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TigerKU ( 일) 날 짜 (Date): 1995년04월15일(토) 03시38분21초 KST 제 목(Title): [고대신문]4/10 10면(문화면) 고대신문/고대신문열린마당 () 제목 : [고대신문]4/10 10면(문화면) #520/525 보낸이:전상균 (KUNEWS ) 04/13 11:49 조회:0 1/14 __________________________목__________차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현단계 「민족주의」담론의 위상과 의미 - "자민족 우월주의에 대한 검증 통해 「민족주의」정당성 확보해야 한다" - "민족문학론·리얼리즘론의 모순적 양립관계를 재정립해야 된다" ----------------------------------------------------------------------- 10면 - 현단계 「민족주의」담론의 위상과 의미 "자민족 우월주의에 대한 검증 통해 「민족주의」정당성 확보 해야 한다" 黃 東 逸 문화평론가 김진명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이현세의 『남벌』, 그리고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답은 첫째, 그것들 모두 초유의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는 점 둘째, 일본 혐오 혹은 「공격적」 민족주의 색채를 짙게 깔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신세대 논쟁이 시들해진 이후로 「민족주의」 가 새로운 문화상품 아이템 혹은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위에 서 든 예들 말고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둘러싼 갑론을박, 미 국영화를 가장한 일본영화 수입 헤프닝, 그리고 더욱 크게는 유 구한 전통에 대한 대중적 관심에서부터 「우리 것이 좋은 것이 여」라는 식의 일상담론에 이르기까지 우리 고유의 민족적 정체 성에 대한 관심이 한껏 제고되고 있다. 이 야단법석의 국제화 와 세계화 시대에 난데없이 민족주의 신드롬이라니? 이 짧은 글 은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한 간략한 시안이다. 이와 함께 이 글 에서 민족주의는 하나의 대항·대안 담론이 아니라 지배담론으 로서의 민족주의에 한정될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 먼저 민족주의에 대한 관심의 제고가 질적으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그것은 때로는 일본 제국주의 침탈에 대항한 해방적 기획의 정치적, 이데올로 기적 표현으로서 때로는 정통성을 결여한 국가권력의 통치 이 데올로기로서, 때로는 극우적 애국주의 등으로 다양하게 표출 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우리 당대의 민족주의 신드롬 혹은 유 행이 과거의 그것과 눈에 띠게 구별되는 것은 과거 우리의 민 족주의가 대개 수세적, 방어적 형태를 띠었다면, 최근의 그것은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요컨대 일본 열도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끝내 항복을 받아내고야 마는 식의 플롯 설정이라든가 아예 『일본은 없다』라는 단언, 그리 고 이현세의 『남벌』에서 일본은 국익을 위해서는 제나라 국 민조차 학살해 버리는 잔인한 민족으로 그려지며, 전여옥의 『 일본은 없다』에서 일본인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동시에 「언제든 어떻게든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는 예감을 갖게 하는 맹목적이고 의뭉스런 민족으로 표상되기 도 한다. 어리석은 가정이지만 만약 일본에서 한반도를 재침략하여 서울 중앙청에 「히노마루」를 올리는 만화나 『조선은 없다』라는 식의 책이 출간되어 베스트 셀러의 반열에 올랐다면 우리나라 에선 아마 그날로 중고등학생까지 동원된 규탄집회의 행렬이 여의도 광장을 가득 덮을 것이다. 이 이중성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래토록 핍박받은 자의 자기정당성? 아니면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수만 혹은 수십만의 여성을 성적 노리개로 동원할 만큼 야만적인 역사를 가졌으면서 도 「그게 아니었다」라고 잡아떼는 「전과범」의 후안무치에 대한 의혹과 경계? 물론 「화해」란 손에 피를 묻힌 자의 몫이 아니다. 뼈를 깍는 반성이 없는 가해자의 화해의 몸짓이 거짓 인 것처럼 모멸과 치욕의 역사를 제대로 극복하지도 못한 상 태에서 화해적 공존을 외치는 것 또한 역사적 기억상실증에 다 름아닐 터이다. 필자또한 공정한 거래 혹은 수평적인 관계란 마 땅히 청산해야 할 그동안의 「부실채무」에 대한 정리후에야 가 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화두로 삼은 민족주의 는 단지 이렇게 간단한 셈법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 다.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 왜냐하면 최근 민족주 의 담론은 온통 상호모순적이고 양가적인 하위담론들로 뒤범벅 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필자는 최근 민족주의 담론속에서 컴플렉스와 어쩌면 이 컴플렉스로 인해 더욱 과격한 양상을 띠 는 공격성, 이제 막 지긋지긋한 가난의 기억에서 벗어나 풍요의 유토피아로 가는 문턱에서 그 가난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더더 욱 집요하게 소유와 소비에 집착하는 졸부의 그것을 닮은 오 만함과 극성스런 자기과시, 「한 핏줄, 한 겨레」의 신화를 동원한 이데올로기 조작, 그리고 발빠른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세련된 포장으로 덧씌워진 문화상품의 「과거 향수-복고」의 아 우라를 목격한다. 이렇게 다양한 요소의 혼재에 대한 설명은 근본적으로 남한 자본주의의 성격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즉 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해서 현단계 남한주의가 선진자본주의 제국과의 불균 등관계 속에서 일방적인 경제적 종속을 강요하던 단계로부터 그 나름의 상대적 자율성을 가질수 있을 만큼, 또는 더 나아가 제3 세계 국가들에 대해 일종의 '새끼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일만 큼 양적·질적으로 성장해 있다는 것이다. 복잡한 경제적 지표를 제쳐두더라도 중남미와 동남아시아로의 해외 분공장 이전, 국내 에 들어와 있는 20만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의 존재는 남한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를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경제적 성숙과 자신감은 문화적 자신감 혹은 오랫동안 우리를 짓눌러 온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컴플렉스를 훌훌 벗어던진 자신만만 한 민족주의 득세의 한 자양분이 된다. 그러나 근대적 시민사 회의 성장을 동반하지 않은 채 비대성장해 온 남한자본주의의 파행성은 그대로 민족주의의 파행성으로 전이된다. 70년대 국 내에 들어와 있던 외국기업들보다 몇 배, 몇 십배 더 야만적이 고 집요하게 자행되는 해외 분공장에서의 노동착취, 국내 외국 인 취업노동자들에 대한 상습적인 구타, 감금, 여권몰수, 임금 체불 등의 경제적, 경제외적 강제와 인종주의적 편견과 이중성 (백인들에게는 비굴하고 유색인들에게는 오만한)은 최근 민족 주의 담론이 현단계 자본주의의 경제적 본질에 대한 이데올로 기적 자기정당화 기제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민족주의 담론과 「세계화」, 「국제화」 슬로건은 은밀히 내통한다. @이렇게 변화된 물적 토대에 뿌리내리고 있는 민족주의적 파토 스는 각종 언론매체 및 문화산업에 의해 보다 세련된 이데올로 기적, 문화적 표현을 획득한다. 즉 그것들은 단지 막연한 수준 에서의 「뿌듯함」과 열등감과 우열감이 착종된 감정의 덩어 리들을 그럴듯한 문화적 외피와 내적 논리로 포장된 「세련된 문화상품」으로 「업그레이드」하여 대량생산, 대량유포한다. 그것들은 고유의 문화유산에 대한 복고주의적 찬양에서부터 만 화적인 상상력 그리고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는 가벼운 상품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민족주의 자체에 담겨 있는 부정적 측면들은 대개 사상되며, 단지 민족주 의의 기표만이 무비판적으로 차용된다. 결국 우리 당대에 민족주의란 하나의 「절대적인」 진보적 가 치라기보다는 우리에게 좀더 엄격한 자기반성과 검증을 요구하 는 「화두」로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최근 민족주의 담론 속에 은밀히 숨어들어 있을지도 모를 과거 미화, 자민족 우월주의, 인종주의, 맹목적인 힘의 논리 그리고 자본과 국가권력의 이데올로기적 자기정당화 등을 가려내고 비 판적으로 독해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는 명실상부한 민족 자결 National self-determination과 하나의 해방적 기 획으로서 현단계 민족주의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수적이 다. 나찌즘과 파시즘의 게르만민족 우월주의, 對로마주의가 저 지른 전쟁과 학살의 서구 근대 「야만의 역사」는 이러한 비판 의 엄중함과 긴요함을 새삼 우리에게 환기시켜 준다. "민족문학론·리얼리즘론의 모순적 양립관계를 재정립해야 된다" 方 珉 昊 문학평론가 우리의 문화예술 지형 속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민족성과 민족주의를 구분하면서 문학적 민족주의가 담고 있는 민중지향적이고 이념 적인 성격을 배격하고자 하는 입장이다. 둘째, 진보이념 혹은 사회주의 이념의 관점에서 민족문학론의 (소)부르조아적 한계성 을 비판하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 근대화 혹은 국제화(세계화) 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특수 이념으로서의 민족문학론을 비판 하는 관점이다. 이는 민족문학론의 민중지향성에 대해 인문주의 적 비판을 가하는 입장으로부터, 그 리얼리즘적 지향에 대해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적 비판을 가하는 입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주를 보인다. 이렇게 다양한 문학적 민족주의 비판의 논리들 속에서 민족문학론의 현재적 유효성 혹은 그 리얼리즘론 적 기능성을 재확인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어려움은 이론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싼 현실 그 자체에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신민족주의」적 이념을 배합할 수 있을 정도로 난숙해버린 우리 사회의 독점자본주의적 발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속에서 독점자본주의적 민족주의란 곧 제국주의를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독점자본계급과 정권의 신민족주의화, 즉 그 제국주의적 요소의 성장은 민족문학론 자체의 정당성을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최근에 이인화나 김탁환 등에 의해 선동적으로 제기된 바 있는 문화적 국수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이 국제화시대에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문화예 술면에서도 「우리 것」을 전면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들 은 한 손에는 매체혁명이라는 논리를, 한 손에는 「전통」이라 는 논리를 들고, 투구를 쓴 채 나타난 군신을 연상시킨다. 그러 한 문화적 국수주의의 선동성은 감수성 예민한 중고등학생들이 『영원한 제국』,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같은 대중소설이 나 『남벌』같은 만화에 탐닉하고 있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문화적 국수주의가 민족문학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음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지구상에 몇 안 남은 스탈린주의 권력인 북한 정권의 존재 및 그들식 민족 주의의 현존을 들 수 있다. 민중의 기본권을 극히 제약하는 전 체주의적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통일지상주의적이고 민족절대주 의적인 논리를 구사하는 북한 정권의 존재는 민족문학론의 현 실성을 약화시키는 제3의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이론적, 현실적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민 족문학론의 현실성과 그 리얼리즘적 가능성을 주장할 수 있는 어떤 현실적, 이론적 근거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 필자는 그 것이 아직도 의연히 존재한다고 본다. 먼저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이 처한 지금의 고난에 찬 현실이 그 현실성을 보증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이 분단은 우리 민족의 생존과 번 영을 위협하는 「악의 근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을 둘로 나누었을 뿐 아니라, 그 두 사회에서의 민주주의의 발전과 인간적 삶을 억압하는 조건이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세 계사 속에서 우리 민족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는 한 우리에게 항상적 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민족문학과 민족문학론의 결핍이지 그 과잉은 아닌 것이다. 더구나 최근 들어 동북아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와 헤게모니 쟁탈전은 우리 민족의 특수한 특권적 일부가 아닌, 전체 구성원의 운명과 삶의 문제를 전면 적으로 제기하고 있으며, 이는 민족문학과 그 문학론에 새로운 조건을 더해주고 있다. 최근의 국제화(세계화) 경향과 그 문화 적 현상들을 근대화, 개방화라는 일면적 시각에서만 보지 않고, 그러한 보편적 경향 속에 처한 우리 민족의 특수한 현실로 볼 수 있는 한 민족문학과 그 문학론은 오히려 그 필요성을 새롭게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민족 전체의 삶이라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특수한 관점을 전제하지 않는 한 공허한 미사여구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이 우리 민족이 처 한 「진정한 현실」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것을 바 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 로 필자는 이 시대 민족문학과 그 문학론을 위한 두가지 기본적 관점을 지적해보고자 한다. 그것은 먼저 진보적 관점에서 민족문학론을 재정립하는 것이 다. 기존의 노동해방문학론이나 당파적 리얼리즘 문학론은 민 족문학론의 (소)부르조아적 한계성을 극복한다는 문제의식에 사 로잡힌 나머지 민족문학론 자체를 부정하는 관점을 취했다. 이 는 민족주의를 대체한 이념으로서의 국제주의로서의 사회주의라 는 논리를 문학 속에서 전개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온갖 고 난을 극복하며 쌓아온 민족문학론이라는 성채를 쉽사리 남에게 넘겨주는 것이자, 삶의 실제적 단위로서 기능하고 있는 민족이 라는 집단과 그 개념을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태도가 아닌가 한다. 물론 민족주의적 시각만이 전제된 민족문학론이란 반역사 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일 수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진보 적 시각과 민족문학론 사이의 긴장, 진보적 관점에서의 민족문 학론의 재음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 민족론의 현대적 재조명과 긴밀히 연관된 문제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그것은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의 모순적 양립관 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리얼리즘은 무엇보다 사실의 추구, 현 실이 총체성에 대한 추구로 특징지워진다. 그리고 이는 이념형 으로서의 민족문학론과 모순된다. 사실 그 자체는 이념과 동일 하지 않다. 그것은 동일화되어야 할 관계에 처한 것들이며 그 동일화는 현실 속에서는 거의 언제나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할 이상적 상태에 머무른다. 따라서 민족문학론이 곧 리얼리즘론 이라는 식의 단순한 동일시는 편리한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민 족문학론은 작품의 리얼리티를 가능케 하는 선험적이며 절대적 인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현실에 대한 민족문학작품의 지체현상은 이 자명한 사실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민족문학론과 리얼리즘론의 모순적 양립, 그 긴밀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 현실 속에서는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이 곧 현실에 대한 총체적 인식으로 통할 수 있는 귀중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그 지점 에서 민족문학론은 리얼리즘의 가늠자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 다. *********************** 재 키즈 고대 동문회 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