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yungHee ] in KIDS 글 쓴 이(By): sinavro (시나브로) 날 짜 (Date): 1995년10월30일(월) 00시52분35초 KST 제 목(Title): [소설] 두 할머니 III 어두운 계단을 더듬어 내려오는 발 밑에 촛불을 비춰주며, 어머니는 몇 시간 전에 불이 나갔다고 설명했다. 워낙 낡은 집이라 전기배선이 엉망이라는 말에, 비 때문에 누전된 거나 아닌지 모르겠다는 추측을 덧붙였다.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는 반 지하 방은 굴 속처럼 어두웠다. 택시에서 내려 좁은 비탈길을 오르며 내내 통화내용을 생각했었다. '할머니가 의식이 없으시다. 사흘째 죽 한모금 변변히 못 자셨다.' 몇 번이고 되씹어도 어머니의 말을 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소 한 마리를 잡아먹고도 입맛다시며 저녁상에 앉을 분이 할머니였다. 남편 없이 네 자식과 고모할머니까지 맡아 키우며 먹는 것에 한이 맺혔다고 했다. 할머니가 즐겨드시는 찬에는 누구도 젓가락을 대지 못했다. 생선 대가리까지 우적우적 씹어 드시며 할머니는 상 위의 음식들을 모조리 입 안에 긁어 넣었다. 그러고도 배앓이 한 번 앓아본 적 없던 할머니셨다. 나는 할머니가 몸져 누운 것을 본적도, 상상해 본적도 없었다. 어머니의 말은 개념만 있고 실체를 잡을 수 없는 천문학적 숫자처럼 들렸다. 할머니의 거구는 아랫목에 눕혀져 있었다. 그 곁에 왜소한 등을 보이며 고모할머니가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간호사가 돌아간 후로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고 할머니의 간호를 도맡아 하고 계시다고, 어머니가 방문을 빼꼼히 열어주며 낮게 속삭였다. 몸집이 작은 고모할머니의 뒷모습은 한 팔로도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모할머니의 손은 유난히 작았다. 매듭없이 고운 힘줄이 돋도록 그네는 할머니의 한 손을 힘껏 움켜쥐고 있었다. 두툼한 손은 두 손으로도 채 감싸지지 않았다. 장성한 거구의 아들을 보살피는 어머니 같은 표정으로 고모할머니는 앉아계셨다. 나는 어딘지 모르게 생뚱한 기분이 되어 쭈뼛거리며 그들 곁으로 다가들었다. 반쯤 벌린 입으로 할머니가 숨을 내쉴 때마다 지독한 단내가 풍겨나왔다. 집안을 채우고 있던 퀴퀴한 노린내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방안은 눅눅하고, 후덥지근하고, 역겨운 공기가 머리칼처럼 촘촘히 엉켜있었다. 모든 것들이 적당히 역겹고, 적당히 우습게 느껴졌다. "할머니, 저 왔어요." 나는 등을 돌린 채로 앉아있는 고모할머니에게 말을 걸었다. 고모할머니는 그제서야 나를 돌아보며 고개만 한번 끄떡하셨을 뿐이다. 좀 호들갑스럽다 싶을 정도로 반색하며 나를 맞아들이곤 하던 고모할머니였다. 나는 약간 당혹스럽고 서운해졌다. 할머니의 얼굴을 내려다 보았다. 저승꽃이 촘촘이 핀 얼굴은 이스트를 넣고 부풀린 듯 잔뜩 부어오라 있었다. 그네의 얼굴은 말하자면 위에서 살짝 잡아당겨 놓은 형상이었다. 눈꼬리도, 입매도, 뭉툭한 코마저도 치켜올라간 얼굴은 흡사 탈바가지 같았다. 지금은 치켜올랐던 눈꼬리가 아래로 쳐져 주름살 속에 파묻혀 있다. 심술궂던 인상이 우습게 변해버렸다. 할머니는 훅훅 더운 숨을 내쉬었다. 숨결에 진한 노린내가 묻어났다. 나는 역겨운 냄새를 피해 도망치듯 일어섰다. '현이야, 감기들라. 옷 갈아 입어라." 방을 나서는 내 등에다 대고 고모할머니가 나직하게 말했다. 나는 잠깐동안 그 자리에 섰다가 방을 나왔다. 고모할머니의 목소리는 여전히 곱다. E-mail Address sinavro@ss-10.kyunghee.ac.kr ~~시나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