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river) <space.kaist.ac.> 날 짜 (Date): 1999년 1월 15일 금요일 오전 01시 34분 02초 제 목(Title): Re: 군바리에게 편지쓰기 정말 편지 안쓴지가 1년을 넘긴 것 같습니다. 편지를 받아도 전화해주는 것조차 드물고, 대개는 무시해버리고 말죠. ('임마, 니가 그러니까 친구가 없는거야..'..-__- ) 그런데, 몇 년 전에 반드시 답장을 해줬어야 하는 편지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럴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걸 느낍니다. 그때, 그순간에 이랬어야 했는데, 그건 '그때'라는 놈만이 주는 기회였는데.. 아마 현재도 미래에 있을 후회들을 만들고 있겠죠. 생각해보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에 그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기억들을 만들어 주려고 제 앞에 나타났다가 금방 가버린 것처럼요. 그애가 마지막으로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니면 내 생각이라도 한 건지.. 저는 고작 그런 것이 아직도 궁금하지만. 제게 있어 그녀석은 정말 멋찐 놈이었고, 이제는 일생을 지고 갈 하나의 짐입니다. 회상해보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기억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장면들속에는 어김없이 그애가 있습니다. 밤늦게 기숙사 쪽으로 귀가할 때, 차 한대 지나가지 않는 건널목 앞에서 파란불이 되기를 기다리며 나란히 서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참 교통질서를 잘 지키는 착한 어린이구나..' ..라고 했던 말까지. 얼마간 술기운이 돌면 AmPm 앞 계단에 앉아 찬바람을 쐬곤 했었습니다. 언젠가는 그애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 중 하나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얘길 끝내면서 이러더군요. '너니까 얘기한거야..' 그런데, 그애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기 전 1년 여 동안은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확실히 설명하지 못할 응�로 서먹해 졌고 저는 그애가 입대하는 날 훈련소까지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때 그애가 더이상 친구로서의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 했었습니다. 그애는 나보다 더 믿음직하고 마음을 털어놓기 좋을 만한 친구들을 옆에 두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젠 친구가 아닌 각자의 애인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최고 선배가 되어가고 있었고, 때로는 감당하기 벅찰 만큼의 힘겨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내가 겪는 힘겨움 안에 그애가 주는 몫이 있었기 때문에(그렇게 생각했 기 때문에) 나도 어느 정도의 몫을 주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 니다. 고의든 아니든... 그때 어쩌면, 그애가 여전히 나를 필요한 친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 지만, 전 그 상황에서의 제 판단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는데, 중요한 건 그것 때문에 난 그애를 멀리했다는 거지요. 훈련소에도 따라가지 않았고, 거의 2주마다 한 번씩 과앞으로 오는 편지들에 한번도 답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건 그 편지들에 내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던 점도 있었 겠지만.. 음.. 실은 그게 가장 치명적인 이유였던 것 같군요. 제 판단을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어쨌든 그때 전 답장을 한통이라도 해줬어야 했습니다. 그애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누굴 떠올렸을지, 만일 나도 떠올렸다면 어떤 느낌을 갖고 그 계단을 걸어 올라갔을지 ...나는 너무나 이기적 이어서 겨우 이런 생각밖에 할 줄 모르나 봅니다. 그애는 분명히 걸어서 13층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그애는 걷는 걸 정말 좋아했거든요. 그애는 그런 식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이 무엇인지 알게 해줬습니다. 생각해보니까, 그애는 나의 가장 행복했던 기억속에도, 가장 불행했던 기억속에도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사람을 대하는 것에 서툴렀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정말 좋은 친구를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서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