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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pkp (~~~pkp~~~)
날 짜 (Date): 1995년04월06일(목) 21시53분42초 KST
제 목(Title): [고대신문]4/3 7면(학술면)


 고대신문/고대신문열린마당  ()
 제목 : [고대신문]4/3 7면(학술면)
 #505/510  보낸이:전상균  (KUNEWS  )    04/06 10:43  조회:0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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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충남 보령 관창리 유적발굴의 역사적 의의

<편집자주>
         BC 4~2세기경 방형주구묘, 最古의 水田 등 발굴
      선사시대 한일 관계사^생활기술사 연구에 획기적 자료될듯

<사람>현대의 경제학자들-(4) 게임이론의 내쉬
      게임주체의 전략선택, [내쉬균형] 개념으로 설명

<탁류세평>
문화의 모방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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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07
<학술>충남 보령 관창리 유적발굴의 역사적 의의

@본교 박물관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일대 1만7천여평에 대한 유적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에서는 처음으로 방형주구묘를 발굴하는 등 상기한 유구 및 유물
을 다량 검출하였습니다.
@현재까지 무문토기단계 이전의 주거지 68기, 송국리형 무문토기
류 200여점, 토광 34기, 방형주구묘 19기, 석기류 500여점  등을
발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들 유적^유물은 우리나라  고대사연
구 뿐만 아니라 한일관계 고대사 연구에 활력을 제공하게 될  것
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에 본란에서는 이번 관창리 유적 발굴의 역사적 의의를  고찰
하는 글을 마련하였습니다.

<편집자주>

         BC 4~2세기경 방형주구묘, 最古의 水田 등 발굴

      선사시대 한일 관계사^생활기술사 연구에 획기적 자료될듯


      李 弘 鐘
인문대 교수^한일관계 고고학


@충남 보령시 주교면 관창리 유적은 하나의 큰 구릉과 5개의  작
은 구릉에 형성된 유적으로 이곳에서는 기원전 6  4세기에  이루
어진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최대 규모의 주거유적과 일본  독자의
것으로 알려졌던 기원전 4  2세기의 방형주구묘-한변이  10  20m
인 네모꼴 모양으로 그 주위에 폭 1  1.5m, 깊이 30  150cm 정도
의 도량을 두른 형태의 무덤으로 매장시설은 내부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 후, 성토 윗부분에서 부터 토광을 파고 토광을 그대
로 무덤 주체부로 사용하거나 혹은 토광안에 목관을  넣은  무덤
형태-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발굴되었다. 또한  구릉사이의
계곡부에서는 주거유적과 같은 시기인 기원전 8  4세기대에 만들
어진 우리나라 最古의 水田유적이 확인되었다.

 조사내용

@현재까지 조사된 주거지는 1백여기 정도이나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2백여기를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주거지는 대개 기원전 6  4세기대에 해당되는 이른바  송국리형
주거지-평면형태가 원형으로 중앙부에 타원형의  토광을  설치한
형태-로 주거지의 크기는 직경 10m를 상회하는 것에서 부터  4
5m의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출토유물로는 완형토기류가  2
백여점, 석기류는 목제 종공구 제작과 관련된 돌끌, 돌자귀,  돌
칼 외에 돌도끼, 돌화살촉, 숫돌, 추, 석검 등이 5백여점 출토되
었다.
@주거지 외에 생활용기를 제작했던 요지 21기, 곡식 등을 저장했
던 저장시설 약 50기, 무덤 20여기도 서로 공간을 달리하면서 함
께 나타나고 있어 당시의 전반적인 생활상 및 주거지간의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이러한 주거유적과 이곳에서 출토되는 석기류가  북부구
주 지역의 야요이문화 형성기에 그대로 등장하고 있어 일본 농경
문화를 형성시킨 집단의 추이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관창리 유적에서 확인된 방형주구묘는 현재까지 총  45기로  그
중 19기가 조사되었다. 방형주구묘의 크기는 한변이 20m를  넘는
큰 것에서 부터 7  8m 정도의 작은 것까지 매우 다양하나 대개는
12  5m 정도이다. 무덤의 주체부는 성토부분에 설치되었기  때문
에 오랜 세월로 소실된 것이 대부분이나 일부 잔존해 있는  토광
의 토층상태로 보아 목관을 안치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기는
주체부와 주구-무덤주위를 두른 도랑-내에서 출토된 토기와 성토
전 매납된 토기로 보아 가장 이른 것은 기원전  46세기  후반대,
늦은 것은 기원전 2세기 전후에 속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방형주구묘는 일본 독자의 무덤인 것으로  알려져  왔
다. 일본에서의 방형주구묘는 채집단계인  죠오론시대가  끝나고
농경사회기인 야요이시대에 접어든 후, 기원전 3세기말부터 긴끼
지방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묘제이다. 그 후 이 무덤은 주
변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약 5백년간 번성하다가 기원후 4세기 고
분시대가 시작되면서 출현하는 전방후원분과 교체된다.
@방형주구묘를 사용한 집단에 대해서는 농경사회를 영위한  집단
의 수장급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어 왔는데 출토유물은  차치
하고 무덤의 규모만 보더라도 이러한 추정은 매우 타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 무덤은 전방후원분의 등장과 더불어  소멸하게  되는데
양 묘제는 서로 분포권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무덤의 축조 등 구
조적인 면에 있어서도 서로 계승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방형주구묘가 전방후원분으로 이행하는 것은  방형
주구묘 집단이 보다 강력한 정치체제에로 변화해 갔음을  의미하
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수전은 시굴조사에 의해 약 2천여평이 확인되었다. 앞으로 본격
적인 조사가 실시되면 명확하게 그 성격이 드러나겠지만  시굴결
과, 중앙부에 도랑을 설치하고 양쪽 둑에 나무를 박아 하천이 범
람하지 못하게 한 인위적인 시설물과 이를 이용해서 경작지롤 사
용한 수전층이 검출되었다. 도랑과 수전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아
상기한 주거지 집단에 의해 영위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의 성과와 의의

@이번 발굴조사는 다음 세가지 측면에서 의의를 갖는다.
@첫째는 대규모 주거유적의 발굴이다. 대개  지금까지의  발굴은
부분적으로 밖에 진행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당시의 전반적인  생
활상을 재구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2백여기가  넘
는 집단 주거지와 요지, 무덤, 저장시설 등의  발굴은  우리나라
초유이며 집락의 기능과 역할 뿐만이 아니라 당시의 생활공간 연
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선사시대 한
일 관계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 야
요이 형성기의 대표적인 주거형이 송국리형 주거지라는 것은  주
지의 사실이지만 출토된 토기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양식과는 다르게 주둥이 부위에 새김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일
반적이었다. 이러한 양식의 토기가 우리나라 송국리형주거지에서
출토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를 죠오몬문화의 전통으로 보고 재
지적인 집단이 외래적인 집단의 문화를 수용^발전시켜  나아갔다
고 보는 근거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번 조사에서 이러한  유형의
토기가 출토됨으로서 보다 구체적으로 야요이문화를 형성시킨 집
단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둘째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인 방형주구묘의 발견이다.  방형주
구묘는 일본에서 2천여기 이상이 조사되어 그동안  일본  독자의
무덤인 것으로 파악되었던 묘제로 이 무덤이 우리나라에서  발견
되었다는 것은 긴끼지방 야요이문화 전기간과 고분시대 전방후원
분 집단의 추이에 대한 한일 고대사연구의 획기적인 발굴로 평가
될 것이다.
@세째는 이 시기 처음으로 논유적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의 영향을 받아 성립한 일본 야요이문화가 바로 논농사와 직
결된 문화임에도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이 시기 논에 대한 조사
례가 전혀 없었다. 논이 조사됨으로서 앞으로 어떠한 경로를  통
하여 어떠한 집단이 우리나라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였을까를  분
명히 밝힐 수 있게 되었고 아울러 생활기술사적인 연구의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현대의 경제학자들-(4) 게임이론의 내쉬

      게임주체의 전략선택, [내쉬균형] 개념으로 설명

                  卞 晸 郁
          대학원 석사卒^이론경제

@작년의 노벨 경제학상이 게임이론을  기초하고  발전시킨  내쉬
Nash, 하르산이Harsanyi,셀텐Selten 3인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이 생소하고도 흥미있는 이름의 이론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거의
없어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주었을 것이다.
@게임이론에서의 게임이란 [둘 이상의 게임 주체들이 일정한  규
칙에 의거하여 서로의 전략을 통해 상호작용 함으로써 그 결과로
어떠한 보상을 받는것] 이라 정의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신문지
상에 나타나 있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각각 하나의  게임이  됨을
알 수 있다.
@정치면에서의 정당간 갈등과 대립, 국제면에서의 국제분쟁^무역
분쟁, 사회면에서의 개인들간의 갈등, 경제면에서의 기업간의 경
쟁^노사간의 경쟁 등 일상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위의 정의에 들어 맞음을 알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생태계
내에서의 개체들간의 경쟁, 종간의 경쟁 역시  게임이론에  의해
분석 가능한 대상이 된다.
@게임이론은 우리의 일상에서 발생하는 여러가지 경쟁 또는 갈등
적 상황들을 하나의 게임모형으로 만든 후 게임주체들의  합리성
을 전제로 하여 그 결과를 분석하는 이론이다.
@모든 사람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므로  합리성
의 가정은 무리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항
상 불합리하게 행동하는 경우 역시 있을 수 없을 뿐더러 많은 경
우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노력한다는 점과 자연 또는 이성에 합리
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들은 도태되어 소멸되는 자연  또는
사회법칙을 보더라도 합리성의 가정은 무리한 것이 아니다. 이런
가정하에서 게임 주체들간의 최선의 전략과 각자의 전략이  상대
의 전략에 대한 최선의 전략이 되는 균형상태와 그 결과를  분석
하는 이론이다.
@19세기 경제학자 꾸르노Cournot와 에지워드Edgeworth는  게임이
론의 핵심적 아이디어가 포함된 모형을 개발했었고 폰 노이만Von
Neumann과 모르겐슈턴Morgenster은 그들의 저작 {The Theory  of
Games and Economic Behavior}을 통하여 초보적 단계의 게임이론
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많은 제약과 결점을 가졌던 이들의  이론
을 발전시켜 현대적 게임이론의 기초를 다져놓은 사람은 바로 내
쉬이다. 그는 1928년 미국 서부 버지니아의 블루필드에서 태어나
피츠버그의 카네기 기술연구소에서 공부했고 1948년 명문 프린스
턴大에 들어가 수학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이기도 하다. 현대 게
임이론의 기초가 되는 개념들인 [비협조적  게임],  [게임의  균
형], [균형의 존재] 등에 관한 논문들은 모두 그가 23-25세때 발
표한 것들로 그의 천재성을 짐작할 수 있다.
@게임이론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개념중의 하나인  내쉬균형이란
상대의 특정전략 a에 대한 나의 최선의 전략 -나에게 최대의  보
상을 가져다 주는 전략- 이 a'이었을때 나의 전략 a'에 대한  상
대의 최선의 전략 역시 a가 될 경우 두 전략 a와 a'은  내쉬균형
상태라 한다. 내쉬균형상태에서는 서로의 전략이 각각 상대의 전
략에 대한 최선의 전략이기 때문에 그 전략에서  이탈할  유인이
없게 된다. 이 내쉬균형으로 부터 다양한 게임상황에 적합한  여
러 균형개념들이 파생되고 발전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되
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을 분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게임이론의 등장과 발전은 제한적 가정에 의존해야  했던  많은
경제현상들-불완전 경쟁, 소수 경제주체들간의 경쟁 등-에  합리
적 설명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분석대상
으로 하는 여타의 사회과학 등에도 중요한 분석틀이 될 것이다.

<탁류세평>

문화의 모방과 대화

       石 玲 仲
  문과대 교수^러시아 문학

@문화의 역동성은 자국 문화와 타자의 문화간의  활발한  접촉과
대화에서 비롯된다. 경직된 사회, 폐쇄된 사회, 자기것만을 고집
하는 사회는 문화적 독백속에 감금되어 정체되어 갈  수밖에  없
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외부로부터의  충격
에 맞부딪힐 것이 없는 사회, 선망에 가득찬 구성원들이 남의 것
을 모방하는데 급급한 사회 또한 뒤집혀진 독백의 문화를 만들어
낼 뿐이다.
@우리의 문화는 얼마나 대화적인가. 무엇이 우리속의 세계와  세
계속의 우리 사이에 균형을 잡아주는가. 타자의 문화가 세계화의
시끄러운 합창을 틈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조건에서부터
대중예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이모저모를 야금야금 갉아  먹
는 것은 아닌가.
@작년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레게니 랩이니 하는 흑인  음악
이나, 그것이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는 현상이라고 신나게 떠들어
대는 소위 [팝칼럼니스트]나, 엄청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브로드
웨이 뮤지컬의 번안극이나, 늘어만가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훼
밀리 레스토랑]이나, 텔레비젼 화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여  이
국적인 억양으로 한국어를 발음하는 벽안의 광고모델들이나 모두
우리 사회를 눌러 앉기에 너무도 편안한 터전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얼마전에 일본 영화의 수입이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
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일본문화의 위협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니다. 논노 잡지에서 쏙 빼어온 듯한 유명 패션도 노래방도 백화
점 식품매장의 풍경도 모두 반일 감정의 명분 밑에서 은근히  증
폭되어 온 일본 흉내내기의 한 단면 아닐까.
@정부의 공식적인 정의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문화의 세계화란 선
진국의 문화수준에 도달하기위한 국가적 전략이라고 한다.  이러
한 정의가 정작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
나 분명한 것은 여기서 선진국의 수준이란 것이 미국이나 일본의
소비문화, 오락문화 같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리고 타자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모방이나 무비판적인  수용이
높은 문화수준 달성에 기여하지는 않으리란 점 또한 분명하다.
@문화는 사회 구성원의 의식수준을 반영한다. 우리가 타자의  문
화에 창조적으로, 대화적으로 반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이
흉내내기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상상력과 창의력과 자긍심 그리
고 사명감이 있는 곳에서만 타자의 문화는 자국의 새로운 문화로
한차원 높게 변형될 수 있다. 비틀거리는 문화정책은 일단  접어
두고서라도, 돈벌이가 될 듯 싶으면 무엇이건 수입해 놓고  보자
는 식의 문화 수입상들, 상상력 부족을 모방으로 메꾸려 드는 문
화 생산자들, 그리고 무언가 유행이다 하면 그저 정신없이  휩쓸
려가는 소비자들의 의식수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의
문화는 독백만을 거듭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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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_^             키즈의  아저씨    pkp    palindrome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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